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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균형발전과 수도권 규제


수출지향적 경공업을 중심으로 경제성장의 엔진이 점화된 1960년대 초부터 지역 간의 균형발전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 초기에는 대도시와 농촌 간의 격차가 문제였지만, 1970년대부터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가 주된 관심사였다.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초기부터 집중이 과도한 지역에서는 인구와 산업을 밀어내고, 낙후된 지역에는 인구와 산업이 유치되도록 하는 양면적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정부가 낙후된 지역에 재정 및 금융자원을 충분히 배분할 여유가 없었다. 결국 공장, 기업, 정부기관 등의 수도권 입지를 억제하여 이를 지방으로 분산하려는 수도권 규제가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실질적 요체였다고 할 수 있다.


이제 40여 년간 분산정책을 해왔으니 수도권을 옥죈 족쇄를 풀어줄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이에 대해 지자체들은 단호하게 반대하고 있다. 지난 4월 초만 해도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비수도권 의원들이 수도권 규제완화 법안의 추진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대체 언제쯤이면 수도권 규제가 불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이루어질까?


균형에 대한 요구는 계속되고 끝내 실현되지도 않아


그동안 ‘균형’을 외쳐 온 학자와 정치인들은 많았지만 어떤 상태가 균형이 이루어진 상태이고, 왜 그 상태가 바람직한가에 대한 깊은 성찰은 없었다. 공장, 특히 대기업 공장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것이 균형이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1인당 소득을 기준으로 균형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의 수도권 제조업은 영세한 저부가가치 공장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1인당 지역 총생산도 중위권에 불과하다. 서울의 경우는 1990년 중반부터 인구가 줄었다.


최근에는 국가 중추 관리기능의 분산을 위해 행정중심복합도시나 혁신도시들을 건설하여 정부부처, 공기업,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사업이 완성되면 균형론자들은 대기업 본사나 벤처기업, 서비스업체들에 눈독을 들일 게 뻔하다. 균형에 대한 요구는 국토 공간상에 인구와 산업, 정부 기능이 균일하게 분포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측면에서 균일한 국토 공간구조는 바람직하지도, 자연스럽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다. 그랬다면 애초에 도시가 생겨날 이유가 없었다. 인구와 산업이 모일 때 생산성이 더 높아지는 현상을 ‘집적(集積)의 이익’이라고 한다. 중추 관리기능은 집적의 이익이 큰 활동이다.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의견을 주고받으며 조정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메일이나 화상회의 등의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직접 만나 온몸으로 소통하는 것을 대신할 수는 없다. 국가로 치면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 속에서 정치, 경제, 행정, 문화의 중추 의사결정 기능들이 집적되어 신속히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주요 결정을 내려가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런 마당에 중앙정부 기능을 분할하고 공기업들을 산지사방에 흩뿌리는 작업이 추진되고 있다. 당연히 사회적 비용이 클 것이다.


균형발전론자들은 수도권의 과밀, 혼잡이 견딜 수 없이 커져서 국가경쟁력을 저하시킨다고 주장한다. ‘집적의 불이익’이 그 이익보다 크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인구집중으로 교통이 막히면 교통시설을 확충하거나 수요 관리를 해서 문제를 줄일 수 있고, 주택이 부족하면 더 지으면 된다. 학교나 관공서도 얼마든지 확충할 수 있다. 집적의 불이익은 통제 가능하며, 실제로 서울보다 더 과밀하고 혼잡한 중소도시들도 많다.


수도권 규제는 풀고 지방의 잠재력 실현 지원해야


지방에서는 수도권을 억제하는 만큼 득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지역 간 관계는 ‘파이 나누기’, ‘제로섬 게임’이기보다는 ‘플러스섬 게임’이다. 수도권이 우리나라의 대표선수로서 외국의 대도시권들과 경쟁하고, 그 성공의 과실이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는 관계이다. 수도권의 위축은 나라 전체의 침체로 이어진다. 국토균형발전 정책의 원조 격인 일본이 2000년대 들어 수도권 규제를 완화한 것도 그 때문이다.


예를 들어 행복도시가 건설되면 지역균형 발전에 대한 여망이 충족되어 수도권 주민을 포함한 국민들이 행복해질까? 이에 대해서는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정부는 수도권에서 50만 인구가 빠져나갈 것으로 전망하지만, 기존의 정부청사와 공기업 본사 건물들을 비워놓지 않는 한 수도권의 고용과 인구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전후방 경제적 연관효과가 더 높은 민간 기업들이 건물을 쓰게 된다면 인구는 늘어날 수도 있다. 따라서 수도권의 과밀과 혼잡이 해소되어 일거에 국가경쟁력이 향상된다는 전망은 픽션이다. 공주-연기 지역을 포함한 지방의 상황도 크게 나아질 것 같지 않다. 계획대로 20만 호의 주택을 지으면 대부분이 미분양으로 남을 것이고, 인근 지역에서 인구가 이동하면서 주변지역이 황폐화될 가능성이 크다. 지방 중소도시들에서 신도심이 건설되면서 구도심 지역이 공동화되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균형’을 정의하지 않고 지역균형 정책을 추진하므로 지역균형은 영원히 성공할 수 없는 정책목표이다. 지방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이 상태가 편리할 수도 있다. 중앙정부에 떼를 써서 예산과 사업을 따내는 데는 지역균형발전만큼 좋은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지방이 발전되지 못한 것은 수도권이 무엇을 빼앗아갔기 때문이 아니라 중앙정부가 재원과 권한을 독식하여 지방이 움츠러들어 뛸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수도권 규제를 풀어주고, 지방도 스스로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지역 정책의 요체가 되어야 한다.


손재영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 jyson@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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