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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서민정책과 포퓰리즘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친(親)서민정책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친서민정책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거론하고 있다.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 듣기에 따라서는 ‘대기업 때리기’로 볼 수 있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이 7월 22일 ‘포스코 미소금융’ 지점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기업 캐피탈 회사의 대출 이자율이 연 40% 정도로 높은 것을 거론하며 다른 사설 대부업체의 이자율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말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대기업 금융기관들이 ‘고리(高利) 대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고, 이를 두고 대통령은 “사회 정의(正義)상 맞지 않는다”, “이렇게 이자를 많이 받으면 나는 나쁘다고 본다”라고까지 언급한 것으로 언론은 전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실제 속내는 지극히 정치적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6ㆍ2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정부와 한나라당에 등을 돌린 이유가 이명박 정부를 국민들이 ‘부자 정권’ 내지는 ‘불통 정권’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고 선거 패배의 원인을 거기서 찾고 있다. 그래서 이번 친서민정책과 ‘대기업 때리기’는 MB정권에 대한 친기업 인식을 변화시키고, 야당으로부터 친서민정책 이슈를 빼앗아 하반기 국정을 원활하게 운영하려는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분석할 수 있다. 이미 6ㆍ2 지방선거 패배 이후 대통령은 ‘중도실용’에 ‘친서민’을 보태어 ‘친서민 중도실용’을 집권 하반기 국정운영 지침으로 삼았으며, 청와대 보좌진 개편도 ‘중도성향’과 ‘서민정책’이라는 원칙에 따라 이루어졌다.


그런데 의문이 가는 것이 하나 있다. 친서민정책에서 ‘서민’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가? 그리고 친서민정책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이다. 대기업은 서민 사업인 두부제조업은 하지 말 것이며, SSM(기업형 슈퍼마켓)도 해서는 안 된다는 식이라면 식품산업에 종사하는 대기업 직원들과 SSM을 관리하는 직원들은 직장이 없어져도 되는 상류층이라는 말인가?


계급론적 시각에서 보면 계급을 부르주아(bourgeoise) 자산가 계급,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 무산자 노동자 계급으로 나눈다. 계층론의 관점에서는 계층을 상류층(upper class), 중류층(middle class), 하층(lower class), 최하층(underclass)으로 나눈다. 그러면 ‘서민(庶民)’은 계급론적으로 프롤레타리아인가? 계층론적으로는 중류층인가, 하층인가? ‘서민’은 개념적 정의가 지극히 자의적이며 불분명한 용어이다. 달리 말하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의 정치적 용어라는 말이다.


한글 사전에서 서민은 ‘아무 벼슬이 없는 평민’ 내지는 ‘일반백성’을 의미하며, 반대어로는 ‘부유층’, ‘귀족’, ‘특권층’을 들고 있다. 영어로는 ‘the common people’ 또는 ‘the masses’로서 중산층과 노동계층을 포함하는 포괄적이고 광범위해서 모호하게 된 개념이다. 서민계층이 누구인지 불분명하니 정치적으로 쉽게 이용될 수 있는 용어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서민을 중산층으로 이해하면 서민정책은 중산층 정책이 되고, 노동계층으로 이해하면 노동 정책이 된다.


하지만 서민이 ‘대중(masses)’을 의미한다면 친서민정책은 대중을 위한 정책으로 포퓰리즘(populism) 정책이 되게 된다. 문제는 ‘서민’이라는 용어가 듣기에는 좋지만 사회를 ‘서민(대중)-귀족’의 이분법으로 분할하여 대립관계로 사회의 갈등을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회통합을 위하여 친서민정책을 채택하면서 도리어 사회 갈등을 초래할 소지가 있다는 의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후반기에 ‘친서민정책’을 기치로 하여 대중을 기반으로 한 포퓰리즘에 기대어 정치를 해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렇게 이해되는 근거는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 서민정책특위 위원장인 홍준표 최고위원이 ”서민경제 안정과 정권 재창출을 위해 우파도 ‘보수 포퓰리즘’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으며 ‘서민정책’을 보수의 브랜드로 만들겠다”고 기자들에게 공표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더 나아가 서병수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최근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대기업 등에 간섭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정부의 적극 개입을 정당화하였다.


