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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정부 vs 시민사회의 小戰士들(Little Platoons)


미국의 여론조사업체 갤럽은 2013년 12월 미국의 성인남녀 1,031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하였다. 갤럽은 큰 정부에 대한 미국 국민의 우려가 이와 관련한 여론조사가 시작된 이후 약 5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큰 정부에 대한 우려는 2009년 3월 55%에서 2011년 11월에는 64%로, 이번 조사에서는 72%로 꾸준히 증가했다. 이번 조사에서 대기업을 미국의 최대 위협으로 꼽은 응답자는 21%였다. 월가를 떠들썩하게 했던 엔론과 타이코 등 미국 기업들의 잇따른 분식회계 스캔들이 터진 직후인 2002년 이 비율은 38%을 정점으로 하향하는 추세다. 수십 년에 걸친 노동운동의 퇴조를 반영하듯 노조의 영향력을 미국의 최대 위협으로 뽑은 응답자는 사상 최저인 5%에 불과하다.


큰 정부는 수치상의 의미 이상이지만 본 글에서는 정부의 규모에 초점을 맞춘다. 미국의 정부 규모가 어느 정도이기에 미국의 미래에 가장 큰 위협이 된다는 것인가? 2014년 연방정부 예산은 3.7조 달러이다. 미국 연방정부의 예산은 GDP 대비 22%에 달한다. 국가부채는 17조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수치에 이른다. 공교롭게도 이 부채 규모는 미국의 2014년 GDP 예상치인 17조 달러(세계 모든 국가 GDP 합계의 23%)와 거의 일치한다. 산술적으로 국가부채를 완전히 해소하기 위해서는 미국 국민들이 1년 동안 창출한 모든 부가가치를 한 푼도 쓰지 않고 모두 투입해야 한다는 계산이다. 이 국가부채는 현 세대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들이 언젠가는 떠맡아야 할 피할 수 없는 짐인 것이다.


미국에 비하여 한국의 정부 규모는 어떠한가? 수치상으로 비교하면 미국보다 더 심각하다. 2014년 정부 예산은 357조 7천억 원으로 GDP의 28%에 해당한다. 최근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국가채무는 공공부문 부채와 금융공기업 부채를 합한 경우 2,135조 원에 달한다. 이 부채 규모는 GDP 대비 1.67배에 해당한다. 한국의 여론조사업체가 한국의 큰 정부, 대기업 및 노조 중 어느 것이 국민에게 가장 큰 위협인가를 설문조사하면 어떠한 결과가 나올 것인지 궁금하다.


한 국가의 최대 위협요인으로 지목되는 큰 정부 출현의 근본 이유는 무엇인가? 이러한 통제되지 않는 정부 규모 확대는 Edmund Burke가 그의 저서 “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1)에서 언급한 소전사들(Little Platoons)의 역할 축소와 미혹된 이성(Reason)에서 찾을 수 있다. 필자는 Edmund Burke가 언급한 두 가지 용어를 현대적인 의미에서 재해석하고자 한다. 정부 규모의 무제한 팽창은 가족, 교회2), 지역사회 및 정부에 의존하지 않는 자발적 자선단체 및 시민단체로 구성되는 Little Platoons 역할의 점진적인 축소에서 찾을 수 있다. 정부 규모 확대는 정치권력과 정부가 공익이라는 이름하에 그들의 정치적 이익을 증대하는 과정에서도 이루어지지만 본 글에서는 Little Platoons 중심의 시민사회 역할 축소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시민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단위인 가정의 붕괴는 필연적으로 큰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며 복지라는 이름으로 국가의 개입을 불러온다. 그런 의미에서 가족 구성원 간의 박애와 사랑은 건강한 시민사회를 이루는 매우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3) 경쟁에 참여할 수도 없고 경쟁의 과정에서 탈락한 어려운 이웃에 대하여 개별 가정 및 교회와 지역사회의 무관심은 이상적인 복지국가의 건설과 맞물려 복잡하고도 방대하며 비효율적인 정부 지출의 확대로 이어진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한 어려운 이웃이 그 지역사회의 도움의 손길이 미치는 경우 자발적으로 모아진 부(富)의 이전에는 거의 비용이 들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누가 어느 정도의 도움이 필요한지를 비교적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지역사회에서 불우한 이웃이 방치되어 국가가 개입할 경우 각 개인에 부과할 세금을 계산하고, 세금을 거둬들이고, 세금을 내지 않은 개인에게 강제로 세금을 징수하는 법집행을 수행해야 하며, 거둬들인 세금을 여러 단계와 과정을 거쳐 불우한 이웃에게 전해주어야 한다. 또한 복지전달 체계에서 누수가 없는지 감시하는 등 사회적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물론 지역사회가 모든 구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국방과 치안 등을 제외한다는 부분에서 정부와 국가가 지나치게 개입할 경우 우리 사회가 부담해야 할 행정 비용은 크게 증가한다는 것이다. 개별 가정과 교회의 구제 약화와 지역사회 및 자발적인 자선단체와 시민단체의 역할 축소로 인해 상당 부분 시민사회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통제할 수 없는 큰 정부에 계속 떠넘기고 있는 형국이다.


