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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합리성과 현대경제학의 과제


경제학은 인간이 이기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가정 하에 경제현상을 분석하고, 설명하며 예측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경제활동의 주체인 경제인이 언제나 합리적인가? 합리적이라면 어느 정도로 합리적인가? 왜 인간은 합리적으로 행동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하여 진지하게 연구한 학자가 1978년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사이먼(Herbert A. Simon)이다.


사이먼은 인간을 완전한 합리적인 존재가 아닌 ‘제한적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을 지닌 존재로 인식한다. 사이먼은 경제학의 기본가정에 도전하여 경제학ㆍ경영학ㆍ행정학ㆍ심리학 및 인공두뇌학 분야에까지 괄목할만한 업적을 쌓아 20세기 사회과학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최고 학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가 학문에 접근하는 자세는 의외로 간단명료하다. 사회과학도 자연과학과 마찬가지로 논리적ㆍ연역적이어야 하며, 동시에 실증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의 다른 학자들은 인간은 이성에 의한 합리적 의사결정의 경우보다 오히려 감정이나 정서 또는 심리적인 영향을 받아 행동하는 경우가 더욱 많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결국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며 언제나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존재도 아니라는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 합리적이지 못한 인간을 합리적 존재로 가정하여 이론을 구성하면 그 이론은 현실적 타당성(relevancy)이 결여되어 현상에 대한 설명력과 예측력 그리고 처방능력까지 약해진다.


인간은 언제 그리고 왜 합리적인 행동을 하는가? 자세히 보면 대부분의 인간은 경제활동에 있어 언제나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감정에 이끌려서, 때로는 즉흥적으로, 때로는 군중을 따라서 행동하며 살아간다. 실제로 상당수의 사람들은 오히려 비합리적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합리성은 인간 본성에 절대적 명제로서 주어진 전제가 아니라, 인간은 자신의 목적을 최선으로 달성할 가능성이 있을 때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보는 것이 훨씬 타당하다. 따라서 목표를 가진 경제주체들은 누구나 합리적이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목표만 있다고 인간 합리성이 최고 수준으로 발휘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원이 희소하고 경쟁이 치열할수록 사람들은 더욱 합리적으로 행동하게 될 것이다. 몰인간적인(impersonal) 시장경쟁은 인간의 합리성을 자극하는 원동력이다. 개인이나 기업, 정부조직도 합리적일 때 경쟁력이 생긴다. 하이에크(Friedrich August von Hayek)는 30여 년 전에 이미 그의 저서 『법, 입법 그리고 자유(Law, Legislation, and Liberty) Vol.3』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합리적으로 행동하게 하는 것은 경쟁이다”라는 통찰력 있는 주장을 하였다. 결국 시장에서 자원배분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경쟁의 결과이지 인간이 완전히 합리적이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 M. Gibson(2010)은 “합리성은 미덕이지 가정이 아니다(rationality is a virtue, not an assumption)”라고 매우 적절히 표현하였다. 목표 지향적으로 잘 설계된 정당한 경쟁제도가 가계와 기업과 정부와 근로자를 보다 합리적으로 행동하게 할 것이다. 국가발전을 위한 사회경제제도의 설계는 경제학과 정책학이 연구해야 할 분야이다.


최근 세계경제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여러 위기 현상들에 대해서 명성이 높은 경제학자들조차 예측은 물론이고 대책조차 제대로 내놓지 못한다는 자기반성적 태도가 점점 공감을 얻어가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의 전문적 영역의 이론적 성공뿐만 아니라 실제적 성공에 대해서도 과신하고 있었던 경제학자들이 최근에는 자신감을 잃어버렸다는 크루그먼(P. Krugman)의 신랄한 비판이 담긴 칼럼(“How die economists get it so wrong?,” The New York Times, 2009. 9. 6)을 둘러싼 학자들 간의 논쟁이 재미있게 전개된 적이 있다. 2008년 9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시장의 거품붕괴에 의해 촉발되어 전 세계 경제에 심대한 충격을 주었던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사의 파산신청과 금융위기, 어제는 민간은행 위기에서 내일은 정부재정 위기로 불이 옮겨 붙듯이 2009년 후반부터 남유럽의 스페인과 그리스의 재정위기에 의해 야기되고 있는 세계경제의 어두운 그림자들에 대해서 경제학자들은 속수무책인 듯하다.


우리나라 경제학계에서는 이러한 종류의 반성과 논쟁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최근 저명한 원로 경제학자 중 한 사람이 경제정책의 결정에 있어 경제학자보다는 정치가의 역할이 더 크기 때문에 정치가 중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물론 이 말은 부분적으로는 옳다. 공공정책(public policy)은 “정치과정을 거친 공동체의 의사결정”이기 때문에 경제정책도 정치논리에 영향을 받는 것이 필연적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경제학자의 책임이 면해지는 것은 아니다.


가정이 달라지면 이론도 달라지며 때로는 패러다임조차 진화하게 된다. 코페르니쿠스(N. Copernicus)의 지동설, 다윈(C. Darwin)의 진화론, 프로이드(S. Freud)의 정신분석이론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규제 공익이론을 규제 사익이론으로 전환시킨 스티글러(G. Stigler)의 실증적 연구도 선하고 전지전능하다는 기존의 정부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처럼 역사상 위대한 연구들은 대부분 통념(conventional wisdom)으로 간주되어 왔으나 현실적 타당성이 없는 가정과 전제들에 도전함으로써 탄생되었다. 향후 경제학 연구에 있어서 연역적 논리 구성력과 현실 적합성 및 실증적 연구방법론이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성우 (한성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leese@hans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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