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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이론이 주류가 되기 힘든 이유


하이에크(F. A. Hayek)는 생전에 그가 평생을 추구하고 지켜왔던 사상이 옳았음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서 눈을 감았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함께 이 세상은 진정 오스트리안들의 시대로 물들일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 가지 않았다. 매일의 생활경제 속에서 오스트리안들은 언제나 대중의 지지와는 거리가 먼 듯하다. 몇 주 전 한국은 김치파동으로 심한 몸살을 앓았다. 배추 한 포기가 예년의 가격보다 3~5배 오르자, 단번에 많은 사람들은 “정부가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는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고 정부의 대책을 강력히 주문하였다. 배추와 같이 우리가 거의 매일 먹는 농산물의 수요와 공급은 가격에 대해 비탄력적이기 때문에, 시장에 조그마한 외부 충격이 있더라도 그것의 가격은 요동칠 수밖에 없다. 이런 시장에 정부가 개입하면 시장의 불확실성이 더욱 커질 수 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정부의 시장 개입은 자제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을 비롯한 모든 언론과 일부 시민단체 및 학자들이 정부 책임론에 가세하였다. 정부가 개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벌써 배추가격의 폭락조짐이 보인다고 하니 정말 우습고 허탈할 뿐이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자유시장경제를 옹호하는 오스트리아 사상이 경제정책의 주류로 자리 잡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한국은행의 금리정책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은행은 10월 다시 금리를 동결하였다. 이번에는 국가 간의 ‘환율전쟁’이 그 이유였다. 지난 달 금리동결은 “침체에 빠져 있는 부동산시장의 활성화”를 위함이었고, 지난 8월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제 회복세의 우려”라는 이유로 금리가 동결되었다. 지난 7월 한국은행 총재는 임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책금리를 전격 인상하여 한국은행의 독자성에 관한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켜 주었다. 그러나 연이어 세 번에 걸친 금리동결은 “시장의 우려가 우려로서 그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어느 국가든지 중앙은행의 정책 목표 1순위는 물가안정인 반면, 정부의 정책 1순위는 고용안정과 성장이다. 그래서 중앙은행의 가장 큰 역할은 정부의 경제정책을 견제하는 데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국은행의 금융정책은 물가안정에 대한 강력한 의지보다 지나치게 좌고우면하면서 정부와의 보조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들의 머릿속에는 케인즈(J. M. Keynes)적 사고가 자리 잡고 있음은 두말 할 나위 없다.


이처럼 미시나 거시분야 할 것 없이 오스트리아 이론의 위상은 초라해 보인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도 개선될 것 같지 않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우선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의 경제 문제에 있어서 무엇이 진실인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경제문제가 발생하면 무조건 정부책임으로 돌리면서 정부의 강력한 역할을 주문하는 데 익숙해 있다. 게다가 이들은 선함 뒤에 숨어 있는 악함을 구태여 알려고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많은 경우 알지 못한다. 어떤 경제정책도 선한 모습을 띄고 있지만 그것은 언제나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한다. 그 희생은 대체로 이차적이고 장기적인 성격을 갖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그것을 감지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특히 이해집단들은 어떤 형태로든지 차별적인 경제정책을 집행하도록 강요하고, 정치인과 관료들은 이들과 공생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그들에게 이득이 됨을 알고 있다.


둘째, 민간 기업들은 겉으로는 자유시장경제를 주창하지만 결코 정부 없는 시장경제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규제 철폐를 주장하지만 적지 않은 경우 규제는 오히려 차별적 대우를 가능하게 하여 치열한 경쟁에서 쉽게 벗어나 독점적 지위를 누리게 해준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부로부터 각종 지원을 기대할 수 있고 대마불사의 위협을 통해 정부는 기업의 파산에 대한 안전판 내지 보호막 역할도 할 수 있음을 안다. 미제스(L. Mises)가 미국의 월가로부터 냉대를 받은 것은 기업의 이런 이중적인 측면과 무관하지 않다.


