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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ㆍ미 FTA, 시작이 반이다


지난 2007년 공식 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발효되지 못하고 진통을 겪어온 한ㆍ미 FTA의 추가협상이 드디어 최종 타결되었다는 소식이다.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은 자동차 분야를 양보하는 대신 돼지고기와 의약품 분야의 양보를 얻어내어 이익의 균형을 맞추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상황을 추측해 보면 쇠고기를 거론하지 않는 대신에 대미 수출 자동차의 관세철폐 시기를 연기하고 세이프가드를 도입하는 등 우리가 더 많이 양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이번 추가협상은 양국의 민감한 분야인 쇠고기와 자동차를 서로 맞바꾸면서 당초의 개방취지가 상당히 퇴색된 FTA를 낳았다고도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이미 공식 서명까지 마친 협정문의 내용을 수정하게 된 것은 향후 체결될 다른 FTA에 대해서도 ‘추가협상’이라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많다. 그러한 이유에서 벌써 야당에서는 “굴욕적인 외교”라고 비난하며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는 등 향후 국회비준과 대국민 설득과정에서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그러나 명분보다 실리를 중시한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번 한ㆍ미 FTA의 타결은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가 지난해 12월 KERI칼럼에서 이미 지적했듯이 협정의 발효는 새로운 경기규칙을 적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부터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경기규칙 아래서 양국 기업 간 경쟁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이다. 물론 이번 협상결과는 우리가 좀 더 많이 양보한 것이기 때문에 분명 미국에 좀 더 유리한 경기규칙을 제공한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향후 경기결과까지 우리에게 불리한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번 협상타결의 내용만 놓고 보아도 현재 상황에서 어느 쪽에 더 많은 승산이 있는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우선 우리가 미국의 경쟁력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쇠고기 분야는 이번에도 협정대상에서 제외되었으니 다행스런 결과이다. 자동차 분야에서는 세이프가드를 도입할 정도로 미국이 한국의 경쟁력을 두려워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미국이 자국 자동차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취했던 과거 정책의 선례를 보면 이번 한ㆍ미 FTA에서의 관세철폐 시기 연장 등 보호조치 강화가 미국의 경쟁력 강화에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즉 1970년대에 시행된 일본산 자동차의 자율수출 규제조치는 당시 소형차 시장에 국한되었던 일본 자동차의 경쟁력 우위가 중대형과 고급 자동차까지 확대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1994년 발효된 NAFTA 또한 높은 역내 조달비율을 부과하여 외국계 자동차회사들을 압박하였으나 ‘빅3’로 지칭되는 미국계 자동차회사들의 생산비중은 그때부터 오히려 하락하기 시작했다. 이는 모두 미국계 자동차 회사들이 보호주의 정책으로 생긴 일시적인 우위에 만족하여 경쟁력 향상 노력을 등한시한 결과이다. 대공황 이후 가장 극심한 경제위기를 맞으며 출범한 오바마 정권에서는 파산 지경의 자동차 기업들에 대해 막대한 공적자금까지 투입하며 대대적인 개혁을 유도하고 있지만 그 결과가 어떨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특히 지난 11월의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한 것은 취임 당시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던 오바마의 새로운 미국을 위한 개혁이 이미 추진력을 현저하게 상실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현재 우리 기업은 NAFTA의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일찍이 현지화를 서둘렀던 일본이나 유럽계 자동차기업의 전략을 이제 막 시작하고 있는 단계이다. 비록 완성차 관세철폐 시기가 뒤로 미뤄져 기존 합의에 비해 후퇴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현지화 전략을 통해 충분히 극복이 가능하다. 한ㆍ미 FTA의 부품관세 즉시 철폐는 현지화 과정에서 부품조달체제까지 함께 갖추어야 하는 부담을 상당히 완화시켜 줄 것이다. 또한 현지화는 우리의 수출 급증을 막기 위한 세이프가드 조치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즉 이번 협상의 결과는 명목적으로 우리가 많이 양보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로 인한 손실을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손실이 될지 이익이 될지는 한ㆍ미 FTA라는 새로운 시장 환경에서 우리 기업들이 얼마나 노력하고 성취하느냐에 달려 있다. 자동차 산업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산업에서도 한ㆍ미 FTA는 우리 기업에 분명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이제 명분을 논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결실을 얻을지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경기에 앞서 함께 파이팅을 외치는 선수들과 같이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시작이 반”인 셈이다.


권영민 (명지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 y_kwon@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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