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martin-martz-RhF4D_sw6gk-unsplash.jpg

l    소통   l    KERI 컬럼

KERI 컬럼

전문가들이 펼치는 정론입니다.

한국경제연구원_WHITE_edited.png

한ㆍEU FTA 체결과 잔존하는 자유무역에 대한 장벽들


인기를 의식한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의 돌발행동에 의한 표결 기권, 그리고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는 민주노동당을 끌어들여 향후 총선과 대선에서 유리한 입지를 구축하려는 민주당 지도부의 애매한 지연전술로 자칫 무산될 뻔했던 한국과 유럽연합 간의 자유무역협정(이하 ‘한ㆍEU FTA’)의 국회비준이 다행스럽게도 지난 5월 4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되었다. 이에 따라 잠정적으로 오는 7월부터 한ㆍEU FTA가 발효될 예정이다. 부산저축은행 사태로 인해 약간은 그 중요성이 가려졌지만, 이는 우리나라가 중국이나 일본에 앞서 아시아 FTA의 허브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자유무역협정은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 규제적인 성격도 있다. 또 자국통화의 가치를 경쟁적으로 절하하여 무역수지를 극대화하는 정책은 수입에 관세를 물리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장애요인들을 국제적 협력을 통해 제거하는 것도 자유무역의 확대에 중요하므로 우리는 G20 등에서 이런 의제를 주도해 나갈 필요가 있다.


양자 간 FTA는 자유무역을 확대하는 현실적인 방법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은 국경을 경계로 나뉘어져 있는 각국의 시장들을 단일시장으로 통합해 나가는 자유무역을 추구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후발국 가운데 수입대체산업의 육성정책보다는 개방경제를 지향함으로써 보릿고개의 경제적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나 선진국 문턱에 이르기까지 급속도의 경제성장을 이룬 경험을 가지고 있다.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미제스(L. Mises)는 “밀을 세계에서 가장 저렴하게 생산하는 캐나다 사람들이 정밀한 시계를 획득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밀을 꾸준히 생산하는 것이다. 그 밀을 스위스에 수출하고 그 대금으로 스위스의 시계를 구매하면 된다”고 갈파한 바 있다. 자유무역이 가져다주는 혜택을 실감한 우리처럼 그의 말에 적극 공감하는 국민들도 많지 않을 것이다. 만약 캐나다와 스위스가 유치산업 보호나 식량안보 등의 명분을 내세워 수입 금지나 고(高)관세 정책을 유지한다면, 이는 일부 계층의 이득을 위해 전체 국민들의 복지를 희생시키는 것이다.


관세제도는 수입품의 가격을 높게 만들어 이런 교환의 과정을 방해한다. 국적을 가르는 국경이 경제적으로도 국민들의 복지를 낮추는 하나의 장벽으로 기능하게 한다. 실제로 프랑스의 절대왕정 시절에 영리한 왕들이 왕실의 막대한 재정을 확보하는 방편으로 직접 세금을 거두는 불편함과 국민들의 원성을 피하기 위해 주민들에 대한 징세권을 귀족 작위와 함께 판매했다고 한다. 당연히 징세권을 산 사람들은 본전 이상을 뽑고자 하였으며, 그 방편의 하나로 자신의 징세지역으로 들어오는 물품에 대해 일종의 내국 관세인 통과세를 물리도록 했다. 그러자 단일시장이었던 프랑스는 경제적으로는 징세권역 사이에 장벽을 쌓은 여러 시장으로 나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생산과 소비가 급격하게 감소했고 시민들은 고통을 받게 되었다.


