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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채무계열 재무구조개선 약정제도는 폐지되어야


현대그룹과 현대그룹의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 간에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둘러싼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재무구조개선 약정 체결을 요구하는 외환은행에 현대그룹은 재무평가가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을 하면서 약정 체결을 거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외환은행은 재무개선 약정을 맺지 않은 현대그룹에 대해 다른 채권은행과 공동으로 신규 대출을 중단키로 결정했다.


‘재무구조개선 약정’이란 부실 징후가 있는 대기업군(주채무계열)에 대해서 채권을 많이 가지고 있는 은행(주채권은행)이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을 행하기 위한 협정을 말한다. 금감원은 대기업군 중 금융권 전체 신용공여 잔액의 0.1%를 넘는 대기업군을 주채무계열로 선정하고 있다. 2009년 말 현재 41개 기업집단이 지정되었다. 주채무계열에 대해서는 주채권은행이 지정되는데, 이때 재무구조개선 약정이란 주채권은행이 담당 주채무계열인 대기업군에 대하여 재무구조를 점검하여 부실 우려가 있는 경우 일종의 양해각서인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하는 제도이다.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게 되면 대기업군은 자산을 매각하고 자본을 확충하여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그리고 실천하지 못했을 경우 채권은행은 만기도래 여신 회수뿐만 아니라 여신 만기가 도래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여신을 회수할 수 있어 최악의 경우 채권단이 자금지원을 끊어 그룹이 해체될 수도 있다.


이처럼 대기업군 별로 여신을 관리하는 제도는 편중여신을 방지하기 위하여 외환위기 이전부터 있던 제도이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주채무계열 제도는 외환위기 이후에 대기업군별 여신관리 기능 외에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덧붙여 실질적으로는 과거 10년간 감독당국이 은행을 이용한 대기업군에 대한 구조조정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10년간 사회적 상황도 많이 변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의 기본 틀은 변함없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기업은 약정 체결대상이라는 말이 나올 때부터 자금조달에 악영향을 입어 경영상 막대한 피해를 볼 수 있다. 평가단계에서부터 비밀도 사실상 지켜지지 않고 있다. 선정기준이 과연 객관성을 가진 타당한 것인지 신용평가 결과가 적당한지에 대해 기업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이러한 제도가 과연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첫째, 대기업그룹 단위로 구조조정하는 방식이 현재 경제 상황에 부합하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외환위기 발생 시까지 우리나라의 ‘재벌’로 불리던 대기업그룹 기업들은 독립된 경영주체라기보다는 하나의 기업 실체라고 간주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측면이 있었다. 즉 여러 가지 합법ㆍ비합법적 방법에 의하여 우량 계열사의 자금이 비우량 계열사로 흘러가는 통로가 열려 있었고, 계열사 간에는 상호지급보증에 의하여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관행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현재 금융감독규정에서 주채무계열로 취급하는 대기업군을 도산 위험을 공유하는 하나의 실체라고 간주하는 규제방식이 그 근거를 가질 수 있었다.


이러한 계열사에 의한 자금지원 방식은 외환위기 과정에서 대기업군 그룹들의 연쇄부도를 발생시켰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어 외환위기 이후 전면적으로 금지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외환위기 이후 계열사 간 상호지급보증이 금지되었다. 이제는 재무 건전성이 좋은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계열사에 대한 채무보증 능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또한 과거에는 당연시되던 계열사 간의 내부거래도 금지된다. 이에 따라 과거 계열사 간 자본ㆍ재무ㆍ거래상 연계가 축소ㆍ단절되었으며 계열사별 독립ㆍ책임경영체제가 강화되고 있다. 따라서 하나의 계열기업군에 속해 있다고 하더라도 도산위험을 공유하는 하나의 실체로 볼 수 없으며 하나의 기업집단으로 묶어서 관리해야 할 근거도 사라졌다.


그러므로 재무구조개선 약정은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고 있다.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한다는 것은 대기업군 소속 개별회사의 입장에서 보면 자금조달 비용 면에서 연대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다. 아무리 개별 기업의 현금 흐름에 문제가 없더라도 그룹 전체가 주채권은행에 의해 재무구조개선 약정 대상이 됨에 따라 계열사들은 자금조달 비용 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연대적으로 받게 된다. 이는 계열사들의 자금조달 금리를 전반적으로 인상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고 재무구조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재무구조개선 약정이 오히려 재무구조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일례로 그룹 재무구조 악화 결과로 2009년에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한 한진그룹이 있다. 소속 계열사 대한항공의 경우 약정체결로 도움이 된 것은 하나도 없고 신용등급 하락으로 금융비용만 올라갔다고 하는 항변은 여기에 해당된다.


