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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건전성 논의의 본질


국내외적으로 재정 건전성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금융위기에 이어 일부 국가에서는 재정위기로 국민경제 전반이 위협받고 있다. 재정위기의 배후에는 재정적자의 지속과 그로 인한 국가채무의 누적이 자리 잡고 있다. 재정 건전성을 회복ㆍ유지하기 위해서는 재정적자와 국가채무의 수량적 크기보다는 재정 운영의 본질과 실체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재정적자의 발생과 국가채무의 증대는 정부 세입과 세출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나타난다. 세출과 세입의 상호작용의 결과로서 재정수지가 적자 또는 흑자로 나타나기에 세입과 세출의 내용이 타당하면 재정수지 그 자체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재정의 적자 여부가 아니고 세입과 세출의 규모와 그 구성 내용에 있다.


논의의 핵심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매우 간결한 사례로 비유ㆍ검토해 보자. 예를 들어 빌 게이츠(Bill Gates) 회장이 의상을 구입하고자 하는데 자신이 매우 바쁘므로 대리인을 고용하고 그에게 모든 것을 일임했다고 가정하자. 게이츠를 위해 대리인은 두 가지 과제에 직면하는데, 첫째는 얼마만큼의 의상을 구입하고 각 의상 종류별로 얼마를 지출할 것인가 하는 과제이고, 다른 하나는 그 구입비용을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이다.


편의상 두 번째의 비용충당 문제부터 다뤄보자. 대리인이 의상 구입비로 금년도에 500만 원을 책정했다고 가정하자. 500만 원을 충당하기 위해 대리인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첫째는 게이츠의 은행계좌로부터 500만 원을 인출하여 현금으로 지불하는 방법이고, 둘째는 게이츠의 신용카드로 외상 구입한 후 1년 뒤에 결제하는 방법이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사항은 이 두 가지 자금충당 방법 중 대리인이 어느 방법을 택하더라도 게이츠의 경제적 상황에는 전혀 변화가 없으므로 재원충당 방법 자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리인이 게이츠로부터 1,000만 원의 예금통장을 건네받았으며 시중 이자율이 10%라고 가정하자. 만약 의상을 구입하지 않는다면 게이츠의 은행잔고는 1년 후 1,100만 원이 될 것이다. 첫 번째 현금구매의 경우 대리인이 오늘 500만 원을 인출하므로 은행잔고는 500만 원으로 감소하고, 1년 후의 이자 50만 원을 포함하면 게이츠의 최종 잔고는 550만 원이 된다. 두 번째 방법인 신용카드로 외상 구매한 후 1년 뒤에 대금을 지급하는 경우, 1년 뒤 게이츠의 은행잔고는 1,100만 원이 되고, 여기서 신용카드 청구액 550만 원이 인출될 것이므로, 게이츠의 최종 은행잔고는 550만 원이 된다. 첫 번째 방법에서는 50만 원의 이자를 잃어버렸지만 두 번째 방법에서는 50만 원을 벌었으나 번 후에 그 이자를 신용카드회사에 준 것이다.

이상의 간단한 사례는 게이츠의 대리인이 의상 구입자금을 어떻게 충당하든 빌 게이츠의 은행잔고는 똑같다는 것을 보여 준다. 지금까지의 예에서 게이츠를 국민, 대리인을 정부로 바꾸면 결국 정부의 세출을 세금으로 충당하든 국공채라는 부채, 즉 적자재정으로 충당하든 아무런 차이가 없음을 보여준다. 물론 현실은 앞의 간단한 사례보다 더 복잡하다. 게이츠가 얼마나 오래 사느냐? 자식에게 유산을 남기느냐? 남길 경우 얼마나 남기느냐? 새로운 수입이 생기느냐? 가족이 늘어나느냐? 등에 따라, 또 의상 구매 대금결제의 두 가지 방법 중 어느 방법을 쓰느냐에 따라 특정 시점에서 빌 게이츠의 은행잔고의 규모가 다를 수 있다.

게이츠의 대리인이 내리는 두 가지 결정 중에서 지금까지 논의한 재원충당 방법에 관한 두 번째 문제보다는 게이츠를 위해 대리인이 의상의 구입에 얼마만큼 지출을 하고 어떠한 의상을 구입하느냐 하는 첫 번째 문제가 더 중요하다.

