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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잘못된 인식


최근 은행권의 2011년 3분기 영업실적이 발표되면서 필자는 몇몇 기자들로부터 은행의 행태에 대한 코멘트를 요청받았던 적이 있다. 이 과정에서 느낀 상당수 언론의 은행에 대한 인식은 은행이 중소기업, 서민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금융지원이라는 사회적 책임은 등한시하고 수익확대에만 골몰하여 높은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필자는 이 같은 인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은행이 많은 이익을 올린 것이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한 결과라고 비판한다면 이익 수준이 낮으면 사회적 책임을 충실히 수행하였다고 칭찬할 것인가? 삼성전자 또는 현대자동차가 이익을 많이 올렸다고 언론으로부터 이렇게 비판받는 것은 보기 드물다. 물론 대기업 계열 제조업체는 이익을 상당부분을 해외에서 획득하고 은행의 경우 국내 영업을 통한 이익이 대부분이라는 차이는 있다. 하지만 은행도 이들 제조업체처럼 주식회사이기 때문에 은행 경영자는 이익추구를 통해 주주가치의 향상을 꾀할 의무가 있다.


은행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비판 정당하지 않아


은행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에 앞서 먼저 간단한 통계부터 확인해 보자. 아래 표는 은행권의 대기업 및 중소기업의 대출 잔액 추이이다. 표에서 볼 수 있듯이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잔액은 최근 꾸준히 증가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 통계는 최근 은행이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등한시하였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볼 수 없다. 단, 기업대출 중 중소기업 대출 비중은 올해 1월말 83%에서 9월말에는 80%로 축소되었다. 이는 최근 대기업의 자금수요 증가로 대기업 대출이 상대적으로 많이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정 등으로 인해 필요한 자금을 미리 확보하고자 하는 대기업의 의도에 부분적으로 기인한다.


일반적으로 은행에 대한 비판은 은행에 대한 제도적 보호 장치와 이와 관련된 도덕적 해이에 집중되어 있다. 은행은 예금보험제도 등의 제도적 장치의 도움을 받아 적은 비용으로 예금을 수취하고 이를 기반으로 투자수익을 올린다. 만일 은행이 부실화될 경우 예금자는 제도적 보호를 받게 되고 그 비용은 사회 전체가 떠안게 된다. 반면 은행이 이익을 올릴 경우 그 이익은 은행에 귀속된다. 즉 은행이 모험적 투자를 하여 부실화될 경우 손실은 사회화되는 반면 운 좋게 모험이 성공하면 그 이익은 사유화된다. 은행에 대한 일정수준의 건전성 규제가 정당성을 얻게 되는 것도 이 같은 도덕적 해이의 가능성 때문이다.


<표> 최근 은행의 기업대출 잔액 추이

그렇다면 은행의 사회적 책임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교과서적인 답은 없지만 필자는 건전성을 유지하면서 금융중개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은행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즉 은행의 본질적 경제적 기능을 수행하되 건전성을 유지하여 사회 전체에 부담을 지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 등에서 지적하는 중소기업 및 서민에 대한 금융지원 등은 은행의 사회적 책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은행의 전문화와 관련되는 영역이다. 중소기업 금융 및 서민 금융은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큰 업무영역이며 이 영역에서 건전성을 유지하면서 수익을 내려면 은행은 관련 업무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은행들이 전문성에 있어 차별화가 되어 있지 않아 중소기업, 서민 등에 대한 금융서비스가 부진하다는 비판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은행이 사회적 책임으로서 관련 업무에 소홀히 하고 있다는 비판은 정당하지 않다.


‘건전성’이 은행이 추구해야 할 우선적 덕목


은행 대출이 경기순응적(pro-cyclical)인 경향을 보이는 것은 일반적 현상이다. 경기가 좋을 때 대출은 증가하고 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대출은 축소된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은행에 대한 건전성 규제는 강화되는 추세이다. 감독당국도 경기위축 시에는 은행에 보다 높은 건전성을 요구한다. 요즈음과 같이 국제금융시장이 불안정하고 경기전망이 불투명한 시기에 은행이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면 이는 은행의 건전성 관점에서는 바람직한 일이다. 높은 영업이익은 자기자본비율을 높여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건강한 재무구조 구축에 기여한다.


한편 은행이 수수료 폭리를 취한다는 비판도 많지만 사실 이는 국내 은행산업에서의 경쟁도와 관련지어 논의할 문제이다. 모든 가격은 경쟁의 정도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다. 은행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가격도 예외가 아니다. 국내 은행의 수수료가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떤 수준인지에 대한 정보는 필자가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국내 은행산업은 과점상태라는 것이며 이는 외환위기 이후 은행산업의 재편과정을 거치면서 대형은행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었기 때문이다. 은행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가격은 이 같은 시장경쟁도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감독당국 또는 여론의 압박으로 수수료를 낮출 수는 있겠지만 그 효과는 단기에 그칠 가능성이 크고 근본적인 처방도 아니다. 따라서 은행 수수료가 지나치게 높은 것으로 판단되면 이는 경쟁정책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1) 장기적으로는 국내 은행산업의 진입장벽을 낮추어 현재의 과점시장을 보다 경쟁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은행인가에 필요한 최소자본금은 1,000억원이며 이는 외국과 비교해보면 매우 높은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2)


국내 은행들은 그동안 업무영역 전문화가 부족하여 자산의 쏠림현상이 빚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받아왔다. 특화된 분야가 없기 때문에 경제상황에 따라 특정 자산에 자원배분이 집중된다는 것이다. 중소기업 및 서민을 대상으로 한 금융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면 이는 이 분야에서 리스크를 통제하면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역량을 가진 금융기관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중소기업 및 서민금융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은행이 적다는 문제점을 제기할 수는 있지만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중소기업 및 서민 금융을 논의하고자 한다면 이는 논의의 방향이 잘못되었다. 물론 은행경영을 통해 창출된 이익을 사후적으로 사회공헌 활동에 사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은행의 영업과정에서의 자원배분이 사회공헌 또는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근래의 국내외적 경험, 또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 우리는 은행의 건전성은 한 나라 경제의 부침(浮沈)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을 알고 있다. ‘건전성’은 은행이 추구해야 할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이며 이를 충실히 수행하는 은행이야말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은행이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tklee@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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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제로 2008년 은행 간 외국환 수수료 신설 담합이 적발되어 8개 은행에 과징금이 부과된 사례도 있다.

2) 외국의 경우 은행 설립 시 필요한 최소자본금은 미국은 백만달러, 영국은 백만파운드, 일본은 20억엔이다(이

재연,『금융규제의 운영실태분석과 개선방안: 은행산업을 중심으로』, 2004).


KERI 칼럼_2011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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