둘째, 재무구조개선 약정제도가 대기업군 소속기업들을 하나로 묶어 평가하다 보니 개별기업이 속하는 산업의 특성을 무시하고 평가하는 획일적 평가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현재 평가방식은 은행연합회에서 만든 “주채무계열 재무구조개선 운용준칙”에 의하여 금융계열사를 제외한 대기업군 소속기업들을 자기자본의 경우 계열사 간의 출자 분을 제외하여 합산재무제표를 작성한다. 이 합산재무제표에 의하여 재무비율을 산정하고 재무비율별로 점수를 부여한 뒤 부채비율 구간별로 일정 점수 미만이면 재무구조 약정 대상으로 분류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단순 합산재무제표 속에서는 개별기업이 속한 산업의 특성은 매몰되어 정확한 평가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일례로 대한항공이나 현대상선의 경우를 들 수 있다. 대한항공과 같은 항공업종이나 현대상선과 같은 해운업종은 대규모 투자를 필요로 하는 장치산업들로서 부채비율이 높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번에 현대상선은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따라 행하여지는 여신 500억 원 이상 기업에 대한 신용평가 중 해운업종 개별기업 평가 시에는 재무구조가 합격수준으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주채무계열 재무구조평가 시에는 부채가 많은 현대상선의 재무구조로 인하여 현대그룹이 불합격 처리되어 서로 모순되는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이는 주채무계열 재무구조 평가가 업종의 특성을 무시하고 획일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하겠다.


셋째, 기업의 입장에서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보면 기업군 자체의 의사가 배제된 상태에서 선정ㆍ집행한다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물론 반론으로서 흔히 양해각서의 체결단계에서 채무자 기업이 서명을 안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 재무구조개선 약정 체결대상이라는 것이 결정되면 사실상 대상 기업군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게 된다. 현대그룹의 경우에는 약정 체결을 거부하자 주채권은행이 다른 채권은행들과 공동으로 기존 만기대출 연장 중단을 비롯한 신규여신 중단조치를 취하고 있다. 주채권은행만이 아니라 채권은행 공동으로 여신을 중단하는 것이 과연 공정거래법상 불공정 집단거래거절 행위에 해당되느냐라는 법리 논쟁을 떠나서 공동여신 중단을 버틸 수 있는 기업군은 거의 없으며 사실상 강제이다.


기업 금융의 경우에는 여러 자금 공여자와 하청업체 대주주 소액주주 등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얽혀 있는 가운데 채권은행은 보다 위험이 적은 투자인 여신을 선택한 투자자에 해당된다. 주채권은행이라고 하여 반드시 최대 채권액을 가진 은행인 것도 아니며 은행이 아니라 제2금융권에서도 최대 채권자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사자인 기업의 의사는 배제한 채 여러 이해관계자 중의 하나인 주채권은행이 다른 채권은행들과 공동으로 담합을 하여 여신 회수를 무기로 기업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이는 외견상 구조가 주채권은행의 일방적인 횡포라고 할 수 있겠다.


넷째, 여신 규모 500억 원 이상의 개별기업의 경우에 대해서는 이처럼 주채권은행에 의한 일방적인 신용위험 평가와 구조조정은 이미 거의 유사한 절차로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의하여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의한 신용위험평가와 운영이 문제점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재무구조개선 약정제도와 거의 유사한 기준에 의하여 주채권은행이 개별기업에 대해 상시 신용위험 평가를 하고 있다. 그런데 개별기업이 대기업군에 속한다고 하여 금감위 규정에 의하여 또 다시 중복해서 운영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재무구조개선 약정제도가 도입된 이후 시대의 상황이 변하였다. 제도 운영의 기본전제가 되는 대기업군 소속기업들의 도산위험 공유현상이 사라졌다. 그리고 기업 평가에 있어서 객관성과 타당성이 담보되지 않는 제도로서 기업신용위험 상시평가제도와 거의 중복된 절차이다. 또한 당사자인 기업의 의사가 거의 반영되지 않는 채권금융기관의 일방적인 강제적 구조조정 제도로서 국제적으로 유사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제도이다. 이제 이 제도는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최두열 (한국기술교육대 산업경영학부 교수, dychoi753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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