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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의 미래, ‘통 큰 투자’에 달렸다


평상시 2등이 1등을 앞지를 수 없지만 ‘위기의 물결’에 올라타면 순위가 변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위기’를 ‘기회’로 부르는 이유이다. 위기에 대한 구체적 대응전략이 ‘변이(variation)’인 것이다. 자기 변신을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취하면 ‘승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변이’를 일으키지 못하면 새로운 ‘변종’에 잡혀 먹힌다. 이는 ‘진화생물학’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기업은 물론 국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1)


글로벌 금융위기는 역설적으로 우리나라에게는 ‘위기의 얼굴’을 가진 기회였다. 우리나라의 ‘G20 의장국 지위’는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위기의 물결’에 올라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러한 자신감에 힘입어 우리나라는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가장 먼저 벗어난 국가가 되었다. 지난해에는 잠재성장률을 뛰어넘는 6% 성장을 이뤄냈다. 부분적으로는 2009년 성장률이 낮은 데(0.2%) 따른 ‘기저효과’에 기인하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률이 아닐 수 없다. 이제 그 여세를 몰아야 한다. 앞으로 전개될 10년은 한국경제의 명운을 가를 ‘결정적 10년’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새로운 경제질서인 ‘뉴노멀(New Normal)’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뉴노멀은 현재 진행형이므로 구체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에는 빠르다. 새로운 경제질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의미한다. 현재로서는 ‘국가의 시장개입’이 힘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세를 얻고 있다. 금융위기로 ‘시장실패’가 드러난 만큼 ‘자유주의’가 퇴색하고 ‘국가 개입주의’가 득세할 것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국내의 여론동향과 정책방향도 대체적으로 이에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과거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는다면, 그 반대 전망이 ‘마땅히’ 세를 얻어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부정할 수 없는 교훈은 “과잉유동성에 기초한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은 지속가능하지 않을 뿐 더러 그 폐해와 부작용이 실로 방대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핵심은 실질 생산성 이상의 경제성장, 즉 ‘거품성장’을 일으킨 ‘기제(mechanism)’가 무엇인가를 정확히 규명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반인들도 현상 이면의 내재된 논리에 눈뜨게 된다. 미국발 금융위기를 일으킨 빌미는 ‘미국판 친서민 정책’의 ‘정책실패’이다.2) 시장(市場)이 집을 소유할지 여부를 판정하게 하지 않고 정부가 이를 판정하게 한 포퓰리즘이 문제의 연원인 것이다. 월가의 탐욕과 파생상품의 부작용은 부차적일 뿐이다. ‘정책실패’를 제어하는 안전장치에 대한 논의는 ‘시장의 역동성과 순기능’에 대한 동의를 의미한다. 그리고 포퓰리즘의 배격을 함축한다.


뉴노멀이 정착되는 과정에서 ‘규율된 시장주의’와 ‘국가 개입주의’ 간의 치열한 패러다임 경쟁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현실로 나타나는 ‘성과’가 체제경쟁의 승자를 선택할 것이다. 종국적으로는 경제적 번영을 가능하게 하는 체제가 선택될 것이다. ‘위기의 물결’을 타기 위해서는 ‘국가의 시장개입’이 가져올 경제활력 저하를 직시해야 한다. 많은 국가들이 국가 개입주의에 함몰될 때, 반대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 행태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국가 개입주의’의 한계: 오바마 대통령의 굴욕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는 정ㆍ재계 및 외교가에서 나온 전문가들의 주장 중 가장 빗나간 예측 10가지를 매년 선정해 발표한다. ‘2010년 10대 빗나간 예측’ 1위로 ‘2010년 하반기 미국 실업률 개선’이 뽑혔다. 바이든 부통령은 2010년 6월 백악관 브리핑에서 “미국경제가 ‘회복의 여름’을 맞고 있다”며 “하반기부터 일자리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2010년 11월 미국의 실업률은 9.8%로 지난 4월 이래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예측이 틀리는 것은 다반사이다. 그러나 어떤 예측은 “잘못된 지식과 신념 그리고 오해”에 기초하고 있기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확신편향(confirmation bias)’이 이에 속한다. ‘빗나간 예측 1위’는 오바마 행정부의 ‘확신편향’을 시사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실업률 개선을 철두철미하게 믿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재량적 재정정책을 강조하는 ‘케인즈경제학’의 가르침을 신봉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과정을 복기(復棋)해 볼 필요가 있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은 미국발(發)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오바마는 “시장이 넘쳤기 때문”에 즉 ‘시장의 과잉’으로 경제위기가 발생했다고 믿었다. 그가 유세기간 동안 줄기차게 강조한 ‘변화(change)’는 “이성(reason)을 통한, 즉 정부조직을 통한 시장개입”을 의미했다. 그는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미증유의 7,890억 달러라는 막대한 재정지출 확대를 통해 경기부양에 나섰다. 그리고 금융감독개혁법 등을 추진했다. 하지만 지나친 재정투입으로 2009년 미국의 재정적자는 GDP대비 8%를 웃도는 1조2천억 달러에 이르렀다. 국채를 매입해 시중의 통화를 늘리는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는 재정정책이 한계에 부딪쳤기 때문에 나온 궁여지책이 아닐 수 없다.3)


오바마 대통령의 2010년 11월 중간선거 패배는 실로 그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제운영에 대한 미국 유권자의 실망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큰 정부’에 강력히 반대하는 보수적 성향의 유권자들이 조직한 ‘티 파티(Tea Party) 운동’이 결정적이었다. “세금을 더 거둬 더 지출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유권자들의 목소리가 전달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오바마 대통령은 ‘소득세 감세 연장안’에 서명하게 된다.