정부 규모 확대의 또 한 가지의 원인은 인간의 불완전하고 미혹된 이성(Reason)에서 찾을 수 있다. Edmund Burke의 표현을 빌리면 매우 추상적이고 외견상 그럴듯한 주장(the metaphysic sophistry and delusive plausibilities)들이 사회의 여론을 주도하며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결과들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1789년 자유, 평등, 박애라는 지극히 숭고한 가치를 기치로 시작된 프랑스 혁명은 1799년 나폴레옹 독재 정치가 출현되기까지 10년 동안 민간 혁명정부 하에서 반역자 처단이라는 명분하에 잔인한 살육과 피의 잔치로 이어진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이상은 사라지고 권력 쟁탈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단두대의 피바람을 누가 예상할 수 있겠는가.4) Edmund Burke의 이성(Reason)은 Friedrich Hayek가 언급한 정부가 가장 유능하고 모든 문제의 해결사라는 치명적 자만(The Fatal Conceit)과 일맥상통한다. 정부의 정책도 결국은 정부라는 추상적인 존재가 아닌 관료라는 인간의 이성에 의하여 설계되고 집행이 된다. 그러나 이성의 불완전함과 한계로 인해 의도한 정책목표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고 이는 필연적으로 정부의 실패로 이어진다.


이처럼 큰 정부가 한 국가의 미래에 가장 큰 위협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더 큰 정부로 향한 행진은 왜 계속되고 있는가? 그것은 아직도 많은 대중들의 뇌리에 1930년대 세계 대공황과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극복이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신화(myth)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번의 세계경제 위기의 근본 원인이 인간 이성의 불완전에 기인한 정부 정책의 오류와 실패로 야기되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일반 대중들은 충분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역사적 사건에 대하여 이 시대의 진정한 정신적 Little Platoons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자유주의자들의 논리와 주장이 여전히 미흡하다.


정부의 개입과 규제는 누군가에게는 이득을 주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비용부담을 발생시키는 일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정부의 지출로 누군가는 이익을 보고 누군가는 그에 상응하는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정부의 지출증대는 세금의 증대로 현 세대 혹은 다음 세대의 주머니에서 충당되어야 한다. 큰 정부로 재정적자가 심화되면 정부 지출의 구조조정 등을 통해 정부 규모를 줄여야 하는데 실제로 거꾸로 물길을 돌리는 일은 저항도 많고 쉽지 않다. 그러나 큰 정부의 따뜻함과 편안함이 언제인가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고 삶을 짓누르는 커다란 굴레로 다가올 것이다. 점점 더 심화되는 시민사회의 큰 정부에 대한 종속을 막는 유일한 길은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Little Platoons들의 이웃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건강한 시민사회정신이 회복되는 것이고, 이 시대의 진정한 자유주의자들이 정부는 전지전능하고 공공의 선(善)이라는 대중의 잘못된 인식을 깨우치는 일이다.


이인권 (前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iklee60@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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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dmund Burke가 1790년에 발간한 본 저서는 불란서대혁명에 대한 최고의 지적 비평서이며 현대 보수주의를 규정하는 대표적

글이다.

2) 저자가 언급한 교회는 여러 종교를 대표하는 단어로 사용하였음을 밝힌다.

3) Edmund Burke는 이 가족 구성원 간의 사랑은 지역사회를 경유하여 국가에 대한 사랑, 즉 애국심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4) 저자는 불란서혁명의 역사적 의미를 폄훼할 의도는 없다. 다만 인간의 무지와 이성의 한계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다.


* 외부필자 기고는 KERI 칼럼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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