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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1만1천 원만 더 내면 무상의료가 가능해질까


최근 한 단체가 무상의료에 대한 이슈를 제기하여 사회적 관심을 받은 바 있다. 주장의 핵심은 현재보다 1인당 1만1천 원가량(가구당 2만8천 원가량)만 더 내면 무상의료(실제로는 무상의료에 가까운)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주장대로만 된다면 그야말로 꿈같은 일이라 할 수 있다. 평소 가족건강에 걱정이 많은 가장으로서 필자도 솔직히 대찬성이다. 1년에 1만1천 원만 더 내면 아무리 치료를 많이 받아도 1인당 병원비가 100만 원을 넘지 않는다는데 누가 반대할 것인가?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고 이내 실망을 금하지 못했다. 경제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별로 신뢰감이 들지 않는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먼저 1만1천 원의 추정근거가 그리 미덥지 못하다. 1만1천 원은 무상의료를 위해 추가적으로 필요한 건강보험의 소요액, 즉 12조 원을 조달하기 위한 가입자 1인당 부담액이라는 것이다. 현행 건강보험 체계에 따르면 건강보험재정은 가입자(환자)와 가입자의 소속기관(기업), 그리고 정부가 분담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부담률은 가입자와 기업이 같고, 정부는 가입자와 기업 부담액 합의 20%를 부담한다. 예컨대 가입자가 1만 원을 내면, 가입자의 소속기관도 1만 원을 내고, 여기에 정부가 4천 원(2만 원의 20%)을 부담하는 구조이다. 결국 이러한 방식대로 가입자가 5조 원을 모으면, 기업이 5조 원을 부담하고, 여기에 정부가 2조 원을 더 내서 추가적 소요 재원인 12조 원이 조성된다는 것이다. 언뜻 이와 같은 계산은 별로 잘못된 것이 없어 보이지만 추정된 부담액이 현실적으로도 들어맞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사실 1만1천 원이라는 계산의 전제는 의료서비스의 수요와 공급이 현재 수준에서 그대로 유지됨을 가정한 것인데 수요와 공급이란 상황에 따라 유기적으로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적이지 않은 것이다.


만약 무상의료 정책이 도입되면 수요자(환자)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무상의료란 의료서비스의 가격이 낮아지는 것이므로 상당수준의 수요 증가가 발생할 것이다. 평소 비용부담 때문에 받지 못하던 의료서비스가 있었다면 이제 환자들은 10% 정도의 부담만으로도(건보 부담 90%) 의료서비스를 원하는 대로 소비할 수 있을 것이므로 병원을 찾는 이가 많아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러한 의료소비의 급증은 즉각적으로 건보재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예상보다 많은 진료가 이루어지면 수입보다 지출이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요 증가 상황만으로도 당초에 계획했던 1만1천 원의 무상의료는 지속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무상의료 주장의 더 큰 문제는 이와 같은 수요 급증 문제를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단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시라. 무상의료를 위해 1만1천 원을 추가적으로 더 지불한 환자들 입장에서 건보재정의 안정적 유지를 위해 내 몸의 고통과 불편을 참으려는 동기가 있을 것인가? 결국 늘어나는 수요를 그대로 놔두면 건보재정이 점진적으로 고갈될 것이고, 재정문제로 수요를 억제하자면 정책 도입의 취지가 무색해지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1만1천 원으로 무상의료가 실현될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이는 1차적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의료서비스 시장에서 수요가 증가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자연스럽게 가격인상이 발생할 것이다. 의료서비스 시장에서의 가격인상은 건강보험의 수가인상을 의미한다. 이는 건보에서 지급해야 하는 액수 증가 및 건보재정의 악화로 이어질 것이다. 혹자는 건강보험의 의료수가를 억제하면 될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의료서비스는 그 본질상 공공성을 배제하기 어려우므로 가격억제의 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와 같은 현상을 분석해 온 바 있는데(이를 경제학에서는 가격규제-price regulation-라 한다), 이 같은 현상은 생각보다 다양하고 심각한 부작용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격규제(이 경우에는 가격상한제-price ceiling)가 발생했을 때 가장 흔하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공급의 감소이다. 즉 건강보험의 의료수가 억제는 의료서비스의 공급 감소를 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낮은 의료수가로 인해 의사나 병원이 기대보다 돈을 벌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면 의사를 하겠다는 사람도 줄어들 것이고 그 중에는 운영이 어려워 문을 닫는 병원도 생기게 될 것이다. 즉 공급 감소가 발생하는 것이다. 수요 증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시장에서 공급의 감소는 가격인상을 의미한다. 결국 1만1천원으로는 무상의료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건보재정에 심각한 어려움이 닥치기 이전, 즉 정책도입 이후 짧은 시간 동안에는 계획했던 무상의료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새로운 정책으로 수요와 공급이 본격적으로 반응하는 중장기적으로는 지속가능성을 장담하기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복지수준의 제고는 누구나 원하는 것이다. 건강ㆍ교육ㆍ환경 등과 같이 국가의 지속가능성과 관련된 복지수준이 높아지는 것은 비록 내가 직접적인 수혜자가 아니더라도 반대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해서 안 될 것은 이러한 복지에는 반드시 비용이 따른다는 점이며 누군가는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복지비용을 누가 부담해야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복지비용은 내가 아닌 정부가 ‘당연히’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정부는 생산을 하는 경제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결국 그 부담은 세금이나 준조세(사회보험)의 형태로 가계나 기업에 고스란히 전가되는 것이다. 물론 모든 납세자가 이러한 비용부담을 균등하게 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소득에 따라 보유한 재산에 따라 어려운 사람은 조금씩, 부유한 사람은 넉넉히 부담하게 될 것이다. 혹자는 고소득자와 대기업은 여력이 있으니 그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의 건강보험도 저소득층은 본인 납부액의 7배가량을 받는 반면, 고소득층은 납부액의 70% 정도만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혜택 기준으로는 10배가량 저소득층이 유리한 구조인 것이다. 그런데 무상의료 정책이 도입되는 경우 이와 같은 차등부담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1만1천 원이란 평균적인 개념일 뿐이므로 가입자가 5조 원을 더 모아야 한다면 많이 내는 사람의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차등적 부담의 심화가 당연하고 또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비용부담의 일차적 주체가 단지 내가 아니라는 이유로 또는 남이 부자이니 비용을 내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성숙한 국민의 자세라 할 수 없다. 우리가 단지 오늘만 사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모든 국민이 보다 편안하게 살기 위해서는 의료부담이 작아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의료비 부담을 낮추자는 주장은 장기방향성 측면에서 일리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모든 정책은 현실적 제약을 토대로 득과 실을 꼼꼼히 따져가면서 추진해야 하는 것이다. 건강보험의 재정은 현재도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고 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의 문제만으로도 건보재정은 위태로워 보인다. 선정적 구호보다는 합리적인 정책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상겸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iamskkim@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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