자유무역을 추구하는 방법으로는 한ㆍEU FTA와 같은 쌍방 간 자유무역협정에 비해 GATT와 같은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이 일반적으로 더 효율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비유하자면 프랑스 내 통과세를 모두 철폐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그것이 어려우면 두 지역 간이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현실적일 수 있다. 쌍방 간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양국 정부가 협상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각국 정부나 정치권이 선거에서의 표 숫자로 대변되는 정치적 힘을 가진 세력들의 이해관계를 배제하기 어렵다. 그래서 쌍방 간 자유무역협정에는 보통 복잡한 원산지 규정 등이 도입되고 최종재의 상대국 수출이 급증하는 경우 특정조건을 만족하면 해당품목에 관세율 상한을 다시 설정하는 제도인 세이프가드(safeguard)를 두고 있다. 마치 복잡한 면세 규정이 있는 두꺼운 세법에 비견되는 복잡한 규정이 동반되는데, 이번 한ㆍEU FTA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ㆍEU FTA 협정문은 무려 1,2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그래서 일부 비판가들의 눈에는 이렇게 두꺼운 ‘규제 규정’에 합의한 것을 두고 자유무역협정이라고 명명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비칠 수 있다. 국내에서 자유롭게 상품과 서비스가 지역 간 경계를 넘나들며 거래되는 것과는 아직도 커다란 격차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세계에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의 실질적인 실천이 불가능할 때 양자 간 자유무역협정은 이를 돌파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일정한 단서를 붙인다면 쌍방 간 자유무역협정은 크게 보면 세계경제를 자유무역의 방향으로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해 가는 중요한 움직임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무수히 많은 FTA 협정들이 국가 간에 체결되고 나면 점차 FTA 협정들 사이에 서로 충돌되는 각종 규제들의 불편함이 부각될 것이고, 결국 이런 규제들을 정리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움직임이 일어날 수 있다. 국내시장에서 소주 판매지역을 분할하던 규정이나 진입에 관한 다양한 규제들이 점차 철폐되었듯이 국제적 수준에서도 그런 과정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


이번의 한ㆍEU FTA 국회비준은 이런 움직임에서 세계 최대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연합 27개국과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데 있어 우리나라가 아시아지역에서 가장 앞서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자유무역협정은 관세를 점진적으로 낮추거나 폐지함으로써 자유경쟁시장의 장점을 국경 너머로 확산시킨다. 그 확산의 규모와 정도가 한ㆍ미 FTA에 비견될 정도로 큰 협정이 곧 발효된다.


경제 국경의 의미 퇴색했으나 여전히 남은 상태


한ㆍEU FTA의 체결은 한국과 유럽연합 회원국 간의 국경이 최소한 경제적인 거래에 관한 한 그 의미가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상당부분 퇴색되었음을 의미한다. 그것도 우리와 비슷한 경제규모의 한 나라와 체결하는 것이 아니라 27개 회원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것이어서 그 영향력 면에서 한ㆍ칠레 FTA와는 비교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심지어 중국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경제를 견인하고 있는 미국과의 FTA의 효과를 능가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6~7%대의 관세가 철폐되면 양측이 품목별로 합의한 단계에 따라 무관세로 수출입을 할 수 있게 된다. EU 측은 공산품 전 품목에 대해 5년 내에 관세를 철폐하고 이 중 99%를 3년 내에 없애기로 하였다. 한국은 3년 내 관세철폐 품목이 96%이며, 일부 민감한 품목은 관세철폐 기간을 7년으로 연장하였다. 이는 결코 작은 변화가 아니다. 종전에는 수출을 하더라도 혹은 수입을 하더라도 관세를 물고 나면 이윤도 손실도 없었던 사업이 갑자기 6~7%의 수익률을 내는 상황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수익률의 6~7% 상승이 몰고 올 유인효과를 상상해 보라.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경쟁에 의해 이 수익률은 낮아질 것이고, 관세율의 인하가 실제로 수출업자, 수입업자, 소비자들 사이에 누구에게 어떤 정도로 혜택을 줄 것인지는 얼마나 소비자들이 가격에 민감하게 수요를 변화시키는지 여부나 시장의 진입장벽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결정이 될 것이지만, 국민들의 일반적 복지의 수준이 높아지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EU 집행위원회는 한국의 실질 경제성장률이 0.5~0.8% 정도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일부 업종에서는 부분적인 생산위축이 발생하겠지만 전체적인 수요의 확대에 따라 그 생산위축의 정도는 예상만큼 심각한 수준은 아닐 수 있다. 한ㆍ칠레 FTA를 체결하면서 예상되었던 복숭아, 포도 등의 과일 생산위축은 신선도 유지의 중요성 때문인지 예상과는 달리 별로 발생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제적으로 국경의 의미가 퇴색된다는 것은 기업가들이 성공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사업기회의 범위가 크게 넓어졌고 또 경쟁도 한층 더 치열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제 기업가들은 자신이 속한 국가뿐 아니라 유럽연합 각국의 시장을 모두 감안하여 전 세계적 안목으로 사업을 기획하고 영업하고 투자를 잘할수록 성공하고 그렇지 못하면 뒤지게 될 것이다. 인도에 거주하는 인도 사람들이 미국에 본사가 있는 회사에 고용되어 그 회사의 전화 상담이나 전산 프로그램의 개발을 담당하는 사례가 상징적으로 보여주듯이 경제적 국경의 의미가 사라질수록 각국의 인력이나 문화, 여타 여러 여건들과 그 변화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을수록 기업들은 더 나은 사업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비록 언어의 장벽이 높지만 각국 사람들이 어떤 것을 좋아하고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등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할수록 사업에 성공할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거래는 상품뿐만 아니라 서비스의 거래로까지 확대될 것이므로 경제적 국경이 낮아지거나 사라지고 다양한 사업기회를 포착하기 위해서도, 기본적으로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하므로 점차 언어, 특히 국제어로서의 영어의 위상은 더 높아질 것이다.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그들의 필요를 잘 파악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경제적 교류는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이게 한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머리에 뿔 달린 도깨비가 아님을 깨닫는 것은 실제로 그들과 접촉해 보는 것이 최선이다. 상품과 서비스가 거래되는 곳에 정치나 문화도 아울러 더 활발하게 교류된다.


