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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컬럼

전문가들이 펼치는 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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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 불확실성’이라는 ‘투명 고릴라’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투명 고릴라’ 효과


무대 위에 흰색과 검은색 티셔츠를 입은 대여섯 사람들을 뒤섞어 놓고 두 세 개의 배구공을 서로 정신없이 패스하도록 한다. 그런 다음, 관람자들에게 흰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패스를 몇 번 하는지 세어 보라고 문제를 낸다. 패스가 진행되는 동안 고릴라 옷을 입은 사람이 무대를 가로질러 ‘천천히’ 지나간다. 그렇지만 관객 중 과반수는 고릴라를 전혀 보지 못한다.1) 관중들이 한군데 주의력을 집중시켰던 탓에 다른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투명 고릴라’ 효과라고 부르는 현상은 상당히 광범위하게 일어난다. 그래서 기업들은 이런 ‘투명 고릴라’ 효과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돈을 들여서 신제품 출시를 광고한다.2) 비록 신제품을 출시하였더라도 소비자들이 어떤 점에서 기존 제품보다 더 좋은지, 혹은 심지어 새로운 제품이 나왔는지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라고 해서 투명 고릴라 효과를 피해갈 수 없다.


체제 불확실성이란 재산권을 제약하는 규제와 강요를 의미


경제사가인 로버트 힉스(Robert Higgs)는 우리가 총량변수들에 매몰될 때에도 보지 못하게 되는 투명 고릴라들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총량변수에 집중하다보면, 우리는 상대가격의 변화를 놓칠 수 있고, 인위적인 신용팽창에 따른 낮아진 이자율의 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생산구조의 변화, 그리고 그런 투자가 언젠가 터질 수 있는 거품일 가능성을 보지 못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체제 불확실성’(regime uncertainty)이라는 ‘투명 고릴라’를 보지 못하게 되는 오류를 경계하고 있다.3)


‘체제 불확실성’이란 “향후 경제 질서 자체에 대한 광범위한 불확실성, 특히 정부가 장래에 재산권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불확실성”을 의미한다.4) 흔히 정치권이나 정부는 사람들이 관심사인 경제·사회문제들을 당장 규제나 법률 혹은 정치적 압력을 통해 해결하려 드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이런 규제나 강요는 보통 재산권을 제약하며, 장기적으로 부정적인 효과인 ‘체제 불확실성’을 야기하고, 투자, 특히 장기 투자를 위축시킨다.


미국의 대공황 때의 ‘체제 불확실성’


1929년 미국 대공황 시기의 후버 정부, 그리고 특히 이를 이어 받은 루즈벨트 정부도 ‘체제 불확실성’이라는 코끼리를 보지 못했다. 루즈벨트는 전임자인 후버의 적자재정을 균형재정으로 돌려놓겠다는 선거공약으로 당선되었지만 전임자인 후버의 후버댐과 같은 적자재정지출의 규모를 뉴딜정책으로 대형화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반(反)시장적 노동조합법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기업들을 반(半)국영 카르텔로 편입시키고자 하는 등 다양한 규제들을 입법화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루즈벨트의 이런 정책들은 체제 불확실성을 증가시켜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만들었을 뿐 경제를 회복시키지 못하였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많은 케인지언들은 엄청난 전시수요가 사라지므로, 이를 메워줄 과감한 정부지출이 없는 한, 심각한 경기침체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특별한 적자재정 지출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루즈벨트의 죽음과 함께 ‘체제 불확실성’이 사라지자, 미국경제는 투자가 되살아났고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총량변수에 매몰되어 ‘체제 불확실성’이란 고릴라의 퇴장에 따른 시장의 자생적 회복력을 보지 못했기에 많은 케인지언들은 잘못된 예측을 하였다.


지금 우리경제는 복지정책들로 난무, ‘체제 불확실성’을 경계해야


그렇다면 우리 경제에는 ‘투명 고릴라’가 존재하고 있지는 않을까? 2008년 미국발 국제금융위기, 최근의 남유럽 재정위기 등의 여파로 우리 경제에는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경영난을 겪는 일부 (중소)기업들, 주택가격 하락에 따라 힘든 중산층들, 불안정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대졸자들 등이 그들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의 대공황 시기만큼 당장의 어려움을 줄여주는 정책들에 대한 수요가 높은 상황이다. 각종 복지정책들이 경쟁적으로 제안되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특정 정책이나 규제들이 ‘체제 불확실성’이라는 고릴라를 불러들이지는 않는지 경계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대공황 때 그랬듯이 ‘체제 불확실성’이란 고릴라는 경제를 침체에서 탈출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장기화시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체제 불확실성’을 조금씩 누적시킬 정책들이 이미 제안되거나 제도화되고 있다. 초과이윤에 대해 세금을 물리자는(공유하자는) 제안이 있었고,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가 부활하였다. 불확실성이 높을수록 현금보유에 대한 수요는 높아진다. 그리고 대출이나 투자는 각자가 책임지고 할 일이다. 그런데도 여론은 은행들에 대해서는 대출회수를 걱정하지 말고 대출을 하라고 강요하고, 기업들에 대해서는 사내유보금을 투자하라고 종용한다. ‘체제 불확실성’이란 고릴라가 우리 눈이 단기와 총량변수에 고정된 사이에 슬며시 장기에 걸쳐, 상대가격을 교란시키며 들어오지는 않는지 조심할 일이다.


김이석 (자유기업원 초빙연구위원, kimyisok@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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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투명 고릴라’ 효과는 심리학자 사이먼스(Daniel Simons)가 깊게 연구한 분야인데 다음 서적은 이를 북한문제

와 연결해 설명하고 있다. 박성현, 『망치로 정치하기』, 심볼리쿠스, 2011, pp. 128-129.

2) 광고(advertizing)를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을 넘어서는 광고를 제한할 필요가 있

다고 본다. 이들은 자신들의 상품에 소비자들의 주목을 끌려는 광고는 경제적 낭비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커츠너(Kirzner) 교수는 소비자들의 주목을 받는 것 자체도 그저 얻어진다고 볼 수 없으므로 이런 행위는 말

하자면 ‘고릴라’ 효과가 있음을 간과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Israel Kirzner, Competition and Entrepreneur-

ship, 1973, Chicago University.

3)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고, Robert Higgs, “Six Fundamental Errors of the Current Orthodoxy,” Mises

Daily: Monday, May 02, 2011

4) Higgs, Robert. 1997. "Regime Uncertainty: Why the Great Depression Lasted So Long and Why Prosperity

Resumed after the War." The Independent Review 1, no. 4 (spring): 561–90.

5)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 민경국, “루즈벨트의 뉴딜이 한국경제에 주는 교훈,” 자유기업원, 20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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