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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면블랙 시정명령, 가격규제 블랙코미디의 진수


지난 27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1999년 이후 12년 만에 이례적으로 표시광고법 위반으로 제재조치를 내렸다. (주)농심이 신라면블랙에 대하여 허위ㆍ과장의 표시와 광고를 한 것으로 인정된다며 시정명령을 내리고 1억5,5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것이다. 공정위의 보도자료는 (주)농심이 제품포장지에 표시한 내용과 34개 신문을 통하여 광고한 내용을 상세히 분석하고 과징금 부과의 이유와 그 기대효과를 설명하고 있다. 공정위의 신라면블랙에 대한 시정명령은 지난해부터 시작한 정부의 가격규제와 이를 회피하기 위한 기업들의 숨바꼭질이 나은 이 시대 최고의 ‘가격규제 블랙코미디’로서 전혀 손색이 없다. 경제학 산업조직론 교과서의 사례연구로 박스 처리할 수 있는 좋은 교재감이다.


정부가 가격을 규제하면 기업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하게 마련


어떤 이유에서건 정부가 가격을 규제할 때 기업들은 이에 대해 여러 가지 형태로 반응한다. 정부의 가격규제로 수지가 맞지 않는 경우 가장 흔한 기계적인 반응은 공급량을 줄이는 것이다. 공급이 수요보다 모자라서 초과수요가 나타나게 되므로 암시장이 발달되고 여기저기서 긴 줄을 서기도 한다. 할 수 없이 할당이나 배급을 하기도 한다. 상품의 품질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규제된 가격하에서는 도저히 채산성을 맞출 수 없으니 품질을 떨어뜨려서라도 물량을 맞춘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기업들, 아니 정부부처와 공공기관들까지도 자주 쓰는 방법 중의 하나는 바로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고 여기에 높은 가격을 매겨서 가격규제를 우회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브랜드가 많아지게 되는 것을 ‘브랜드 프롤리퍼레이션(brand proliferation)’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현상이 나타나면 어디선가 정부의 가격규제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정부가 물가관리를 위해 라면이나 과자류와 같은 다양한 가공식품의 가격까지 관리하자고 나선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과거 개발연도에 정부가 자장면, 라면, 치약과 같은 서민물가를 규제하는 바람에 이를 피하기 위해 라면의 품목도 소고기라면, 짬뽕라면, 해물라면 등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각종 약품도 가격을 규제하는 통에 박카스F, 사리돈A 등으로 브랜드를 바꿔가면서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공무원들이나 공공기관 종사자들의 월급명세서를 들여다보면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본봉 외에 직무수당, 가족수당, 가계지원비, 교통비, 체력단련비 등 다양한 명목의 수당과 지급항목이 눈에 띈다. 공무원 수당은 무려 49종에 이른다. 왜 이렇게 월급명세서가 복잡해졌는가? 바로 임금 가이드라인 때문이다. 매년 정부는 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직원 연봉의 인상률을 특정 수준 이하로 규제했는데, 훌륭한 인재를 두고 민간 부문과 경쟁할 수밖에 없는 정부나 공공기관이 임금을 간접적으로 올리는 방법으로 이 같은 월급명세의 ‘브랜드 프롤리퍼레이션’이 사용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공급부족, 암시장, 배급제, 품질저하, 브랜드 프롤리퍼레이션 또는 리뉴얼 제품을 문제의 본질로 보아서는 안 된다. 문제의 핵심은 정부가 자연스러운 시장의 수급조절 기능을 무시하고 가격을 규제하였기에 나타난 것이다. 경제주체는 인센티브와 수익성을 따라서 움직이게 마련이다. 경제주체의 움직임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이들을 그렇게 만든 정부의 규제가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연초부터 정부가 물가관리를 위해 기름값을 압박하더니 각종 가공식품의 가격도 올리지 못하도록 시장을 감시하자 기업들로서는 기존 제품의 가격을 올리는 것이 눈치가 보이므로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고 가격을 올렸던 것이다. 공정위는 이를 ‘리뉴얼을 통한 편법 인상’이라고 하지만 기업들로서도 가격규제에 따라 자구책을 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전에 공급하던 신라면이라는 브랜드가 없어진 것도 아니다.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는 예전처럼 신라면을 구입하면 되므로 이를 편법인상이라고 몰아붙이는 것도 어폐가 있다.


2개월 간 160억 매출… 소비자들이 설렁탕으로 알고 구매했을까


공정위 보도자료의 내용이 무엇보다도 흥미롭다. 공정위는 신라면블랙이 제품포장지에 표시한 내용과 34개 신문을 통해 광고한 내용 중에서 ‘설렁탕 한 그릇의 영양이 그대로 담겨 있다’라는 표시와 ‘신라면블랙은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의 비율이 가장 이상적인 영양균형을 갖춘 제품’이라는 표시가 과장된 것으로 인정되었다고 밝혔다. 또한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의 가장 완벽한 영양밸런스는 60:27:14이며, 신라면블랙은 그 비율이 62:28:10으로 완전식품에 가까운 식품’이라는 광고는 허위인 것으로 인정되었다고 밝혔다. 결국 공정위는 이 같은 ‘조사’를 통하여 보도자료의 제목처럼 결국 ‘신라면블랙은 라면일 뿐, 설렁탕과는 달랐다’라는 사실을 소비자에게 상세히 알리려고 노력하였다.


