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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컬럼

전문가들이 펼치는 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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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를 춤추게 하려면…


얼마 전 삼성의 신사업 추진방향이 발표되었다. 향후 10년에 걸쳐 ‘5대 신수종사업’에 23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10년 뒤 한국을 먹여 살릴 새로운 성장동력이 화두가 되고 있었기에 이번에 발표된 신사업 분야가 반도체·휴대폰 등 기존의 대형 사업에 이어서 삼성을 초일류기업으로 계속 유지시켜 줄 수 있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포스코는 90년대 중반부터 기존의 철강사업을 보완할 신사업을 추구해 왔다. ‘포스코 비전 2005’, ‘포스코 비전 2010’ 등을 통해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고, 본업 이외에 몇몇 신규 사업들로 사업범위의 외연을 확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철강업의 비중이 압도적이어서 기존 사업의 성장이 정체되었을 때 무엇으로 이를 타개할 것인지 아직 불투명한 상태이다.


신사업 추진은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는 점에서 딜레마를 내포하고 있다. 더구나 규모가 크고 조직이 복잡한 대기업 안에서 신규 사업을 개발하여 기존 사업을 대체 또는 보완할 만큼 키워내는 일은 ‘코끼리를 춤추게’ 하는 것 이상으로 어렵거나 성공확률이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버드대의 칸터(Rosabeth Moss Kanter) 교수는 The Change Masters(1983), When Giants Learn to Dance(1989) 등에서 기존 기업의 혁신이 얼마나 어려운지 역설한 바 있다. 신사업 개발과 같은 혁신활동을 위해서는 대기업들이 신속·우호·유연·집중 등의 요소를 도입하여 포스트 기업가적 관리를 해야 하는데,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경우는 매우 적다고 하였다. 크리스텐슨(Clayton Christensen) 교수도 The Innovator's Dilemma(1997)에서 기존 기업들이 직면하는 기술혁신과 관련하여 파괴적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고 하였다. 정상적인 또는 훌륭한 경영을 하더라도 파괴적 기술변화에 대응하는 것은 어려우며 파괴적 혁신을 통하지 않고는 신사업의 기반이 마련될 수 없다는 것이다.


대기업의 신사업 창조는 여러 가지 제약요인이 있다. 가장 중요한 이유를 두 가지만 들어보자. 첫째, 기존의 주력사업에 비추어 어느 정도 만족할만한 규모의 매출이나 이익을 실현할 기회의 집합이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설령 기회가 있다 해도 기술과 시장이 불확실하고, 실패 시 또 다른 시도를 하려면 작은 규모로 시작할 수밖에 없다.


둘째, 기존 사업과 다른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핵심역량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대기업일수록 경영자원의 여유가 있지만 대부분 신사업 성공을 보증할 정도의 핵심역량은 보유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기존 사업과 비슷한 분야로 진출하는 경우 미세한 패러다임의 차이로 인하여 예기치 못한 실패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대기업 안에서 신사업을 개발하고 육성하기 위해서는 통상의 관리방식이 아니라 창조적이고 기업가적인 대응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대기업의 신사업 개발과정과 추진성과를 관찰해 온 바에 따르면 회사 차원의 전략적 지향, 개인의 기업가적 행동, 조직의 지원체제 등 세 가지 요소가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기존 사업 위주로 배분되는 경영자원을 신사업에도 할당할 수 있도록 명확하고 강력한 전략지향이 필요하다. 회사 전체의 전략지향은 대체로 CEO의 리더십에 의해 표출되는 경향이 있지만 꼭 여기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광범위하게 공유된 위기의식 역시 신사업 추진을 위한 전략지향으로 연결될 수 있다.


문제는 아무리 회사 차원의 전략지향이 강하다고 해도 대기업의 기업가적 활동이 저절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기업 안에서 스스로 기업가적으로 행동하고 기존의 관리 시스템을 초월할 수 있는 개인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기업가적인 개인은 대부분 중간관리층에서 나오는데 잠재적인 회사 내 기업가들에게 상당한 정도의 자율성을 줄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회사의 전략지향과 개인의 기업가적 행동이 확보되었을 때 이를 결합하여 혁신활동으로 완성시킬 수 있는 것은 조직의 섬세한 지원과 보호의 프로세스이다. 대기업 내의 신사업 추진은 수많은 위험요인에 직면하게 되는데 중간에 좌초하지 않도록 조직 차원에서 충분히 배려할 필요가 있다. 말로는 쉽지만 실제로 행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이처럼 대기업들이 기존 사업을 대체 또는 보완할 수 있는 신사업의 창조를 통해 지속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도 복잡하다. 앞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요인들이 동시에 충족되어야 하는데 각각의 요인들은 양립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따라서 현실적인 제약조건과 추진체계상의 고려요인들을 종합하여 추진할 수 있는 예술적인 경지가 요망된다.


대기업 또는 기업그룹 안에서 신사업을 개발하고 육성하는 일은 “코끼리를 춤추게 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이런 연유로 서구의 이론에서는 기업 내 기업가정신(corporate entrepreneurship), 사내 기업가(intrapreneur)와 같은 개념들이 연구되어 왔다. 선진국 기업들의 모방이나 추격단계를 지나 자체 생존의 기로에 서 있는 우리 기업들도 예외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용열 (홍익대학교 국제경영학과 교수, yykim@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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