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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의 좌 클릭, 성공할 수 있을까


지난 1월 30일,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는 당의 헌법 격인 정강ㆍ정책을 전면 개정한 내용을 발표하였다. ‘10대 약속 23개 정책’으로 발표된 새로운 정강ㆍ정책에 대해 대체로 언론은 한나라당의 정체성이 보수에서 중도로 바뀌었다고 평가하는 모양새다. 아마도 진보ㆍ좌파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강조한 한편, 오랫동안 보수계층을 대표해온 정당으로서 한때 삭제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었던 ‘보수’의 표현을 유지했기 때문에 그렇게 평가하는 듯하다. 그러나 특정 정당이 지향하는 이념적 지평은 보수/중도/진보 보다는 우파/중도/좌파로 구분하는 게 오해의 소지가 덜하다. 새 기준으로 한나라당의 정체성을 평가하면 적어도 경제문제에 관한 한, 중도보다는 중도 좌파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흔히 보수라는 표현을 쓰지만 그 개념에 대한 해석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서구 일부 국가에서는 보수와 우파를 같이 취급하기도 하지만, 이는 국가권력과 투쟁하여 얻은 국민의 자유를 지키고 확장하는 전통을 보수적 가치와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전적 의미의 보수는 기존의 질서와 상태, 전통과 관습을 옹호한다는 것으로서 자유와 자율을 중시하는 우파적 가치와 직접 관련성은 없다. 기존에 형성된 질서는 국가마다 자유시장경제, 국가자본주의, 사회주의 등으로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사전의 뜻풀이대로 기존의 질서를 지키는 게 보수라면 각 나라마다 주창하는 보수적 가치의 핵심 내용은 서로 다르고 심지어는 상반될 수도 있다. 그래서 특정 정당이 경제이념의 스펙트럼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정확히 얘기하려면 진보/보수 보다는 좌/우의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현재의 상태보다 더 나은 수준의 자유와 자율을 지향하는 것은 우파적 가치이고, 여러 사회적 목적을 이유로 정부의 역할을 확대하고 시장의 역할을 축소하는 것은 좌파적 가치이다.


이렇게 좌/우의 관점에서 보면 한나라당의 새로운 정강ㆍ정책은 우측에서 좌로 이동한 것이 맞고, 일견 중도보다 더 왼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평가된다. 어떤 이유로든 현재의 수준보다 정부가 개인의 선택과 기업활동, 시장과정에 더 많은 통제와 조정을 하겠다는 원칙을 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이전의 강령(2006년 1월 9일 전면개정)과 지금의 쇄신안을 비교하면 그 차이를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이전의 강령에서는 제2조에서 ‘큰 시장, 작은 정부’를 명시적으로 강조함으로써 우파적 가치를 분명하게 지향했었다. 그러나 쇄신안에서는 이 조항이 사라지고 그 대신에 복지국가 구현과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한 정부의 조정과 통제 기능을 강조하는 내용이 들어갔다. 특히 강령에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뜻밖이다. 이러한 개념이 헌법 제119조 제2항에 있기는 하지만 한나라당은 전통적으로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는 헌법 제119조 제1항을 우선했고, 제2항의 내용은 주로 민주노동당과 같은 쪽에서 강조했던 내용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민주당 안에 ‘경제민주화특위’가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한나라당이 경제민주화를 강령의 전면에 포진시킨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이전의 강령에서도 한나라당은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질서를 위한 정부의 역할을 부각하기는 했었다. 그래도 이는 어디까지나 사유재산권 보장, 균등한 기회와 선택의 자유, 자유시장경제의 구현을 명시적으로 전제한 것이었다. 반면에 쇄신안에는 이에 대한 언급은 없고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헌법 제119조 제2항의 정신을 앞세웠다. 게다가 삭제 논란이 일었던 ‘보수’에 관한 표현도 묘하게 바뀌었다. 과거의 정강에서는 ‘발전적 보수’를 계승한다고 명시했으나 새 정강에서는 ‘보수적 가치를 바탕으로 …… 발전을 주도해왔다’며 과거형 시제로 언급되어 있다. 보수적 가치가 현재 진행형인지 과거 완료형인지 이 문맥만 보면 분명하지 않아 보인다.


이번 한나라당의 전면적인 강령 쇄신으로 인해 적어도 경제이념의 형식면에서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차이가 크게 줄었다. 양당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경쟁하는 경우, 양당의 정강ㆍ정책은 중도로 수렴하는 경향이 있다는 다운스(Downs, an Economic Theory of Democracy)의 유명한 이론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최근의 동향을 보면, 한나라당이 중도 좌파의 위치에 있는 민주당을 닮아가고, 민주당은 더 좌측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도로 수렴한다는 다운스 이론과 달리 양당 모두 더 좌측으로 이동하는 셈이다. 양당 모두 금년 4월에 있을 총선과 12월에 예정된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정강 재위치 전략을 구사하는 것일 터인데,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와 같은 전략 수정이 양대 선거에 어떤 결과를 미칠지 궁금하다.


단순한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한나라당의 전략수정은 일견 위험해 보인다. 우파적 가치를 표방하던 정당이 좌측에 있는 상대 정당의 정강을 모방하면, 전통적인 우파 지지층의 일부가 투표에 불참하는 등 이탈할 수 있고, 검증과 신뢰의 문제로 인하여 경쟁 정당 지지자의 마음을 돌리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이론적 가설이다. 선거는 정강ㆍ정책, 그 중에서도 여기에서 살펴본 경제이슈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여러 차원의 이슈가 바람과 함께 SNS와 함께 한꺼번에 뒤섞이며 투표 직전에도 우열을 예측하기 어려운 게 선거이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의 정강ㆍ정책 쇄신이 금년의 선거 결과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이론에 견주어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일 듯 싶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inhak@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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