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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儒學)’이 진정 반(反)시장적인가?


흔히 일반 사람들은 “공자(孔子)의 선진유학(先秦儒學)에서 비롯된 유교사상이 전(前)근대적이고 반(反)시장적”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중에서 전근대적이라는 점은 논외로 하더라도 “유학 또는 유교사상이 과연 반시장적인가”라는 물음에 대해서 필자는 생각을 달리 한다. 이를 철저하게 검증하기 위해서는 유학사상 전반을 검토해 봐야 하겠지만 필자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므로 여기서는 선진유학이 생겨날 당시 ‘儒’라고 불리던 부류의 사람들이 하는 일과 그 의미를 살펴보고, <論語> 중에서 흔히 반시장적 논거로 해석되는 ‘이인(里仁)’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


‘儒’는 고대 중국에서 선비[士] 계층에 속하는 사람으로서 祭典과 각종 儀禮와 敎育을 관장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즉 ‘儒’는 오늘날의 외교 또는 의전관료와 가르치는 일을 수행하는 교사를 겸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儒學은 이들이 하는 활동을 이론화한 것이다. 따라서 儒學이라는 말은 탄생부터 다양한 의미를 함의하는 말이다.


보다 명료한 이해를 위하여 ‘儒’를 解字해 보자. 아시다시피 ‘儒’는 사람 ‘人’과 필요를 가리키는 ‘需’가 합쳐진 글자로서 ‘사람에게 필요한 것(demand)’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즉 사람이 되기 위하여 必須로 요구되는 것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오늘날 경제학 용어로 하면 사람에게 수요가 되는 것이라는 뜻이다. 결혼할 때 하는 ‘婚需’, 제사지낼 때 ‘祭需’ 등 여러 가지 재화와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소요되는 여러 가지 활동(즉 서비스)이 포함된다. 이렇게 보면 짐작이 가겠지만, 儒에 속하는 사람들은 禮를 행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더하여 사람이 여타의 짐승과 다른 무엇을 갖는다는 것은 곧 말과 글을 사용하고, 이를 통하여 사고하는 능력을 구비하게 하기 위한 敎育이 요구[需]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1)


甲骨文字의 해석에 비추어 보면 ‘儒’는 葬禮와 祈雨祭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儒’의 ‘需’는 비 ‘雨’와 이을 ‘而’의 합성어로서, 이때 ‘而’는 머리카락을 묶지 않고 풀어헤친 모습을 상징한 것으로 결국 ‘需’는 가뭄이 들어 비가 오도록 제사를 지낼 때 풀어헤친 머리카락을 상징한다. 이렇게 ‘儒’의 본래 의미는 ‘비를 기원하며 제사 지내는 사람’의 뜻을 갖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수염[而]’ 또는 ‘빗물[雨]’을 흡수한다는 의미에서 ‘구하다’, ‘소용되다’는 뜻을 갖는다.2) 이상을 종합해 보면 유학의 ‘儒’는 인간에게 필요한 재화(婚需, 祭需 등)와 서비스(교육, 의전, 예의범절)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므로, 이것이 반시장적일 근거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자유시장에서 소요(demand)되는 것을 공급(supply)하고자 한 사람들이 儒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장의 원리에 충실한 사람이다.

한편 <論語>의 이인(里仁)편 제16장에 나오는 “군자는 義에 깨닫고, 소인은 利를 깨닫는다.”3)는 말을 가지고 반시장적인 언명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피상적인 의미로 본 것일 뿐 심층적으로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이에 대한 주자(朱子)의 집주(集註)를 보면 알 수 있다. 거기에 “君子는 생명을 버리고 義를 취하는 자가 있으니 이익을 가지고 말하자면, 사람이 하고자 함이 삶보다 더 심한 것이고, 싫어함이 죽음보다 심한 것이 없으니, 누가 기꺼이 생명을 버리고 義를 취하겠는가? 그 깨닫는 것이 義일 뿐이요, 利가 이익됨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小人은 이와 반대이다.”4)라는 말이 나온다. 군자와는 달리 소인은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알 수 없기 때문에 利를 좇는다는 것이다. 우선 이 대목에서 우리는 君子나 小人이나 모두 이를 추구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義는 도리에 마땅함이요’, ‘利는 하고픈 대로 이끌리는 것이다’5)라고 해석을 먼저 해놓고 있기 때문에, 군자는 마땅히 제 하고픈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배려하는 마음[義]6)을 앞세워 자기가 하고픈 바[利]를 추구한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군자와 소인의 차이는 이를 깨달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해 보면 다음과 같은 뜻을 뽑아낼 수 있다.

첫째, 군자도 소인과 같이 利를 추구한다. 이 점에서 유학에서 군자는 절대자가 아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군자관은 합리적인 인간이 자기 이익(self-interest)을 추구한다는 점과 일치한다.

둘째, 군자는 소인과 달리 자기가 하는 바를 막무가내로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에 마땅하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오늘날로 보면 법치에 어긋나지 않게 한다는 뜻을 함의한다. 준법을 가리킨다.

셋째, ‘도리에 마땅함’이란 무엇인가? 군자는 이를 깨닫는 자라고 하였으니 남의 이익을 추구함을 고려할 줄 아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의미로 보면 상호존중(mutual respect)의 뜻을 함의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시장 메커니즘(market mechanism)이 온전하게 작동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따라서 <論語>에서 孔子가 설파하는 ‘君子’는 현대적인 의미에서 ‘합리적인 선택(rational choice)과 심사숙고하여 의사결정(deliberate decision making)을 할 줄 아는 개인’이다. 이렇게 보면 흔히 반시장적으로 해석하는 <論語>의 이 구절이 오히려 온전한 시장작동을 위한 합리적인 개인을 시사(示唆)한다는 점에서 매우 친(親)시장적인 말이다.7)

김정래 (부산교육대학교 교수/교육학, duke77@bnu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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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와 관련한 ‘儒’에 관한 교육학적 해석은 조무남(2004), 교육학론(서울: 학지사)의 제2장을 참조할 것.

2) 이에 관한 참고문헌으로 예컨대 김언종(2001), 한자의 뿌리(서울: 문학동네)와 권지용(2000), 국제실용한자명

해(서울: 수지서림)를 참조할 것.

3) 子曰 君子는 喩於義하고 小人은 喩於利니라.

4) 君子有舍生而取義者하니 以利言之면 則人之所欲無甚於生이요. 所惡無甚於死하니 孰肯舍生而取義哉리오. 其

所喩者義而已요 不知利之爲利故也라. 小人은 反是니라.

5) 義者는 天理之所宜요, 利者는 人情之所欲이라.

6) 원래 ‘義’는 이타적인 의미를 갖는 글자이다. ‘義’는 ‘羊’과 ‘我’의 합성어이다. 이는 사육제에서 볼 수 있듯이 나

[我]를 양[羊]처럼 희생시킨다는 뜻이다. 권지용(2000), 국제실용한자명해(서울: 수지서림, 294쪽). 여기서

‘나’에 앞서 ‘남’을 먼저 생각한다는 윤리적 의미가 나온 것이다.

7) 우리가 아는 유학이 반시장적으로 인식되는 가장 큰 이유는 性理學이 형이상학적 이데올로기 형태로 조선의

국가통치이념으로 자리 잡아 내려온 영향이 아닌가 싶다. 이른바, 시장을 경시하는 士ㆍ農ㆍ工ㆍ商의 신분 질

서가 확립된 것도 이때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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