이런 교류는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국가들 사이의 무력충돌의 가능성도 낮출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이 점을 보여주는 반증적인 사례가 대공황기를 극심하게 어렵게 만들었던 보호관세 정책이다. 1920년대 말에 시작된 대공황기에 미국을 필두로 각국이 자국의 산업과 시장을 보호하려고 고관세와 보복관세를 부과하면서 시장거래가 3분의 1 이상 급격하게 위축되면서 실업과 같은 경제적 고통이 만연했던 적이 있다. “상품이 국경을 통과하지 않게 되면 군대가 이를 통과할 것”1)이라는 유명한 말이 있듯이 당시의 고관세 정책이 후일 2차 대전의 먼 원인의 하나였다고 한다.


자유무역협정의 규제적 성격 줄여나가야


갈 길은 비교적 명확하다. 이제 FTA의 체결을 확대해 나가는 한편, 그것이 가져올 문제를 미리 예상하고 자유무역협정의 규제적 성격을 줄여나가야 한다. 아울러 현재의 국제화폐제도를 자유무역의 확대에 맞게 어떻게 고쳐야 할 것인지 국제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막상 관세는 폐지하더라도 각국이 자국의 화폐의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을 늘리는 정책을 고수한다면 자유무역협정 체결로 관세장벽을 낮추는 효과는 크게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자국화폐의 평가절하 정책은 수출에 보조금을 주고 수입에 대해 관세를 물리는 것과 똑같은 효과를 낸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편으로는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려고 노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평가절하 정책을 경쟁적으로 벌이는 것은 모순이다.


김이석 (바른사회시민회의 운영위원/경제학 박사, kimyisok@daum.net)

---------------------------------------------------------------------------------------------------

1) 이 말(If goods don’t cross borders, armies will)은 흔히 바스티아가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바스

티아는 자유무역이 평화와 번영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길임을 누구보다 강력하게 주장했기 때문이다. (Tho-

mas J. DiLorenzo, “Biography of Frederic Bastiat(1801-1850),” Mises Institute.) 바스티아 이외에도 곡물

법 폐지를 주도했던 코브덴(Cobden)도 자유무역이 평화의 유지에 긴요하다고 보았으며, 실제로 바스티아와

코브덴은 서로 교류하며 관세폐지를 위한 노력을 하였다.(Thomas E. Woods, Jr., “Cobden on Freedom,

Peace, and Trade,” Mises Daily: 8. 20, 2010.) 미제스는 자유무역 이외에도 무엇보다 자유주의에 대한 사람

들의 확신이 전쟁 발발의 방지에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에벨링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Free trade was unable to prevent war in the twentieth century because by 1914, very few people

believed any longer in the idea of liberty.” (Richard M. Ebeling, “Can Free Trade Really Prevent War?”

Mises Daily: Monday, March 18, 2002.)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