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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들의 부실 사태와 진정한 규제완화


상당수의 저축은행들이 경기침체 속에서 대출이 부실화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1) 저축은행의 예금은 5천만 원까지 일반은행의 예금과 동일하게 지급이 보장되면서도 좀 더 높은 이자를 주었기 때문에 심지어 자본잠식이 의심되는 저축은행으로도 예금이 많이 들어왔지만 상당수 저축은행들은 이 돈을 수익이 나도록 운용하는 데 실패하였다. 저축은행들의 부실에 따라 납세자들이 떠안게 될 누적부담액은 곧 3조 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2)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상적 기준’(예컨대 은행에 대한 기준)보다 완화된 규제와 감독을 저축은행 부실화의 원인으로 보고 규제와 감독의 강화를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예금보험제도 자체가 지닌 도덕적 해이의 유발효과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는다.3)

규제와 감독을 강화한다고 해서 이런 부실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부실 문제의 뿌리는 납세자가 부실금융기관의 부채를 대신 해결해 주는 구조이다. 이 구조가 남아 있는 한 규제와 감독을 강화하더라도, 비슷한 부실사태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이 구조를 제거하는 ‘진정한’ 규제완화가 이루어져야 비로소 부실사태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4)

1. 예금보험제도는 은행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

어떤 기업가가 자신의 돈 8,600만 원과 빌린 돈 9억1,400만 원, 즉 총 10억 원으로 사업을 하는데, 빌린 돈 9억1,400만 원 가운데 4억7,000만 원은 혹시 이 기업가가 잘못 투자해서 손실을 보더라도 그 전액을 정부가 지급을 보증한다고 해보자.5) 이는 다름 아닌 자기자본비율 8.6%인 은행의 은행가가 직면한 경영환경이다.(결국 이 은행가는 그 어떤 기업가도 누릴 수 없는 놀라운 경영환경을 누리는 셈이다.) 여기에서 4억7,000만 원은 예금수신액이며, 정부의 지급보증은 예금보험제도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 은행가는 이렇게 들어온 돈으로 위험한 대출을 추구할 유혹을 느낀다. 혹시 엄청난 손실을 보더라도 최악의 경우 8,600만 원을 잃으면 되고-나머지 손실은 자신(과 주주들)이 아닌 예금자나 정부(즉, 납세자들)가 세금으로 채워준다-혹시 크게 성공하면 예금자들에게는 약정된 이자율만 지급하면 되고 모든 수익은 자신(과 주주들)의 몫이 된다. 예금보험제도로 인한 비대칭적인 상벌구조는 이처럼 은행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부추긴다.


2. 상벌구조의 비대칭성이 커질수록 도덕적 해이는 더 심해진다


이번에는 예금보험제도에서 보증하는 내용이 동일한 반면, 자기자본비율만 5.6%로 낮아졌다고 해보자. 잃을 것이 더 적어져 그 은행가는 종전보다 더 위험한 대출을 추구할 유인을 갖게 될 것이다. 상벌구조가 더 비대칭적이 되므로 도덕적 해이를 더 심하게 부추기게 됨은 물론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은행은 자기자본비율이 최소 8%를 유지하고, 저축은행의 경우 최소 5%를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3. 은행-저축은행 간 평평한 운동장(level playing-ground)을 만들자


각각에 요구되는 최소 자기자본비율은 다른데 1인당 5,000만 원으로 예금지급보장한도는 같을 때, 저축은행은 은행보다 훨씬 더 위험을 선호하는 유인을 가진다. 높은 이자율을 제시하여 더 많은 예금을 유치한 후 이를 높은 수익을 주지만 좀 더 위험한 곳에 투자(대출)하려고 할 것이다. 5,000만 원 이하 예금자들은 금리 제공에서의 차이를 중시할 뿐, 자기자본비율이나 재정운용의 건전성 면에서의 차이는 무시하게 된다. 이에 따라 2009년 한 해 동안 은행 전체 예금수신액은 3% 증가하는 동안 저축은행 전체 수신액은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63조 원에서 75조 원으로 20%가량 늘어났다. 그렇다면, 예금보험제도의 측면에서 은행과 저축은행들 간 ‘평평한 운동장’ 만들기란 예금보호의 범위를 저축은행에 불리하게 하거나 더 높은 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이다.6)

서민금융회사인 저축은행이 지방은행과 견줄 정도로 대형화된 것은 지난 2005년 금융당국이 인수합병(M&A)을 통한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인수조건을 완화하고 지점 신설을 허용했을 때부터이다. 대형회사의 파산이 전체 시장에 줄 파장을 우려해 “너무 커서 파산케 할 수 없다(too big to fail)”는 금기는 금융시장에서 더 강한 편이다. 이런 금기를 파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저축은행의 대형화에 따른 ‘평평한 운동장’ 만들기는 대형 저축은행을 지방은행으로 전환하거나 이들을 지방은행에 준하는 감독과 규제를 받도록 하는 것이다.


4. ‘진정한’ 규제완화는 납세자에 대한 손실 전가를 막는 일이다


다음으로 주목해야 할 점은 예금보험제도에서는 은행이든 저축은행이든 비대칭적 상벌구조 아래 있기 때문에 이들의 도덕적 해이가 납세자들에게 손실을 떠넘길 수 있다는 점이다. 왜 금융회사는 다른 회사들과는 달리 납세자들의 부담으로 ‘도덕적 해이’를 시도해도 괜찮은 것인가? 어떻게 해야 저축은행이든, 은행이든 혹은 그 누구든 자신의 손실을 납세자들에게 떠넘길 수 없도록 할 수 있을 것인가?

