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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분배정책과 이념


최근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의 전교조 명단 공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전교조와 소속 교사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고 명단 공개의 합법성에도 서로 다른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1989년 전교조 창립 당시 개인적으로 불이익을 당할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교사들의 명단을 공개했던 사실을 돌이켜보면 작금의 사태에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전교조가 창립 이후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은 매우 심대하다. 교육현장에서의 전교조의 전반적인 역할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이념적 성향을 노골적으로 보였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교육현장에서의 교사들의 이념 성향 및 이념 교육은 자라나는 학생들의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고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이념 분포에도 변화를 가져왔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었던 또 다른 쟁점은 ‘초ㆍ중등학교 전면 무상급식 실시’에 관한 것이다. 전교조 명단 공개와 전면 무상급식 실시 주장은 서로 무관한 쟁점처럼 보이나 우리 사회에서의 좌파 대중영합적 이념 전파 및 확산 시도에 따른 파열음과 이런 이념의 정책화 시도라는 점에서 상호 연관성을 발견할 수 있다. 전면적 무상급식의 실시 주장은 선거철에 나온 대표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전면적 무상급식 실시 주장이 이념적으로 보편적 복지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편적 복지의 추구는 광범위한 재분배정책을 시행하는 유럽식 복지국가를 지향함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 정치적으로는 좌파 성향의 정부가 들어선 반면 경제적으로는 소득분배가 악화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재분배정책의 확대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외환위기 이후 크게 높아졌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입, 4대 보험제도의 확대 적용, 최저임금제의 전 산업 확대 등 ‘보편적 복지’의 구현을 위한 재분배정책이 채택되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간 정부 차원에서 ‘보편적 복지’의 구현을 위한 재분배정책의 확대를 위한 시도가 이어졌고 이러한 시도는 ‘보편적 복지’의 정책화에 일정 정도 기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정부의 이념지향 및 우리 사회 이념 지형의 변화에 기인하였다고 볼 수도 있는 반면 소득분배의 악화에 따른 재분배정책에 대한 요구의 증대에 영향을 받았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보편적 복지’의 구현을 위한 재분배정책의 확대는 유럽의 경험에서 보듯이 복지비용의 과도한 증대로 인한 재정건전성의 악화와 더불어 노동 및 투자유인을 감소시켜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지속적인 성장을 제약하는 요인이 된다. 따라서 재분배정책의 확대를 가져오는 요인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정 이념의 전파 및 확산이 재분배정책의 확대를 위한 필요조건인가 아니면 소득불평등과 같은 경제적 변수가 재분배정책의 수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가는 성장 친화적 시장경제를 지향함에 있어서 중요한 제약조건을 파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재분배정책의 규모 및 결정 메커니즘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 가장 유용한 방안은 미국과 유럽의 차이를 비교해 보는 것이다. 미국에 비해 유럽의 재분배정책의 규모와 범위가 훨씬 크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는 소득불평등과 재분배정책 간의 정치적 메커니즘이 현실과 일치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증거이다. 왜냐하면 미국과 유럽의 세전 소득불평등 수준은 큰 차이가 없거나 미국이 상대적으로 다소 높은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한 여러 실증연구를 통해서도 소득불평등 수준의 재분배정책에 대한 영향은 미미하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1). 따라서 소득불평등도와 같은 경제적 변수가 재분배정책의 수준이나 방향을 결정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이념의 차이가 재분배정책의 차별성을 가져오는가? 다시 유럽과 미국의 경우를 비교해 보면 재분배를 위한 정책 혹은 제도의 측면에서 19세기 후반의 미국과 유럽은 큰 차이가 없었으나 20세기에 들어 미국은 건국 이래의 정치제도를 유지한 반면 유럽은 정치적 격변을 겪으면서 정치제도의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정치제도의 변화에 있어서 대표적으로 유럽에서의 선거제도 변화, 즉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들 수 있다. 미국은 기존의 다수결 제도를 유지한 반면 유럽은 대부분의 국가들이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였다. 비례대표제의 도입 여부가 중요한 것은 소수집단의 대표성이 담보될 수 있는 특징 때문이다. 유럽에서의 비례대표제 도입은 소수집단이었던 좌파 사회주의 정당이 주요 정당으로 부상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이를 통해 소득재분배를 목적으로 하는 정책의 광범위한 시행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럽에서의 비례대표제의 도입은 좌파 사회주의자들의 노동운동 및 대규모 파업, 그리고 혁명운동에 직접적으로 기인했다는 점이다.

