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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게임에 빛바랜 MB 정부의 규제개혁


한쪽에선 뽑고 다른 한쪽에선 세웠다. MB 정부 인수위 시절, 각종 매체를 떠들썩하게 장식한 규제 전봇대의 현재 성적표 이야기이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대불산업단지 시찰시 산단 내 물류 비효율을 초래한 전봇대의 철거를 지시하였고 5년간 처리되지 못한 전봇대의 이전 및 지중화 사업은 대통령 지시 이틀 만에 5시간의 작업을 거쳐 즉각 해결되었다. 이는 경제대통령을 캐치프레이즈로 당선된 MB 정부의 규제개혁 의지를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실제로 MB 정부는 규제개혁을 국정의 최우선 순위로 내세우고 기존의 규제개혁위원회(이하 규개위)에 더해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로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를 신설하여 대통령이 직접 규제개혁과제를 챙겼다. 현장 중심, 수요자 중심의 규제개선이 강조되면서 기업가 출신 정부 수장이 갖고 있는 장점이 최대한 발휘되는 듯 보였다. 기존에 개별적·부분적으로 다루어지던 규제개선 방법론의 한계에 대한 문제제기가 수용되면서 규제 전반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진행되었고 미등록 규제에 대한 정비가 이루어졌다. 규개위의 발표에 따르면, 2008년에만 1,800여건의 규제개혁과제가 발굴되고 908건의 과제가 연내에 완료되었으며 2009년, 2010년에도 규제개혁과제가 완료된 건수는 각 1천여 건에 달한다.


그런데 이러한 강력한 드라이브와 시스템 정비에도 불구하고 규제등록통계로 본 규제개선의 실태는 사뭇 다른 결과를 내놓고 있다. 우선 등록규제의 총 건수는 2009년1) 11,050 건에서 현재 13,396 건으로 2천 건 이상이 증가하였으며 이 중에서 주요규제만을 보더라도 같은 기간 6,740 건에서 7,066 건으로 300건 가까이 증가하였다. 규제 내용을 살펴보면 신설·강화 규제의 건수는 2010년에는 129건에 불과하지만 2011년에는 248건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으며, 2012년에는 불과 넉 달 만에 211건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정기조의 변화와 함께 찾아온 규제개혁 역주행


정부의 규제개혁 드라이브가 역주행하게 된 배경에는 짐작하다시피 2010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천명된 새로운 국정기조인 공정사회론이 자리하고 있다. 전경련이 제공한 18대 국회 법률안의 규제관련 통계를 분석해 보면 공정사회론이 제시된 이후에 전방위적 정치 공세 하에서 규제개혁의 대원칙은 내동댕이쳐졌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기업 활동 관련 핵심 3개 위원회(기재위, 지경위, 환노위)가 심의한 규제관련 법률안 가운데 2010년 9월 이전에는 규제 신설·강화 법률안의 비중이 발의 기준 51%, 가결 기준 48%였으나 이 비율은 공정사회론 제기 이후에 63%와 78%로 급증하였다.2) 정권 전반기에 1개의 규제 전봇대가 제거되는 동안 0.9개가 신설·강화되었다면, 후반기에는 1개가 제거되는 동안 3.5개가 신설·강화된 셈이다.


18대 국회 기간별 규제관련 법안 발의 및 가결 현황


입법 주체로 보자면 정권 전반기에는 규제 강화·신설에 해당하는 가결 법률안 74건 가운데 77%가 의원 발의된 안건임에 비해 2010년 10월 이후에는 이 비율은 84%로 늘어났다. 이는 정부 입법과 달리 규제영향평가가 필요 없는 의원입법이 규제 신설과 강화를 위한 주된 수단으로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

규제개혁은 특정한 정치적 성향을 의미하기 이전에 정치적으로 합의된 정책을 달성하기 위해 가장 적은 시간적·행정적·금전적 비용이 소요되는 정책 대안을 발굴·채택해야 한다는 국정의 최소 원리를 담고 있다. 그러나 MB 정부 후반기에 “공정사회”라는 정치적 아젠다를 위해 의원입법의 방식으로 규제에 대한 엄밀한 검증 없이 규제를 신설하고 강화하였다는 사실은 정권 초기의 규제개혁 드라이브와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결국 규제맵을 작성하고 보다 시스템적인 규제개혁의 방법론을 제시하고 새로운 부서를 신설하는 등의 노력은 전방위적인 정치 쇼에 밀려 무력화되고 만 것이다.


회고하자면, 이 정부의 규제개혁을 상징한 것이 예의 “전봇대 이전” 소동이었다는 점은 현재의 개혁 역행적 행보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에 이미 제기된 바와 같이 전봇대 이전 해프닝의 핵심은 탁상행정식 업무처리가 아니라 지중화에 소요되는 비용과 부담주체를 둘러싼 갈등의 조정문제였다. 비용과 편익에 대한 분석, 비용분담의 합리적 방식에 대한 검토 없이 대통령의 한 마디에 따라 일사천리로 전봇대를 뽑고 한전과 업체 간 비용 분담을 하달하였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규제개혁이라기 보다는 이벤트성 민원 해소에 가깝다. 후반기 국정운영 기조로 공정사회론이 제시된 이후 규제 신설·강화 건수의 급증, 규제영향평가를 우회하기 위한 의원입법 급증, 비용추계서 제출에 대한 예외조항 적용의 남발 등은 정권 초기의 전봇대 뽑기 소동과 묘하게도 닮은 꼴이다.

이선화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slee@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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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9년은 기존의 규제가 정비되면서 미등록규제가 대거 등록되었기 때문에 2008년과의 비교는 의미가 없다.

2) 여기에 보건복지위, 교과위, 정무위를 포함한 6개 위원회의 규제 강화·신설 비중은 공정사회론 제기 이전이

62%, 52%(발의 기준과 가결 기준 순) 수준이었으나 2010년 10월 이후에는 76%, 77%로 급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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