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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눈치 보기와 설득하기


갖은 전략과 전술을 사용하여 적을 이겨야 하는 전쟁과 같은 비상시가 아닌 일상적인 정치의 장(場)에서 노선을 달리하는 정적(政敵)을 대하는 방식은 ‘눈치 보기’와 ‘설득하기’이다. 이 두 가지 방식 모두 상생(相生)으로 이해되는 듯하지만, 눈치 보기와 설득하기는 같은 선상에서 평가할 문제가 아니다.


눈치 보기와 설득하기는 각기 ‘소선(小善)’과 ‘대선(大善)’에 상응한다. 소선은 말 그대로 당장의 입장이나 겉으로 보면 선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것을 가리키고, 대선은 그 반대로 당장은 입맛에 맞지 않아도 사태의 본질에 비추어 또는 궁극에 가서는 그 옳음이 드러나는 경우이다. 눈치 보기와 설득하기는 주역의 아홉 번째 괘인 소축괘(小畜卦, 風天小畜)와 스물여섯 번째 괘인 대축괘(大畜卦, 山天大畜)가 의미하는 바와 각각 상응한다.1) 이 두 가지 형세는 바로 ‘소신 없이 눈치 보기’와 ‘소신 있게 설득하기’에 상응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를 추론하면 눈치 보기에 상응하는 소선은 결국 선이라고도 할 수 없으며, 역경이 있더라도 당당하게 설득하는 대선의 방식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선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 말하는 설득하기에 성공한 경우는 최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건강보험개혁안의 의회 통과에서 찾을 수 있다. 필자가 오바마 대통령의 건보개혁안에 전적으로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내용에 앞서 ‘설득’의 열정만은 인정해 주어야 한다. 야당인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내부의 반대파를 설득하는 구체적인 과정이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모습을 우리 정치에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일례로 세종시 문제를 놓고 정치지도자의 설득하는 모습이 전혀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충청도민과 원안 고수하는 측과 수정안 추진에 따라 손해 본다고 생각하는 여타 지역 국민들 양쪽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정책을 집행하는 이들이 소신과 원칙이 없으니 도무지 해법이 나오질 않는다.


집권당의 눈치 보기 정황은 다른 여러 군데서 포착된다. 지난 공직선거법 개정 때에는 여당이 과반수 의석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폐해와 위헌성까지 지닌 교육의원 선출제를 폐지하지 못하고 이번 지방선거에서만 실시키로 하는 것도 야당 눈치 보기 때문이다.2)


교육정책 분야는 눈치 보기 사례가 유독 많은 분야이다.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지만, 학교의 특성상 추첨으로 학생을 선발해서는 안 되건만 외고ㆍ국제고 전형방식을 추첨제로 결정한 것이나 인사와 급여 반영 없는 교원평가제를 실시하는 것은 전형적인 눈치 보기이다. 아파트 배정이나 로또복권에서나 통용되어야 할 추첨제가 우리 교육에서 ‘애용’하는 방식이다. 이름만 ‘학교선택제’인 서울교육청의 전형 방식도 80%는 추첨제이다. 정말 추첨제가 교육적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지 교육당국에 묻고 싶다.


인사고과나 성과급여와 관계없이 ‘연수 인센티브’라는 미온적인 교원평가 방식을 택하고 있는 것도 소신 없는 교원단체의 눈치 보기에 불과하다. 교원평가의 원래 취지가 교육 책무성을 묻고 교육경쟁력을 제고하고, 궁극적으로는 무능하고 부적격한 교사를 퇴출시키는 데 있는 것이라면, 교원평가는 어떤 방식을 취하든지 간에 마땅히 인사와 급여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


눈치 보기를 그만 두고 설득하기로 회복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소신’을 가지고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다. 소신에 관해 말하자면 집권 한나라당이 무소신으로 대하는 정책은 최근 지방선거와 함께 불거진 학교 무상급식이다. 민주당을 비롯한 정당이 추진하고 있는 학교 무상급식은 이름 그대로 ‘공짜 점심’에 해당하는 전형적인 좌파 정책이다. 이에 대하여 한나라당이 소신 없이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고 하는 이유는 국민의 담세 증가와 경제수단의 국유화라는 문제본질을 직시하고 이를 국민들에게 설득하려는 의지가 전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지방선거를 계기로 한나라당 일부 의원이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것을 보면 이에 대한 당론도 없는 모양이다. 당론도 없으니 한나라당의 정체성이나 정치이념조차 의심을 받는 것이다.


학교 무상급식은 당장 국가재정의 지출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닥친다. 초중등학생 전원에게 무상급식을 하게 되면 약 3조 원의 예산이 드는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전체 예산의 1%가 넘는데다가 경상비에 포함된 관련 예산을 고려하면 더 늘어난다.


