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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도 ‘품격’이 필요하다


우리는 민주주의라고 할 때는 제법 품위 있는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시장사회나 자본주의라고 할 때는 비교적 저급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이미 ‘시장 사회’에 대한 갖가지 표현들이 그렇다. 장마다 돌아다니는 ‘장돌뱅이’라는 표현은 “괜히 하는 일 없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사람”을 비아냥거리는 말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도 “먹고 사는 문제를 위해서는 도덕과 염치도 가리지 않는 무례함”을 뜻한다. 그런가하면 “할아버지 떡도 싸야 사먹는다”는 말은 친족의 정(情)보다 이익만 따지는 ‘깍쟁이’의 모습을 떠올릴 뿐이다. 또한 누가 심각한 논쟁 중에 “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놈”이라는 말을 줄인 ‘듣보잡’이라는 말을 쓴다면, ‘시정잡배(市井雜輩)’, 즉 “시장에서 장사하는 무리”가 쓰는 교양 없는 말이라고 할 뿐, 교양 있는 문화인이 쓸 수 있는 말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흥미 있는 주제를 흥부전에서 찾을 수 있다. 흔히 흥부와 놀부를 비교할 때 흥부의 정직함과 놀부의 욕심 많음을 대조시키며 흥부에게 도덕적 우위를 두지만, 시장에서는 다르다. 시장에서 자영업자가 멋진 식당을 내려면 ‘놀부집’이라는 간판을 내걸어야지 ‘흥부집’이라는 간판을 내걸면 망하기 십상이다. 부자였던 ‘놀부집’에 가야 잘 먹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이지 제비다리는 고쳐주었지만 가난했던 ‘흥부집’에 가면 굶기 십상이든지 혹은 소박한 음식을 먹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왜 이처럼 ‘시장사회’는 도덕적으로 옳지 않고 예의와 염치가 없는 것쯤으로 그려지는 것일까. 그것은 시장사회의 원리는 덕이나 이성이 아니라 이익과 이기주의 개념이 지배한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시장원리라는 표현은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나온다. 그에 따르면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시장의 원리인데,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할 만큼 놀라운 효과를 발휘한다. 빵집 주인이 돈을 벌기 위해 밤늦게까지 일하면 그 시간까지 빵을 먹지 못해 배고파하는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실생활에서 경험하는 이기심은 그보다 사악할 때가 많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 상황이 그렇고, 돈을 위해서는 친구는 물론 부모까지 배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보험금을 타기 위하여 사람을 죽이는 일까지 벌어지는 곳이 시장사회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시장사회는 도덕과 예의, 염치가 엄격하게 존재하는 곳이다. 슘페터의 고전적 표현대로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를 할 수 있는 ‘기업가정신’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자기정진’과 ‘절제’를 빼놓을 수 없다. 시장에서 창의력과 혁신을 말하는데 어떻게 돈과 이익만 생각할 수 있겠는가. 이윤에 대한 동기를 넘어 비전과 영감이 필요한 법이다. 뿐만 아니라 시장에서의 거래가 이루어지려면 신뢰와 정직함이 있어야 한다. 또 상품을 팔기 위해서는 ‘고객만족’을 넘어서서 ‘고객감동’을 만들어야 하는데, 여기에는 윤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금 기업이윤 못지않게 기업윤리가 강조되고 있고 ‘기업의 사회책임(CSR)’이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편 시장 논리의 핵심이 되는 이익이라는 개념도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절제의 논리’이다. 무엇에 대한 절제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인간 안에 숨겨져 있는 ‘이드(id)’나 ‘리비도(libido)’, 즉 ‘본능적 광기’와 같은 파괴적 요소들에 대한 절제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와 공연히 싸우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기고 자신을 억울하게 만든 사람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이 불현듯 일어날 때, 이와 같은 격정들을 무엇으로 다스릴 수 있겠는가. 이런 요소들을 그대로 내버려두면 한 사회 내에서는 조직 폭력배가 날뛰게 되고 국가적으로는 전쟁도 일어난다. 전쟁이란 내가 죽지 않기 위해 남을 죽이는 행위인데, 한마디로 ‘미친 짓’이다. 누가 결혼을 ‘미친 짓’이라고 했던가. 진짜 ‘미친 짓’은 전쟁이다.


이익이라는 개념은 인간 안에 들어있는 이와 같은 격정과 광기를 통제하기 위해 작용하는 것이다. 이익은 물론 이성이나 덕목이라는 것과 비교하면 품격은 떨어진다. 그러나 허영심이나 격정과 같은 파괴적인 힘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분노에 가득 차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 것 같은 사람에게 그 화를 달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다. 그것은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은 너에게 이익이 안 된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또 하늘을 같이 이고 살 수 없을 정도의 원수지간이라고 하더라도 “사업은 사업”이라고 말한다면 화해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 이런 현상이야말로 이익이 자기 절제의 역할을 하는 현저한 경우인 셈이다.


우리는 시장사회를 보고 예의도 없고 염치도 모르는 어중이떠중이가 사는 사회, ‘돈독’이 오른 사람들만 사는 사회라고 자조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시장사회의 저급한 모습일 뿐, 시장의 우아한 모습은 아니다. 시장의 저급한 모습은 일찍이 막스 베버(Max Weber)가 우려해마지 않았던 ‘천민자본주의(pariah capitalism)’의 속성을 갖는다. 그러나 반대로 시장사회의 우아한 모습을 감상하려면 백화점에 가보면 된다. 백화점 점원들은 손님이 묻는 말에 얼마나 친절하게 대답하고 고객들을 향하여 인사를 잘하는가. 구청이나 동사무소에 가서 처음 본 직원에게 인사를 받아본 적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무뚝뚝한 공무원에 비해 백화점의 직원들은 얼마나 친절한가. 바로 이와 같은 것이 시장사회의 품위일 터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사회는 품위 없는 시장사회의 모습을 너무 많이 보여주고 있어 문제다. 물건을 살 때도 소비자들은 믿을 수가 없다. 가짜 꿀, 가짜 참기름, 가짜 한우가 판치고 중국산 채소가 한국산 채소로 둔갑되어 팔리니, 이런 시장사회는 ‘눈뜨고 코 베어갈’ 세상이다. 이런 사회를 보고 ‘비대칭정보(asymmetrical information)시장’이라고 학문적으로는 점잖게 말할 수 있겠으나, 실제로는 시정잡배가 날뛰는 사회일지언정 건강한 상도를 가진 상인들이 사는 사회는 아니다. 우리는 교회나 학교에서만 정직하게 생활해야 하는가. 그리고 시장에서는 부정직하게 살면서 ‘개’처럼 품위 없이 돈을 벌어야 하겠는가. 똑같은 사람이 교회도 가고 학교도 가며 또 시장도 간다는 생각을 하면, 저급한 시장사회는 우리 모두 해결해야 할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認知不調和)’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금이야말로 ‘나라의 품격’에 대해서만 고민할 것이 아니라 ‘시장사회의 품격’에 대해서도 본격적으로 고민할 때이다.


박효종 (서울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parkp@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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