신라면블랙은 4월 15일 판매를 시작한 이래 두 달 만에 매출이 160억 원을 넘어선 히트상품이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자신의 트위터에 “신라면블랙 시식 중, 사골 국물 맛이 좋다”고 평한 후 “결국 밥 한 공기 투입”이라며 싹 비운 라면그릇 사진을 올림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신라면블랙이 설렁탕과 다르다는 것을 몰랐을까? 더욱이 설렁탕 성분과 영양효과에 미혹되어 신라면블랙을 160억 원어치 구입했다고 보아야 할 것인가? 비록 값이 조금 비싸다고 하더라도 라면은 라면일 뿐이다. 이는 소비자도 알고 공정위도 아는 사실이다.


우리가 TV광고를 보면 여러 가지 ‘허위’와 ‘과장’이 판을 친다.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면 주변 세상이 달라지기도 하고 자동차가 절벽을 올라가기도 한다. 그러나 이를 시청자나 소비자가 믿을 것이라고 광고하는 사람도 없고 이를 사기라고 고발하는 사람도 없다. 신라면블랙의 제품포장지에 표시된 영양성분 자체에 대한 정보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공정위가 문제 삼은 것은 “설렁탕의 영양이 그대로 담겨 있다”라는 표현을 문제 삼은 것이다. 공정위는 밥을 포함한 설렁탕의 영양가를 신라면블랙의 포장지에 제시된 영양가와 비교하여 탄수화물은 78%, 단백질은 72% 수준 밖에 안 되지만 나트륨은 1.2배나 된다고 하면서 과장광고라는 것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라면의 영양가와 설렁탕의 영양가를 비교하면서 설렁탕에는 밥까지 포함하여 비교한 것은 아무래도 개운치 않다.


문제는 이렇게 자질구레한 일까지 하는 공정위의 의도이다. 공정위는 올해 초 실로 오랜만에 물가잡기에 나서면서 예전 개발연도의 물가단속 기관으로서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시장감시국 등이 참여하는 ‘가격불안품목 감사ㆍ대응 태스크포스’를 사무처장 직속으로 설치했다. 사후대응 중심의 시장감시 방식에서 벗어나 가격인상 분위기를 억제하기 위한 사전대응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물가불안 품목에 대한 상시감시를 강화하고 가격인상을 유발하는 담합이나 리베이트 등도 조사ㆍ처리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처럼 서민생활 관련 가격불안에 대처하면서 공정위는 두유ㆍ단무지ㆍ고추장ㆍ치즈 등 관련 식품업체와 정유 4사의 주유소 나눠먹기 담합을 적발하였고 (주)오뚜기의 대리점에 대한 할인판매 통제행위를 적발하는 등 가격인상을 억제하기 위해 예년에 보기 드문 행정력을 동원하고 있다.


가격규제를 피해 간 괘씸죄를 응징한 것으로 보여


이런 와중에 기업들이 가격규제의 어려움을 회피하기 위하여 새로운 제품을 내놓게 된 것을 공정위가 곱게 볼 리 없다. 그러나 제품에 대한 가격을 제시하는 것은 시장경제에서 기업의 고유권한이다. 정부가 개입해서 가격을 규제하는 경우는 자연독점을 인정하는 전력, 상하수도, 가스, 통신, 철도, 지역난방 등 공익산업과 금리를 규제하는 금융산업 말고는 없다. 이 외의 산업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시장에서의 경쟁원리에 맡기는 것이다. 다만, 충분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아 높은 가격이 나타나는 경우에 대비하여 독점과 담합을 감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라면시장에서의 가격결정이 독점력이나 담합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사업자가 가격을 결정할 권한을 존중해야 하는 것이다. 더욱이 새로운 제품의 가격을 규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원가가 얼마이며, 마진이 얼마인지를 따져서 가격을 규제한다면 이는 벌써 시장경제를 포기하는 것이다. 공정위도 이런 식으로 가격을 직접 규제한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허위ㆍ과장’ 광고에 대한 징계수단으로 가격규제를 피해 간 괘씸죄를 응징한 것으로 보인다. 시장경제와 자유로운 경쟁을 주창하여야 할 공정위가 과거 물가반장으로 돌아가서 가격을 규제하고 12년 만에 표시광고법 위반 제재조치를 내리면서까지 이를 우회한 기업을 벌준 셈이다.


공정위는 “신라면블랙은 라면일 뿐, 설렁탕과는 달랐다”라는 제하의 이번 보도자료 말미에 시장에 대한 아주 흥미로운 논평까지 ‘보너스’로 선사하는 센스(?)를 보여주었다. 즉 신라면블랙이 경쟁제품이나 기존의 신라면에 비해 품질이 향상된 정도에 비해 책정된 판매가격이 매우 높으므로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번 조치가 신라면블랙이 설렁탕이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가르쳐 줌으로써 우매한 소비자를 일깨운 것인지, 아니면 공정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비자가 계속 신라면블랙을 찾음으로써 그 경쟁력을 확인시켜 줄 것인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이번 여름은 예년보다 더 더울 것이라는데, 좋은 구경거리가 하나 생긴 것 같다.


조성봉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sbcho@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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