또 학교 무상급식은 국가재정 집행의 효율성을 가늠할 수 없다. 학교급식 자체가 국가독점이므로 경쟁이 실종될 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부모 소득에 관계없이 공짜 점심을 준다는 것은 급식 효율성 자체를 떨어뜨린다.


학교 무상급식은 사회정의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이 정책이 정의롭지 못한 점은 다른 무상정책이 드러내는 정의롭지 못함과 동일하다. 무상급식이 정의롭지 못한 점을 교통수단의 무상화에 비유할 수 있다. 무상급식은 승용차와 택시를 탈 여유가 있거나 타야할 사람들에게 이를 타지 못하게 하고서 강제로 지하철을 무상으로 타게 하는 것과 같다. 평상시에 택시 탈 여유가 없는 사람이라도 급히 병원에 가야 할 경우에는 택시를 탈 수 있어야 한다. 또 지하철이 닿지 않는 지역은 일반버스나 마을버스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지하철 무임승차 비용은 지하철을 전혀 탈 필요가 없는 특정 부류의 사람들에게 전담케 하는 해괴한 모양을 지니고 있는 것이 학교 무상급식이다. 무엇보다도 학교무상급식은 위헌적인 정책이다. 사람들의 필요와 선호에 관계없이 이들을 일률적으로 국가배식을 받으라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선택권 침해이다. 또 국가가 국민 개개인의 식생활을 학교무상급식이라는 수단으로 규율ㆍ제한하는 것은 각 개인이 향유해야 할 행복추구권에 위배된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지방선거 쟁점으로 떠오른 무상급식 공약을 놓고 그 부당함을 알리고 설득하기보다는 눈치 보기에 급급한 한나라당의 대응방식은 차후에도 계속 수세적인 입지로 몰릴 것이다. 이유는 무상급식이 포퓰리즘에 빠진 전형적인 좌파정책이라는 점과 함께 모든 재화와 경제수단을 국유화하는 전략은 학교 무상급식 단계를 넘어서게 되면 다음 단계에 가면 교복, 교통비 무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2006년 학교급식법 개악으로 도입된 학교급식 직영 의무화가 작금의 무상급식의 전초전이었음을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설득하기에는 자신의 정책에 대한 굳은 의지와 신념, 즉 소신이 있어야 한다. 한나라당이 대응하는 것처럼 부자에게 무상 급식하는 것은 재원 ‘낭비’라는 소극적이고 소신 없는 눈치 보기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무상급식의 폐해는 모든 재화와 경제수단을 국유화하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설득하는 것만이 좌파정당의 전략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당당하게 설득하지 못하면 안으로는 소신을 잃고 밖으로는 유권자들의 표를 잃게 된다. 따라서 이번 지방선거에 임하는 유권자들이 유념해야 할 점은 각종 달콤한 포퓰리즘 정책에 현혹되지 않고 어느 정당이 국가대계를 위하여 소신 없이 ‘눈치 보기’에 급급한지, 아니면 ‘설득하기’에 임하고 있는가를 판단하는 것이다.


김정래 (부산교육대학교 교수/교육학, duke77@bnu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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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축괘는 음이 양을 축적하는 것으로서 음이 유순한 방식을 취할 경우에 한하여 양효를 축적할 수 있을 뿐이

다. 그러나 소(小)의 의미가 과하면 ‘검은 구름이 끼었는데도 비가 내리지 않는[密雲不雨]’ 형국이 되어버린

다는 것이다. 즉 겉으로는 좋아 보이지만 전혀 득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반면에 대축괘는 현인은 편안하게

집에서 밥을 먹지 아니하며 자기 재능을 발휘하고 역경을 극복하는 형세로서 국가사회를 위해 상서로운 결과

를 내는[不家食吉 利涉大川] 형국이라는 것이다. 쑨 양웨이ㆍ양이밍, 주역(박삼수 옮김, 현암사, 2007) 참조.

2)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교육의원(‘교육위원’이 아님)의 정체성과 이들을 선출하는 의도는 명

확하게 인지할 필요가 있다. 이를 상론하는 것은 이 글의 의도와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그

대표성과 광역의회 안에서의 역할에 관한 위헌성은 간과해선 안 될 중요한 논점이다. 이에 관해서는 필자의

지방교육자치기구 개편에 관한 비판적 검토(경기개발연구원 CEO Report No. 9, 2010년 3월)와 ‘교육의원’ 뽑

는 속셈 뭔가(한국경제신문 2009년 9월 25일 시론)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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