셋째, 정부는 대체로 경제적 논리보다 정치적 논리에 따라 정책을 수행한다. 그들은 투표권자의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들에게 뭔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혀 있다. 그런데 오스트리안들은 정부 역할을 지나치게 축소하거나 아예 부정하기 때문에 관료나 정치가들이 오스트리아 이론을 싫어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크루그먼(P. Krugman)은 그가 명명한 오스트리안의 ‘시장결과 감내이론(hangover theory)’에 대해 그것은 난관을 극복하기 위한 어떤 방안도 제시해 주지 못하는 무책임한 이론이라고 혹평한 바 있다.1) 정부와 일반인들은 “그냥 내버려 두라”는 오스트리아 이론보다 무언가 처방을 내려주는 케인즈 이론에 끌릴 수밖에 없다. 오스트리아 사상이 정책 입안자의 테이블에서 구석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넷째, 관료와 정치가의 권력은 시장 개입을 통해서만 나온다는 평범한 진리는 오스트리아 이론을 경원시하고 케인즈 이론을 금과옥조처럼 받들도록 한다. 관료와 정치가의 힘은 규제 강화와 예산 확보 및 이의 지출에서 비롯된다. 각종 규제는 민간인들 간의 차별을 가능하게 하며, 예산 확보 및 이의 지출은 이들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케인즈 이론은 이들에게 구세주처럼 비칠 것은 두말 할 나위 없다. 돈을 풀더라도 경기가 쉽게 회복되지 않으면, 크루그먼의 최근 주장처럼2) 아직 돈이 덜 풀렸기 때문이라고 내세우면 그만이다.


다섯째, 오스트리아 이론이 비주류로 남을 수밖에 없는 지금까지의 이유보다 더 고약한 것은 대학 강단이 케인즈와 왈라스(L. Walras) 이론으로 무장되어 있는 학자들에 의해 점령당해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학계의 주류로 대접받을 수 있기 때문에 수고스럽게 오스트리아 이론에 관심을 가질 이유는 하등 없다. 아마 오스트리아 사상을 전혀 접해보지 못한 학자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오스트리안들이 세상의 진실은 이렇다고 아무리 외쳐도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들은 세상의 진실이 오스트리아 이론이라는 것을 감지하더라도 자신의 패러다임을 힘들게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이론을 근사한 수학과 도식을 통해 논리적 흠결 없이 가르치는 것이 오스트리아 이론보다 적어도 강단에서는 쉬우며 멋지게 보이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 이론은 닫힌 세계가 아니라 열린 세계를 지향하기 때문에 수학과 도식을 배척하면서 그들이 가정으로 남긴 사실들을 갖고 주로 말로서만 경제 현상의 인과관계를 설명해야 한다. 강단에서 강의를 해본 사람이라면 이것이 쉽지 않음에 동감할 것이다. 게다가 지식인들은 무언가 구체적 대안을 내놓고 서민에 동정적이어야 지식인인양 착각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이들에게 구체적인 정책 대안과 세상 설계를 제시하지 않은 채 자신의 행위에 대한 결과에 스스로 책임지라는 오스트리아 이론이 탐탁할 리 만무하다. 특히 경제학계 분위기는 수학적ㆍ계량적 기법이 들어가야 대체로 우수 논문으로 인정하며, 그들은 동료 학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 그들의 학문적 우수성을 위협하듯이 뽐낼 수 있다. 그래서 오스트리아 이론은 그들에게 결코 매력적이지 못하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정부 역할을 배제하는 이 이론을 갖고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연구지원과 각종 명예직을 받기가 쉽지 않음도 잘 알고 있다. 자유와 시장경제를 옹호하면서도 적당히 정부 역할을 인정하는 것이 그들에게 운신의 폭을 넓혀주는 최선의 길인 것이다.


이처럼 오스트리아 사상은 일반인, 관료나 정치가들 그리고 경제학자들에게 그다지 호감을 주는 이론이 아니다. 이것은 오스트리안으로 살아가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함축하면서 동시에 오스트리안들의 분발을 촉구한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같은 파국에 이르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어떤 길이 옳은지 깨닫기를 희망하며 여기에 오스트리안들의 역할을 기대한다.


배진영 (인제대학교 국제경상학부 교수, econbjy@inj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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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aul Krugman, Slate, 1998. 12. 4.

2) Murray Sabrin, Mises Daily, 2010.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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