게이츠는 자신의 의상구입에 얼마나 지출했으면 하는 판단이 분명히 있다. 대리인이 결정한 의상구입비 500만 원이 게이츠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다. 잦은 강연을 대비하여 게이츠가 800만 원을 쓸 용의가 있는데 대리인이 500만 원밖에 지출하지 않을 수 있고 근검절약하는 게이츠가 300만 원만 지출했으면 하는데 대리인이 800만 원을 지출할 수 있다. 국가에 꼭 필요한 국민이 원하는 세출의 적정 규모가 있는데 현실에서 관료와 정치인은 국민을 위한다는 온갖 명목으로 세출을 확대시켜 왔다. 본인(국민)이 원하지 않는 불필요한 의상을 대리인(정부)이 무조건 사다 안기는 셈이다.

같은 500만 원을 의상 구입에 지출한 경우에도 내의ㆍ정장ㆍ캐주얼이라는 서로 다른 용도의 의상을 두고, 그리고 각 용도에서 의상의 질과 색깔을 두고 대리인의 결정이 게이츠의 마음에 전혀 들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게이츠는 정장과 캐주얼의 비율을 7대 3으로 하고 싶은데 대리인은 3대 7로 구입하면 어떻게 되는가? 게이츠는 정장의 색깔을 회색으로 하고 싶은데 대리인이 검정색으로 구입하면 어떻게 되는가?

게이츠와 대리인 관련 예시에서는 재정적자 규모 자체와 그 조달방법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세출 규모와 그 내역이라는 점이다. 세출이 새로운 부가가치를 많이 창출하고 국민복지에 크게 기여한다면 적자재정이라도 문제가 되지 않으며, 세입이 넘쳐 재정이 흑자를 유지하더라도 불필요하고 생산성이 낮은 부문에 정부 지출이 이루어지면 문제가 된다. 국민의 세금이 바탕이 되어 세출 활동이 이루어지는 경우 그 세출이 생산성 있는 사업에 투입되고 개별사업이 낭비 없이 추진되는 것이 중요하다.

현실에 있어서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재정적자의 발생과 국가채무의 누적이 아니고 정부 지출의 내용이 낭비적이고 생산성이 낮은 데 있다. 특히 최근의 국가채무의 급증에서 우려되는 것은 불요불급한 지출에 충당하기 위해 국공채가 발행되는 점이다. 경제위기 극복, 실업구제와 일자리 창출, 친 서민 대책 등을 빌미로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고 있다.

재정적자를 축소하고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재정적자는 세출에서 세입을 차감한 수치이므로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세출을 줄이거나 세입을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 계산상으로는 두 방법 모두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재정적자의 축소 또는 균형예산의 달성을 위해서는 세출 감소나 세출 증가의 억제가 최선의 정책이다. 세출 감소가 아닌 세입 증대를 통해 균형재정을 달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균형재정의 달성에 성공한 나라들의 경험에서 볼 때 세입 증대보다 세출 감소가 재정적자 해소의 최선의 방법인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혹자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의 재정이 건전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재정이 건전하기에 좀 헤프게 써도 괜찮은 것 아니냐고 한다. 이러한 주장은 모순이고 잘못된 것이다. 모범적으로 건전하면 그것을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지, 왜 건전한 것을 무너뜨리려 하는가? 실효성을 극대화하는 집행계획이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나 정부가 언제 예산 낭비 방지나 실효성 극대화를 위한 구체적 제안을 제시한 적이 있는가?

방만한 재정이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해이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국민도 전문가도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 공공부문의 헤픈 쓰임새는 민간부문의 과소비를 유도하고 공공부문에서의 조그마한 빈틈은 사회 전체 기강의 해이를 가속화시킨다. 작은 규모의 예산을 가진 나라가 자원관리를 효율적으로 했으며 작은 정부는 국가의 생산성을 저하시킨 경우는 없으나, 국가 예산이 방대하고 민간부문에 원칙 없이 개입하는 나라는 언제나 난관에 봉착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지금은 세출의 규모를 대대적으로 축소하고 세출의 내역을 전반적으로 다시 조정해야 할 시점이다.

최 광 (한국외대 경제학부 교수/前 보건복지부 장관, choik01@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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