반면 미국에서 비례대표제가 도입되지 않은 것은 노동운동의 영향이 결정적이지 않았고, 사회주의 정당의 정치적 영향력이 제한적이었던 데에 있다. 미국의 경우 지리적 특성과 헌법 및 권력기구의 특성이 노동운동의 확대 및 사회주의 정당의 부상을 제약하였다고 할 수 있다. 넓은 지역에 인구가 분산된 미국의 특징이 국가 전반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노동운동의 확대를 제약하였고, 재산권의 보호 및 계약의 자유를 중요한 헌법정신으로 규정하고 있는 미국의 헌법과 사법체계 하에서 사회주의 정치세력의 확장은 용이하지 않았다. 의회 중심의 상대적으로 중앙집권화된 유럽 국가들에 비해 분권화된 미국의 체제, 특히 선거에 대해 독립적인 사법체계는 헌법정신에 위배되는 사회주의적 입법 시도를 좌절시키는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2).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재분배 정책에 있어서의 유럽과 미국의 차이가 나타난 원인이 사회주의 정당의 정치적 영향력이 유럽에서는 심대했던 반면 미국에서는 재산권 보호 등 헌법정신을 위협하는 사회주의의 위력이 상대적으로 미약했던 점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유럽에서의 복지국가 성립의 근본적 원인은 시장경제 메커니즘에 따른 분배 시스템은 불공평하므로 시스템의 변혁이 필요하다는 사회주의 이념에 있다. 이념의 대중전파를 가능케 하는 정치제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유럽에서 사회주의가 주요 이념으로 자리매김 하였다고 볼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사회주의자들의 정치적 담론 주도가 유럽에서 가능했던 것은 사회주의 정당들이 국가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각국의 주요 정당이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럽에서 마르크스주의 등 좌파 이념의 전파에 결정적으로 공헌한 것은 교육현장에서 교원노조(teachers' union)에 의해 좌파가 주도권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에 있다. 독일과 프랑스의 경우 사회민주당이나 인민전선이 정권을 획득하기 이전부터 교원노조에 의해 좌파가 학교를 장악하여 초등교육에서부터 사회주의적 이념의 주입을 위한 노력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스웨덴에서도 1930년대 이후 사민당이 집권당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정부 정책에 의해, 그리고 좌파적 교원노조에 의해 교육의 급진적 변화가 진행되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에서는 초등학교(elementary school) 등 기초교육(basic education)에서부터 마르크스주의에 기초한 사회주의적 세계관이 교육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적 세계관에 따르면 기존의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는 불평등한 계급관계를 야기하고 이에 따라 고착화된 계급 간 소득불평등이 지속되므로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 변혁이 필요하다. 유럽 사회에서는 20세기 전반에 걸쳐 교육을 통해 이와 같은 이념이 전파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유럽인들이 미국인들에 비해 시장경제 메커니즘에 따른 소득의 분배가 불평등하다고 느끼는 원인이며 유럽에서 재분배정책이 상대적으로 광범위하게 큰 규모로 행해질 수 있는 이유이다. 공평성(fairness)에 대한 인식이 재분배에 대한 선호에 영향을 준다는 논의는 최근의 연구들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3).

