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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컬럼

전문가들이 펼치는 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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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법 개정과 '세테리스 파리부스(Ceteris Paribus)'의 함정


‘Ceteris paribus’는 ‘여타 조건은 불변(all other things being held constant)’이라는 의미가 있는 라틴어 문구이다. 경제학 입문(Econ 101) 시간에 수요의 법칙을 배울 때, 제일 먼저 접하는 가정(assumption)이다. 수요의 법칙은 여타조건이 불변한다는 가정 하에 예컨대 쇠고기 가격 상승은 쇠고기 수요량을 감소시킬 것이라는 쇠고기 가격과 수요량 사이의 인과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이 같은 이론적 결론은 여타조건인 쇠고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호, 쇠고기의 대체재인 돼지고기 가격, 소비자들의 소득, 앞으로 쇠고기 가격이 어떻게 변동할 것인가에 대한 소비자들의 예상 등등이 불변하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아울러 ‘ceteris paribus’ 가정은 쇠고기 가격 이외에 여타 조건이 변동할 때, 쇠고기 가격과 거래량을 이론적으로 예측할 때 유용하다. 예를 들면 여타 조건은 불변하고, 쇠고기의 대체재인 돼지고기 가격이 상승하면, 쇠고기에 대한 수요가 증가해서 쇠고기 가격이 상승하고 거래량이 증가하리라 예측한다.


‘ceteris paribus’ 가정은 여타 조건이 불변하는 단기에 시장경제의 가격분석을 할 때는 유용하다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그러한 가정에 따른 가격분석을 ‘비교정태분석(comparative static analysis)’이라 말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경제변수들이 변동할 가능성을 일단 가정으로 제외하고, 오직 돼지가격 상승이라는 변화가 쇠고기 가격과 거래량에 미칠 영향만을 비교분석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정치인들이나 공무원들이 경제정책을 입안하거나 시행할 때, 정책시행에 따른 예상이 ‘ceteris paribus’ 가정하에 이뤄진 것임을 잊거나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형적인 예가 지난 3월 말에 국회 본회를 통과했으며, 4월 10일 발효된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이다. 이 법은 대형마트와 기업형 수퍼마켓(SSM)을 월 2회 일요일 강제 휴점하게 해서 인근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입법된 것이다.


유통법 개정 이후의 현상- Ceteris Paribus의 함정 여실히 보여줘


유통법 입안자들은 개정 법률이 시행되어 대형마트와 SSM이 휴점하면, 수요가 골목상권으로 이동해서 영세상인들을 보호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러한 유통법의 기대효과는 대형마트와 SSM을 월 2회 강제 휴점하게 할 때 여타조건은 불변할 것이라는 암묵적 전제하에 추론한 결과라는 점이다. 법 개정 이후에도 대형마트는 예전과 같게 영업할 것이며, 달라지는 것은 오직 월 2회 일요일 휴점하는 것뿐이라는 전제이다. 일요일에 식료품을 구입해오던 쇼핑객들도 여전히 일요일에 식료품을 구입함으로써 소비자들의 쇼핑 행태도 불변할 것임을 전제하고 있다. 물론 냉장고 크기도 불변할 것임을 전제하고 있다.


불행이도 그러한 전제는 유통법 시행에 따라 서울 강동, 송파, 성북, 강서와 대구 광주 전주 등 현재까지 조례 개정을 한 지자체 36곳의 대형마트가 문을 닫는 첫 번째 일요일인 4월 22일부터 빗나갔다. 대형마트인 홈플러스는 개점시간을 개정된 법률이 시행된 4월 10일부터 기존의 오전 10시로부터 오전 9시로 1시간 앞당겼다. 개정된 유통법에는 개점 금지시간을 0시로부터 오전 8시로만 제한하므로 개점시간을 오전 9시로 앞당기는 것은 합법적이다. 이마트와 롯데마트도 개점시간 조정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대형마트들은 휴점하는 일요일 전날 토요일과 휴점 다음 날인 월요일에 특별 할인세일을 시행할 것이라 한다. 그러면 대형마트에서 일요일에 식료품을 사들였던 소비자들은 토요일이나 월요일에 식료품을 구매하려 할 것이다. 아마도 시간이 지나면 가전제품 제조회사들은 지금보다 큰 용량을 가진 대형 냉장고를 출시할 것이다. 물론 불가피하게 일요일에 식료품을 구매할 수밖에 없는 처지의 소비자들은 일요일에 골목시장에서 식료품을 구매하겠지만, 그런 정도의 수요 이동으로 골목상점들이 높은 매상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형마트들은 앞으로 일요일 휴점으로 인한 매상 감소를 만회하기 위해서 입법 의원들이나 공무원들은 상상도 못할 ‘여타 조건을 변경’시키는 창의적인 마케팅 전략을 도입할 것이다. 그로 인해 여타 조건이 불변할 것이란 전제하에 시행되는 유통법의 실제 효과는 기대한 바에 크게 미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일부 소비자들의 불편은 가중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하는 공직자들은 ‘ceteris paribus’ 즉 ‘여타조건은 불변’할 것이라는 전제 하에 만들어진 법은 자기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여타 조건의 변동’ 때문에 실제로는 기대한 효과를 얻기가 어렵다는 경제원리를 이해하기 바란다.


손정식 (한양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jsonny@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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