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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법 개정, 미국의 FRB 모델이 바람직한가?


김중수 신임 한국은행 총재는 취임사에서 ‘고용’과 ‘금융 안정’을 한은이 추구해야 할 새 목표로 제시했다. 현재 한국은행법 1조는 한은의 목적을 ‘물가 안정’으로만 명시해 놓고 있다. 한은이 고용 등 경제성장과 관련한 문제에도 적극 관여하려면 한은법 개정이 불가피하다. 한은법이 개정된다면 그것은 물가 안정뿐만 아니라 “고용 및 성장률 제고를 통한 국민경제 발전”이 포함돼 있는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이하 연준)의 모델을 따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의 중앙은행 모델로서 미국의 연준을 따르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짚어볼 일이다. 왜냐하면 미국의 역사를 보면 금융시장의 교란의 중심에는 항상 미국의 연준이 있었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1930년대 대공황과 2008년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근본적인 원인이 연준의 잘못된 통화정책에 있다. 경기침체를 회피하고자 연준이 통화팽창정책을 씀으로써 과다하게 발행된 통화가 과열과 붕괴의 순환을 일으켰던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1960년대의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맞았던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 그리고 1980년대의 인플레이션 등은 모두 연준에 책임이 있다.


마찬가지로 1990년대 말 닷컴버블의 형성과 붕괴도 통화정책으로 인해 발생했다. 1995년 중반부터 실행된 확대통화정책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나타나자 1999년 중반부터 재할인율을 인상하며 신용을 죄었다. 그 과정에서 과다하게 풀린 통화량으로 인해 닷컴 주가에 거품이 생겼고, 통화량을 줄이자 거품이 꺼진 것이다. 그로 인해 불황이 찾아왔고 그 불황을 회피하고자 다시 통화량 공급을 확대하자 그것이 주택시장의 버블과 붕괴를 일으켜 2008년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것이었다.


이처럼 연준이 반복적으로 경제를 불안하게 만드는 원인은 통화정책을 통해 경제를 안정시키는 데 있어서 중앙은행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 때문이다. 물가 안정뿐만 아니라 고용 및 성장률 제고를 위해서는 경기변동이나 다른 거시경제 변수의 변화를 파악하고 화폐수요를 정확히 예측하여 통화량을 잘 조절해야 한다. 그러나 화폐수요 추적에 있어서 각종 정보문제로 인해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성공적으로 조절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첫째,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데 존재하는 시차문제이다. 현재의 중앙은행제도에서는 화폐의 발행에 대한 즉각적인 피드백 과정이 없다. 중앙은행이 통화가 과잉 공급되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 수 있는 시기는 물가수준을 파악한 후에 가능하다. 물가수준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므로 새로운 화폐 발행과 물가수준의 변화를 통하여 통화의 과잉공급 여부를 인지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결국 통화를 공급한 중앙은행은 물가가 상승하거나 실업이 증가한 것을 발견하고서야 실수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둘째, 정확한 통화승수 값을 산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설령 화폐수요를 정확히 예측했다고 하더라도 그에 맞는 통화량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이 정확한 통화승수 값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통화승수는 일반대중이 원하는 현금과 요구불예금 간의 비율, 은행들이 원하는 초과지준율 등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이러한 요인들이 변한다면 바뀔 수 있다. 이러한 요인들은 중앙은행의 통제밖에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중앙은행은 사실상 정확한 통화승수를 가질 수 없다.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적극적인 통화정책의 좋은 의도는 왜곡되고, 모든 외부변화의 효과를 상쇄하기 위해 방어를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게다가 앞서 설명한 정보 문제가 더해지면 중앙은행은 더욱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이와 같은 문제로 인해 화폐가치가 불안정해지면 경제에 많은 부작용이 생긴다. 사람들은 자기가 제공하는 재화와 용역의 대가로 주는 화폐를 받으려고 하지 않게 된다. 또한 미래의 구매력을 위해 화폐를 보유하려고 하지도 않게 된다. 그리고 대차거래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화폐가치의 불안정은 투자를 매우 위험하게 만든다. 인플레이션에 의해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투자를 포기하는 사례가 늘어난다. 저축하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저축에 따른 위험이 크기 때문에 저축을 꺼리게 된다. 요컨대 돈을 빌리려는 사람도 돈을 빌려 주는 사람도 없게 되어 금융시장이 붕괴된다.


과다한 통화팽창으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화폐의 기능이 상실될 경우 시장이 파괴되어 거래와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환은 상호이익의 증진을 통해서 경제성장을 촉진하는데,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경제발전은 방해를 받게 된다. 또한 인플레이션이 만연되면 국민들은 생산에 전념하기보다 자신이 가진 기존의 재산을 보호하는 데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게 된다. 물가상승률을 제대로 예측하는지의 여부에 따라 자신의 재산상태가 달라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재화와 서비스 생산에 투입해야 할 시간과 노력을 물가상승률 예측에 허비하게 된다. 기업의 경영에 있어서도 싸고 좋은 제품을 만드는 능력보다는 물가상승률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지기 때문에 여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게 된다.


인플레이션은 불건전한 투자에 생산자원을 낭비하도록 만든다. 투자자들은 자본을 건축물이나 기계, 연구개발에 투자하기보다는 금이나 귀금속에 투자하게 된다. 자원이 생산적 용도에서 비생산적인 용도로 사용되면 경제발전이 저해된다. 또 상대가격의 왜곡으로 부문 간 소득 및 부의 차이를 발생시킬 뿐만 아니라 시장참가자들의 경제적 계산을 왜곡시켜 시장과정을 방해한다.


이렇듯 잘못된 통화정책이 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무엇보다도 시장경제의 원활한 작동을 통해 경제를 발전ㆍ안정시키기 위해서는 화폐가치가 왜곡되지 않도록 통화관리를 잘해야 한다. 현 중앙은행체제에서 통화관리를 잘 한다는 것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기초한 준칙에 따라 통화정책을 수행하면 되는 것이지, 중앙은행이 경기조절을 위해 재량적으로 통화량을 조절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고용’과 ‘금융 안정’을 추구하며 통화정책을 수행하는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모델은 이것과는 거리가 멀다. 미국의 FRB 모델은 신중히 검토되어야 한다.


안재욱 (경희대학교 대학원장/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 jwan@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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