결론적으로 대중영합적 재분배정책이 광범위하게 행해지는 복지국가의 성립은 사회주의 이념의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에 의한 것이고, 이와 같은 정치적 영향력을 가능하게 만든 정치 제도적 환경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민주화 이후 강력한 노동운동의 전개 및 좌파이념 세력의 확대, 그리고 좌파 성향의 정권 등장을 경험하였으며 전교조의 세력 확장에 따라 학교 현장에서의 사회주의적 세계관의 교육 및 전파 등의 현상도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학교에서의 전면 무상급식 실시 주장과 같이 ‘보편적 복지’를 목적으로 하는 대중영합적 정책에 대한 요구는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이와 같은 요구가 정부 정책에 반영될 가능성이 낮지 않다는 것은 최근 이명박 정부의 정책기조에서도 일부 확인할 수 있다.

‘보편적 복지’를 추구하는 이념의 실현이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보장하고 모든 사람들의 후생을 증대시킨다면 문제는 없다. 그러나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이라는 예를 들지 않더라도 유럽 국가들에서 나타났던 소위 ‘복지병’의 폐해, 대중영합주의가 발호했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경제적 파국 등 20세기에 ‘보편적 복지’를 추구한 이념의 실현에 따른 결과가 어떠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또한 ‘보편적 복지’의 폐해를 인식하여 복지정책의 방향을 ‘선택적 복지’로 전환하는 세계적 조류 속에서 ‘보편적 복지’를 추구하는 이념의 확산은 시대착오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념의 확산이 빠르게 전개되고 정치 제도적 환경이 이를 뒷받침한다면 시대에 역행하는 정책이 채택되어 우리 경제의 지속적 성장이 제약되는 것을 피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자유로운 시장경제의 구현을 통해 우리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과 사회후생의 지속적인 증대를 도모하려면 이념의 역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전교조 명단 공개 논란과 전면적인 학교 무상급식 실시 주장을 보면서 깊은 고민을 하게 되는 이유이다.

송원근 (한국경제연구원 금융재정연구실장, wsong@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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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erotti(1996)는 내생적 재정정책의 정치적 메커니즘에 대한 실증분석을 통하여 소득불평등도가 재분배정책

에 영향을 미치지 않음을 보였고, 민주주의 국가들만을 대상으로 한 경우에도 소득불평등은 유의한 영향을 주

지 않았다는 분석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Rodriguez(1999)에서는 선진국들의 경우 소득불평등과 재분배

정책 간의 유의미한 관계가 없음을 보이고 있다.

2) 미 연방대법원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재산권 보호 및 계약의 자유에 근거하여 노동운동 및 사회주의

정치세력에 불리한 판결을 내린 예가 다수 있다. 또한 뉴딜의 대표적 정책인 전국산업부흥법(NIRA: National

Industrial Recovery Act of 1933)에 대한 미 연방대법원의 위헌 판정도 계약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보호

하려고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3) Alesina and Angeletos(2005), Benabou and Tirole(2006), Alesina, Cozzi, and Mantovan(2009)에서는 공

평성에 대한 인식이 재분배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들 연구의 공통점은 동일

한 조건을 가진 국가들에서도 공평성에 대한 인식의 차이로 인해 상이한 정책 및 발전경로를 갖는 상이한 균

제 상태(steady states)에 있게 된다는 것을 보인 점이다. 이와 같은 상이한 균형은 미국과 유럽의 차이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위의 연구들은 주장하고 있다.

<참고문헌>

Alesina, A. and E.L. Glaeser, Fighting Poverty in the US and Europe A World of Difference, Oxford University Press. 2004.

Alesina, A. and G-L. Angeletos, “Fairness and Redistribution,” American Economic Review, 95(4), 2005, pp.960-980.

Alesina, A, G. Cozzi, and N. Mantovan, “The Evolution of Ideology, Fairness and Redistribution,” NBER Working Paper 15587, 2009.

Benabou, R. and J. Tirole, “Belief in a Just World and Redistributive Politics,” NBER Working Paper 11208, 2005.

Perotti, R., “Growth, Income Distribution, and Democracy: What the Data Say,” Journal of Economic Growth, 1, 1996, pp.149-187.

Rodriguez, F., “Inequality, Redistribution and Rent-seeking,” mimeo,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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