이렇듯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친서민정책이 포퓰리즘임을 한나라당이 부인하지도 않고, 또 그러한 방향으로의 정부 정책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에서 문제는 상당히 심각해진다. 더욱이 7ㆍ28 재보선에서 ‘친서민정책’으로 야당의 ‘정권 심판론’에 승리하였기 때문에 ‘친서민정책’은 더 강화될 것이다. 하지만 ‘친서민정책’이 포퓰리즘으로 전환된다면 다음과 같은 적지 않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부의 정책들을 포퓰리즘으로 비판하여 집권을 한 정당인데 집권 후반기에 자신이 그 길로 들어선다면 자기모순에 빠지게 되는 형국이 된다. 만일 자기모순이 아니라 정책적 변화라고 강변한다면 그 정책은 정당성 결여로 성공하기 힘들게 된다. 예를 들어 노무현 대통령 시절 세간의 비판의 핵심은 “노대통령이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한다”라는 것이었다. 보수-진보, 좌-우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했고 정책적 혼선 때문에 지지도는 바닥을 치게 되었다. 정책 이데올로기 변화를 시도하는 이명박 정권이 노무현 정권에게서 배워야 할 교훈일 것이다.


둘째,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정책은 집권 후반기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포퓰리즘 정책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매번 흔들릴 것이고 결국은 상반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노무현 정부 시절 혁신도시 건설로 지방경제를 살려 서민을 위하는 정책을 폈으나 부동산가격 상승으로 도리어 투기세력을 위한 정책이 되어 본래의 정책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하였다. 또 노무현 정부에서 만든 DTI(소득수준에 따른 대출규제제도), LTV(주택담보인정비율), 토지거래허가제도 등은 서민들이 은행대출을 받아 부동산을 장만하는 길까지 막아버려 외면당했고, 결국은 정권교체의 원인이 되었다. 이렇듯 친서민(庶民)정책이 친부자(富者)정책이 되어버리는 반대의 결과를 초래한 이유는 예측도 없이 서민 비위만 맞추는 포퓰리즘 정책으로 즉흥적으로 급조되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정책’이 노무현 정부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셋째, 포퓰리즘은 대개 집권과 권력유지를 위해 사용되는데 그 과정에서 대기업과 부유층을 비난의 표적으로 희생양 삼아 사회불안과 균열을 초래하게 된다. 역사적인 경험에서 보듯이 포퓰리즘의 결과는 아르헨티나의 페론주의(Peronism)처럼 사회의 극심한 분열과 투자 감소, 궁극적으로는 무분별한 복지혜택 부담 증가를 통해 국가부도로 이어지는 처참한 국가 쇠락임을 기억해야 한다.


넷째, 이명박 정부가 이제까지의 서민정책이 무늬만 ‘서민’이었으므로 진짜 서민정책을 쓰겠다는 것인데, 이러한 포퓰리즘 정책은 결국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의 경제위기를 자초한 재정지출의 확대를 초래할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을 해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가정경제에서도 수입 없이 빚내어 돈을 쓰다보면 결과는 파산이다.


다섯째, 앞으로 더욱 우려되는 사안은 정당화된 정부의 경제에 대한 개입 확대이다. 예를 들어 친서민정책의 하나로 서민가계 학생의 학자금을 공짜로 하겠다는 한나라당의 정책제안은 공짜 급식으로 재미를 본 ‘민주당 따라하기’라는 비난을 받아야 함과 동시에 정부가 교육에 지나치게 깊게 개입하여 교육을 그르치게 될 가능성이 있다. 또 정부가 미소금융의 이자율을 강제로 내리라는 것은 대출손실이 생길 경우 대기업이 보충하라는 지시인 동시에 시대에 뒤떨어진 정부 규제일 뿐이다. 또 은행은 앞으로 은행 순이익의 일정부분을 강제로 떼어 서민금융 부문에서의 손실을 보충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정부가 대기업과 은행의 영업이익을 강제로 서민층 빚 메우기에 쓰도록 하겠다는 인위적인 경제 개입으로 보인다. 경제논리에도 맞지 않고 시대에도 뒤떨어진 관치경제의 도래를 보게 될 것 같아서 씁쓸하다.