사실 이렇게 금융회사들을 특별하게 취급해야 할 본질적 이유는 없다. 은행 한 곳이 망하면 감당할 수 없는 파급효과로 금융시스템 전체가 마비된다고 주장할 사람들이 많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최근 미국에서 리먼 브러더스와 같은 대형은행이 파산했지만 그 중 우량부문은 다른 곳에 인수되고 나머지는 사라졌을 뿐 금융시스템이 무너지지도 않았고 “지구가 궤도를 벗어나 태양으로 향하지도 않았다.”7)

5. 예금보호한도의 단계적 하향 계획을 발표하는 것은 어떨까

흔히 예금보험제도는 금융시스템의 안정에 필수적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런 선입견을 버리고 예금보험제도 자체에 대해 깊이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예금보험제도는 예금자들이 불안한 소식을 듣고 예금을 인출하기 위해 은행으로 몰려가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불건전한 은행’에 계속해서 예금을 하도록 하여 문제를 더 키우는 측면도 있다. 또 예금자들이 예금을 인출하려고 몰려들지만 않는다면, 금융회사들은 고수익을 노린 위험한 투자를 감행할 유인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예금보험제도는 금융시스템을 오히려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

시장에서 신중의 덕목이 배양되는 것은 그렇지 못했을 때 입을 손실 때문이다. 이를 완화하면 곧바로 문제가 발생한다. 예금보험제도는 은행들의 손실을 완화함으로써 시장규율을 갉아먹는다. 이런 점에서 예금보험제도는 실은 반(反)시장적 제도이다.8)

최근의 저축은행들의 부실화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우리는 당연히 은행-저축은행 사이에 존재하는 상벌구조의 비대칭성을 고쳐서 ‘평평한 운동장’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한걸음 더 나아가 금융회사들이 도덕적 해이를 범할 유인 자체를 어떻게 없앨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예금보호 한도를 단계적으로 낮추는 방안을 연구하여 언제쯤 이를 발표하겠다고 하는 것은 어떨까? 은행들과 저축은행들은 투자에 더 신중해지고 예금자들도 이제 종전보다 좀 더 금융회사들의 자기자본비율을 살펴보지 않을까? 그렇게 한다면 납세자들이 직간접적으로 금융회사의 손실을 부담할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김이석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kimyisok@keri.org)

---------------------------------------------------------------------------------------------------1) 최근(2010년 1월 13일) 한국경제신문은 1면 머리기사로 전북 최대 저축은행인 전일상호저축은행(자산규모 1

조 3000억 원 상회)의 영업정지에 따른 파장을 보도하고 저축은행들의 문제를 긴급 점검하고 있다. 현재 105

개 저축은행들 중 우량 저축은행의 기준인 ‘8-8 클럽’(자기자본비율 8% 이상, 고정이하여신(부실여신)비율

8% 미만)에 들어가지 못한 곳이 17곳이며, 이 중 자기자본비율 5% 미만인 곳이 3곳, 최저기준 5%에 머물러

있는 곳이 3곳이라고 한다.

2) 지난해 말 영업정지를 당한 전일저축은행의 손실 규모가 5,900억 원이어서 지난해 말 2조3700억 원이었던 저

축은행 예금보호기금의 적자규모는 이제 거의 3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 연간 전체 저축은행 보험료 총액은

2,400억 원으로 3조 원에 이르는 적자를 메우기만 하려고 해도 15년 동안 단 한 건의 사고도 터지지 않고 예보

료를 쌓아야 한다(한국경제신문, “저축은행 예금보호기금 2조 넘는 적자에 허덕,” 2010.1.14). 현재 이 적자를

은행 예금보험계정에서 빌려 메우고 있으나, 비축되어 있어야 할 은행의 손실에 대비한 재원이 그만큼 사라

졌다는 의미에서 납세자들이 이미 3조 원의 부담을 안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3) 이외에 대형화한 저축은행을 지방은행으로 키우거나 이들의 영업 영역을 넓혀주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4) 토머스 우즈 주니어, (안재욱 해제, 이건식 역), 『케인스가 죽어야 경제가 산다』, 리더스북, 2009, 3장 참고.

5) 이 사례는 다음의 논문의 예를 이용하였다. Rozeff M., “Deregulation Blunders and Moral Hazard”.

6) 고금리를 제시하는 저축은행의 예금에 대해 예금보호에서 제외하는 안도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무엇이 고금

리인지는 경제 상황에 따라 변동되고, 은행금리에 비해 얼마나 높아야 규제대상인지 판단이 요구되므로, 자

의성 시비가 발생할 수 있다.

7) 토머스 우즈 주니어, 전게서 3장 참고.

8) 이런 문제가 있지만 예금인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예금보험제도를 두고 그 대신 금융회사들의 도덕

적 해이 추구를 규제할 규제당국이 필요하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최근의 저축은행들의 부실 사태는 규제당국

이 존재하지만 도덕적 해이 문제는 통제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규제당국은 이미 수년 전에 저축은행들의 재

무건전성 문제와 유인구조의 문제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 손을 댔다가 저축은행의 예금에 대한 인출

사태가 발생할까 두려워 유인구조의 변화를 이루어내지 못했다. 단지 부실 저축은행들의 인수합병을 유도하

여 저축은행들이 대형화하도록 유도하였다. 최근 영업정지된 전일저축은행만 보더라도 규제당국은 최소한

2007년 12월부터 문제를 알고 있었지만 2년 후 영업정지 결정을 내리기까지 인수합병을 시도했으나 인수할

곳을 찾지 못한 채 부실의 규모만 늘어나 납세자들이 져야 할 부담만 늘어났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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