오마바 대통령은 중간선거 패배 이후 미 재계를 대표하는 최고경영자(CEO)와의 자리에서, “미국의 성공을 이끄는 제1의 엔진은 정부가 아니라 기업인의 창의성”임을 언급했다. 그리고 기업에 활력을 불어넣음으로써 고용 확충과 성장을 꾀할 것임을 강조했다.


오바마의 발언이 수사(修辭)가 아니라면, 그의 경제관에 일단의 변화가 일어났다고도 볼 수 있다. 재량적 재정투입을 통해 경제를 관리할 수 있다는 ‘국가 개입주의’의 케인즈경제학은 치명적 자만일 수 있다. ‘시장대 정부’의 관계를 반드시 대립적으로 볼 필요는 없지만, 정부가 시장을 압도하면 경제는 질식된다. 미국의 성공을 이끄는 제1의 엔진이 정부가 아니라는 언급은, 만약 이러한 언명에 진정성이 담긴 것이라면 이는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국부(國富)를 축적하는 것은 위험을 부담하는 기업가정신을 요체로 하는 ‘시장의 활력’이기 때문이다.


먼저 보고 움직이고 제압해 선점한다


삼성그룹은 올해 43조 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LG그룹도 21조 원의 투자계획을 내놓았다. 현대차그룹 역시 12조 원 규모의 투자방침을 밝혔다. 10대 그룹의 투자계획을 모두 합하면 줄잡아 100조 원이 넘는다. 사상 최대 규모이다. “먼저 보고 움직여, 제압하고 선점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4선(先)’ 전략은 원래 삼성그룹의 전략이지만, 올해는 10대 그룹에 공히 적용될 수 있다. ‘속도전’에 시동을 건 것이다. 기존 사업영역에서 해외 업체들과의 격차를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벌리면서, 바이오 대체에너지 영상 분야도 선점하겠다는 것이다.

설비투자가 늘어나야 ‘질 좋은’ 일자리가 생긴다. 그리고 ‘미래의 먹거리’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일말의 불안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과거의 기업투자행태와 다른 양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 기업은 과잉설비 해소 차원에서 투자에 소극적이었고, 신규투자도 상당부분 해외 몫으로 돌려졌다. 그런 기업들이 공격적인 투자에 나섰기 때문이다. 더욱이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은 지난해보다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런 불투명한 환경에서 ‘10대그룹의 100조 원 투자’는 총력적이 아닐 수 없다. 모든 달걀을 한 번에 부화시키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이 같은 과감한 투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 지형이 바뀌는 지금이야말로 승부수를 던져야 할 때라는 ‘판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판단이 반드시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투자는 선행기간(lead time)을 갖는 선취행위이기 때문에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 다행히 다음의 사실이 이러한 판단의 설득력을 높여주고 있다. 올해는 세계 최대 시장인 유럽연합(EU) 및 미국과의 FTA 발효가 거의 확실시 된다. 따라서 더 넓은 시장을 향한 디딤돌이 마련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신흥국 시장이 커지면서 전(全) 세계적으로 중산층이 두터워지고 있는 만큼, 새로이 부상하는 신흥경제권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도 미리 움직일 필요가 있다.


우리 기업들은 그동안 선택과 집중, 그리고 신속한 경영판단과 미래 선취를 통해 나름의 성공신화를 쌓아 왔다. 새로운 10년이 열리는 올해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야 할 것이다. 정부도 규제완화를 통해 기업의 투자확대를 뒷받침해야 한다. 정치권도 정치안정을 통해 기업의 투자를 도와야 한다.


세계경제포럼(WEF)의 2010년 국가경쟁력 평가는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한국 정부의 효율성 지표가 대부분 중하위권을 맴돌기 때문이다. ‘정부 규제 수준’은 조사대상 139개국 중 108위, ‘공무원 의사결정 편파성’은 84위, ‘정부 지출 낭비’는 7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이명박 정부 출범 3년 전과 비교해 크게 개악된 것이다. ‘작은 정부’의 초심으로 돌아가 민간부분의 여력을 확충해야 한다. 그리고 정치권도 당리당략에 이끌린 소모적 ‘복지정쟁’을 접어야 한다. 이제 과감한 투자를 통해 ‘통 큰 시장전략’을 짜야 할 때이다. 기업과 정부 그리고 정치권의 ‘삼각 편대’가 작동해야 국가적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다. 정부와 정치권의 심기일전이 필요한 이유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한국 하이에크 소사이어티 회장, dkcho@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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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체는 ‘개별의 합’ 그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이 강해서 GE와 애플 같은 일류기업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류기업이 존재하므로 미국이 일류국가가 되는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경쟁력

은 한국을 구성하는 개별기업과 개인의 경쟁력의 합이다.

2) 시장실패로 돌리는 것은 경기에서 진 모든 책임을 모두 선수에게 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실패가 시장에서

관찰되었을 뿐이다. 이를 ‘시장실패’로 규정하는 것은 오류가 아닐 수 없다.

3) 2010년 ‘양적완화’ 과정에서 연방제도이사회(FRB)는 EU와 중국으로부터 ‘환율전쟁’을 유발한다는 비난을 들

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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