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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의 6ㆍ25전쟁 인식과 중국 패권의 향방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을 이어 중국의 최고 지도자에 오를 것으로 확실시 되는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은 6ㆍ25전쟁에 대해 “위대한 항미원조(抗美援朝: 미국에 대항하여 북한을 지원함) 전쟁은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비록 이 발언이 중국 참전 60주년 기념 행사장에서 나온 것임을 감안하더라도 시진핑의 역사 인식은 중국의 한반도 및 세계전략과 관련하여 예사롭지 않은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천안함 사건 이후 중국은 유엔을 비롯한 국제무대에서 북한의 입장을 적극 두둔해 왔다. 최근 북한의 세습권력 승계과정에서도 북한에 대한 지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중국은 6자회담 주최국이면서도 대북정책의 최우선 순위는 북핵 폐기가 아니라 체제 안정이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북한의 핵 폐기 없이는 국제사회의 대규모 지원을 통한 ‘북한판 마셜플랜’의 실현이 어렵다는 것을 어느 누구보다도 중국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또한 권력 세습은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가로막는 가장 중요한 대내적 요인이라는 점도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중국이 6ㆍ25전쟁 당시처럼 ‘원조’(援朝: 북한 지원)라는 케케묵은 사고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동북아 평화와 번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근 중국의 대북정책은 중국의 부상과 함께 논의되고 있는 중국 패권의 성격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 국제정치 질서는 패권 국가의 체제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만약 히틀러의 독일과 스탈린의 소련이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승리하여 패권 국가로 부상했다면 민주주의 확산과 자유무역의 신장이라는 국제정치 및 경제 질서의 보편화는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 중심의 패권 질서에 대해서 세계는 여전히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하며, 이 점은 중국의 대북한 정책에서도 그 일면을 볼 수 있다.


패권(覇權)은 희랍어에 어원을 둔 ‘헤게모니(hegemony)’의 번역어이다. 패권으로 번역되는 헤게모니라는 용어는 우리말로는 매우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그렇지만 원래 ‘헤게모니’는 공공재를 제공하는 이타적인 강대국의 정책을 지칭하는 것이다. 헤게모니 개념은 원래 패도(覇道)보다는 왕도(王道)에 가까운 뉘앙스를 갖고 있다. 패권질서는 강압적 방식에서부터 합의를 중시하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를 띨 수 있다. 경제적 영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군사적 영역에까지 미칠 수 있다. 또한 경제영역에 국한된 패권질서라고 할지라도 패권국의 군사력이라는 보이지 않는 주먹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패권질서는 유지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미국의 패권이 ‘왕도(王道)식의 패권’이라면 중국의 패권은 ‘패도(覇道)식의 패권’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이런 우려는 중국의 대북정책과 최근 격화되고 있는 주변국과의 영유권 분쟁에서 현실화되고 있다.


만약 미국과 중국 사이에 패권 경쟁, 시진핑이 말하는 또 다른 ‘항미(抗美)’가 본격화된다면 그 과정과 결과는 가늠하기 쉽지 않다. 역사적으로 패권 경쟁과 패권국 교체는 여러 번 일어났다. 대영제국으로부터 미국으로의 패권 교체는 동질적(homogeneous) 정치경제 체제를 가진 강대국 간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평화적 바통(baton) 터치가 가능했다. 20세기 이질적(heterogeneous) 체제를 가진 미국과 소련 사이의 패권 경쟁은 소련의 몰락과 해체로 막을 내렸다. 중국은 경제적으로 개혁과 개방정책을 추구하고 있지만 정치 체제 면에서 미국과 동북아지역 민주주의 국가들과는 아직 이념과 가치를 공유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차이점 때문에 미국과 중국 사이의 21세기 패권 경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할 수가 없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한반도와 동북아지역의 상황을 구한말기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몰고 갈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 민족은 지난 100년간 중국, 일본, 미국 중심의 패권 질서를 경험한 바 있다. 한반도는 크리스토퍼 힐(Christopher R. Hill) 전 미 국무부 차관보의 지적처럼 ‘우범지대(high-crime neighborhood)’에 위치해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사는 동네가 좋지 않다는 것이다. 주변국들은 모두 ‘어깨’와 같은 제국적 위상을 갖춘 국가들이다. 지난 100년간 우리는 이들이 ‘어깨’에서 ‘조폭’으로 돌변하는 것을 여러 번 목격한 바 있다.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주변 그 어떤 강대국보다도 미국과의 동맹관계가 유지되었을 때 한국이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번영을 이룩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시진핑의 6ㆍ25전쟁 관련 발언은 한미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고 그 바탕 위에서 중국의 부상과 패권 추구에 대비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국익에 부합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다.


김영호 (성신여자대학교 정외과 교수, youngho@sungshi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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