대기업이 사회적 책임의 하나로 해야 할 일은 고용창출과 투자 활성화 이외에도 중소기업과 자발적 상생 등 적지 않다. 대기업의 적극적인 서민정책은 사회 안정에도 필요하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진정으로 서민을 위한다면 해야 할 일은 ‘대기업 때리기’가 아니라 대기업의 자발적 동참을 위한 ‘인정’과 ‘칭찬’이다. 사실 한국의 현실에서 대기업은 정말 만능이어야 한다. 해외에서는 글로벌시장의 경쟁도 거뜬히 이겨내야 하고, 국내에서는 윤리경영을 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은행보다 저금리로 서민대출도 해주어야 하며, 사회적 기업도 만들어 소외계층도 보듬어 주고, 사회봉사 차원에서 성금도 크게 쏘아야 하며, 선거철에는 고용창출도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잘해야 한다. 아니면 ‘대기업 때리기’가 이어진다. ‘대기업 배싱(bashing)’은 포퓰리즘에 의한 복지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한 희생양을 만들어 비난하기 위함 때문이다. 하지만 수출로 경제회복을 위해 헌신한 것은 외면하고, 경영 이외의 사안으로 비난하고 몰아치고 강제한다면 과거의 경험에서 보듯이 결과적으로 나아질 것은 없다. “칭찬은 코끼리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는가. 즉 정부가 친서민정책의 일환으로 고용 확대를 원한다면 대기업의 고용창출 노력을 인정하고 투자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정답이다. 좋은 일자리 창출은 세상이 다 알 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노무현 정부는 각종 위원회를 만들고 정부부처를 키우고 공무원 숫자를 늘려 고용창출에 매진했었다. 그에 따라 전국에 공무원시험 광풍이 일었고 그 시험에 좌절한 사람들이 노무현 정권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공공 근로사업이 서민들에게조차 비난을 받는 이유는 낭비성 예산사용 때문이다.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작업이 반복되는 일자리의 창출이 정부가 할 일인가라는 비판 때문이다.


제대로 된 일자리 창출은 기업의 준비된 투자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투자는 민간기업에 맡기고 정부는 지원해야만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기업의 입장에서 본다면 시장전망이 불확실하고 성공의 가능성이 없는데 정부 권유에 따라 투자했다가 실패하면 그 책임은 누가 지는가? 청와대가 책임져 주는 시대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는 시장경제 시스템이 아닌가? 투자환경이 조성되고 투자성공을 약속할 수 있어야 기업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설 것임을 알아야 한다. 투자와 고용창출 모두 기업에 맡기고 정부는 외곽에서 지원할 때 제대로 된 성과가 도출될 수 있음을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한나라당을 포함한 정치권 역시 ‘친서민정책’에 근거하여 복지공약을 남발하고 대기업을 다그쳐 정권을 유지하고 그것을 민주주의라고 포장한다면 그것은 포퓰리즘과 다를 바 없다. 포퓰리즘 역시 선거에 근거한 민주주의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러한 민주주의는 민중(民衆)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엘리트 독재 내지는 대중의 요구에 모든 것이 좌우되는 민중주의로 쉽게 변화된다. 포퓰리즘은 모든 것이 민중의 요구에 좌우되기 때문에 대의민주주의는 왜곡되고 정치적 다양성은 허용되지 않으며, 경제적 자유가 억압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실패의 길로 들어서게 됨을 역사는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 한나라당과 청와대의 친서민 행보가 포퓰리즘으로 변화하여 정부 만능의 권위주의로 다시 복귀하게 될 것을 경계해야 한다.


김인영 (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교수, iykim@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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