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martin-martz-RhF4D_sw6gk-unsplash.jpg

l    소통   l    KERI 컬럼

KERI 컬럼

전문가들이 펼치는 정론입니다.

한국경제연구원_WHITE_edited.png

통화팽창과 비생산적인 소득재분배


지난 해 금융위기 발발 이후 세계 각국은 금리를 대폭 인하하며 시장에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하였다. 미국은 연방금리를 5.75%에서 제로금리 가까이 인하하였으며, 영국은 5%에서 0.5%, 일본은 0.5%에서 0.1%로 기준금리를 낮추었고 한국도 5.25%에서 2%로 인하하였다. 이렇게 해서 풀린 통화량이 전 세계적으로 수십조 달러에 이른다.


이러한 통화팽창은 재화의 가격을 끌어올렸다. 올해 들어 국제유가와 곡물가격이 50% 이상 상승했고, 최근에는 금값이 온스당 1,000달러를 넘어섰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주식과 부동산가격이 크게 올랐다. 한국에서도 연초에 1,100원대였던 코스피지수가 지금 1,600대로 상승했으며, 강남지역의 일부 재건축아파트는 최근 5개월 사이에 최고 70%나 올랐다. 중국에서는 부동산 시세와 주가가 각각 20%와 70% 가까이 급등하였다.


통화팽창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은 물가상승으로 인해 실질소득을 감소시켜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통화팽창과 관련하여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통화팽창이 사람들 간에 생산 및 교환 활동과 무관한 소득재분배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부가 통화 공급량을 늘릴 경우 새로운 화폐가 모든 사람들에게 동시에 혹은 동일한 비율로 전달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새로운 화폐가 경제 내에 주입되면 그 화폐는 사람들에게 시차를 두고 다르게 전달된다.1) 그것은 마치 호수에 돌을 던졌을 때 돌이 들어간 지점에서 가장 큰 물결이 일고 차츰 멀어져 갈수록 물결이 작아지는 파문처럼 새로운 화폐가 경제에 투입되었을 때 그것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효과는 다르다.


통화당국이 공개시장 매입이나 재할인 대출을 통해 화폐량을 늘리면 은행에 새로운 자금이 유입되고, 그 새로운 자금은 사람들에게 대출되어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은 사람들이 특정재화에 지출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경제에 유통된다. 그런데 새로운 화폐를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일반 대중보다는 정부, 은행, 몇몇 기업, 그리고 일부의 사람들일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그룹은 통화팽창으로 인해 재화의 가격이 상승하기 이전의 가격으로 필요한 것들을 구입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새로운 화폐를 손에 넣은 시점에서 경제는 아직 새로운 화폐가 얼마나 풀려나왔는지 알지 못하고 가격 역시 새로 공급된 화폐에 맞춰 상승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격이 상승하기 이전의 가격으로 필요한 것을 구입하기 때문에 그들의 실질소득은 증가하게 된다.


시간이 흐르며 새로 공급된 화폐가 경제 전체로 확산되면서 점차 모든 부문에서 가격이 상승한다. 일반대중이 새로 공급된 화폐를 손에 넣을 수 있는 때쯤이면 모든 것의 가격이 이미 상당히 올라버린 후이다. 그래서 새로 공급된 화폐가 손에 들어 와봤자 그들의 실질소득은 전혀 증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동안 그들은 기존의 수입으로 재화에 대해 높은 가격을 지불해 왔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새로운 화폐를 초기에 운 좋게 얻게 된 사람들에게 인식도 못한 채 자신의 부를 넘겨 준 것이나 다름없다. 다시 말해 새로 유입된 화폐에 나중에 접근하는 사람으로부터 먼저 접근하는 사람에게로 소득이 ‘강탈’ 되듯이 재분배된다.


이 과정을 간단한 예를 들어서 설명해보자.2) 10명으로 구성되어 있는 조그만 경제를 가정하고 최초의 화폐량이 1,000원이며 열 사람이 100원씩 보유하고 있다고 하자. 이제 중앙은행이 화폐량을 500원 늘렸다고 하자. 그리고 이 500원이 10명 중 한 사람에게 전부 대출되었다고 하자. 이 화폐공급 증가로 이익을 보는 사람과 손해 보는 사람이 발생한다. 이익을 보는 사람은 대출을 받은 사람이다. 전부 대출받아 새로운 화폐를 갖게 된 사람은 총 1,500원의 화폐공급량 중 600원을 보유하게 된다. 그는 전에는 총 구매력의 10분의 1을 보유했지만, 이제는 15분의 6으로 6/15-1/10=3/10만큼의 이익을 얻었다. 이 3/10의 이익은 다른 사람들의 손실로 나타난다. 여기에서 손해 보는 사람은 나머지 9명의 화폐보유자다. 중앙은행이 화폐를 주입하기 전에는 각각은 총 구매력의 1/10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1/15에 불과하다. 1인당 1/30만큼의 구매력이 상실되었다. 총 구매력 상실은 3/10이다. 새로운 화폐를 손에 넣은 사람이 얻은 3/10의 이익은 정확히 새로운 화폐를 갖지 못한 사람들의 총 구매력 상실과 같다. 새로운 화폐를 얻지 못한 사람들의 소비할 능력이 감소되면서 그들의 구매력이 비자발적으로 새로운 화폐를 얻은 사람에게 이전된 것이다.


한편 인플레이션율과 소득불균형 간에는 강한 양의 상관관계가 있다. 인플레이션율이 높을수록 소득불평등도가 높다.3) 따라서 최근 급격하게 팽창한 통화량으로 인해 소득불균형이 심화될 수 있다. 사람들의 능력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득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다만 그러한 소득불평등이 생산과 교환활동에 의해서 발생한 것이라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생산과 교환활동과 관계없는 것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된다.


지금의 통화팽창 정책은 물가상승을 야기해 실질소득을 감소시켜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물론, 생산과 교환활동과 관계없는 소득재분배를 가져와 소득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는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들이 악화되기 전에 팽창된 통화를 회수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문제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향후 통화관리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안재욱 (경희대학교 대학원장/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 jwan@khu.ac.kr)

---------------------------------------------------------------------------------------------------

1) Mises(1996[1949]). Human Action, San Francisco: Fox & Wilkes.의 제18장과 20장에 통화팽창이 재화의

상대가격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자세히 나와 있음.

2) 이것은 안재욱(2008) 『시장경제와 화폐금융제도』, 나남출판사, p.120에 있는 예를 인용한 것임.

3) Albanesi(2007)은 1966~1990년 기간 동안 51개 개도국과 선진국의 평균 연간 인플레이션율과 지니계수를 살

펴본 결과 인플레이션율이 낮을수록 지니계수가 낮고, 인플레이션율이 높으면 지니계수가 높았음을 보였다.

Albanesi, S. (2007). “Inflation and Inequality,” Journal of Monetary Economics, 54(4), p.1091.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