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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컬럼

전문가들이 펼치는 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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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31조 4항을 재음미하는 이유


헌법 제31조는 교육에 관한 조항이다.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하여 교육의 기회균등을 천명하고 있으며, 제2항과 제3항은 무상의무교육을, 제5항은 평생교육진흥에 관한 국가의 의무를, 제6항은 “학교교육 및 평생교육을 포함한 교육제도와 그 운영, 교육재정 및 교원의 지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하여 교육제도법정주의를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제4항은 “교육의 자주성ㆍ전문성ㆍ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하여 교육의 자주성ㆍ전문성ㆍ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을 규정하면서, 이는 법률주의에 따른다고 명시하고 있다.

헌법의 성격에 비추어 제31조가 너무 상세하고 구체적이라는 법리적인 비판은 차치하고라도, 각 항은 각기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큼 면밀한 논의를 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4항에 명시된 교육의 자주성ㆍ전문성ㆍ정치적 중립성 문제를 언급하고자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2006년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에 따라 이번 지방선거와 동시에 실시되는 교육감 선거와 교육의원 선출방식이 내포하고 있고 앞으로 야기될 것으로 보이는 문제점들은 바로 교육의 자주성ㆍ전문성ㆍ정치적 중립성 문제를 매우 편협하고 자의적으로 해석한 결과 나타난 현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난 임시국회에서 법이 부분 개정되어 교육의원 선거는 이번 선거에 한하여 실시하고 교육의원 제도 자체를 폐지하기로 했지만, 교육감과 교육의원 선출 문제는 헌법 제31조 4항의 정치적 중립성에 따라 정당추천 금지를 내세워 유권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출마하는 교육감과 교육의원 후보자의 정책과 공약은 물론 정치적 성향과 인물 자체를 유권자들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러면 왜 이런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을까?

원래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구성하는 내용은 교육의 정치적 무당파성(無黨派性), 교원의 정치적 중립, 교육의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교육에 대한 정치적 압력 배제, 교육의 정치에의 불간섭 등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헌법상의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법제적 조치는 교육기본법 제6조 1항과 제14조 3항에 규정되어 있으며, 그 외에도 국가공무원법 제65조, 사립학교법 제55조 및 제58조, 교육공무원법 제44조 2항 등에 교원의 정치적 중립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이 외부 정치세력의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않도록 한 헌법 제31조 4항의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조항이 잘못 해석되어 지켜져야 할 부분에서는 안 지켜지고, 과도하게 적용되지 말아야 할 부분에서는 너무 엄밀하게 적용한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최근 법원의 유죄 판결에서 보듯이 일부 교원단체 소속 교사의 정치적 중립 위반의 경우가 전자에 해당되고, 교육감과 교육의원을 직선에 의하여 선출하게 하고 정당 배제 원칙을 잘못 적용한 경우가 후자에 해당된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교육이라는 활동은 그 자체가 원천적으로 그리고 내생적으로 가치 지향적 활동(value-oriented activity)이다. 교육이란 모종의 가치를 전수하는 기능을 수행하므로 전적으로 가치중립적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원의 교수 행위에는 모종의 가치를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은 교원의 정치적 무당파성, 교육의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교육에 대한 정치적 압력 배제, 교육의 정치에 대한 불간섭과 같은 논거가 성립하는 것이다. 따라서 헌법 제31조 4항의 정치적 중립 조항은 아무런 교육적ㆍ법적인 근거 없이 교사가 과도하게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표출하면 처벌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는 매우 관대한 것인지 이를 위반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교육정책의 수립이나 집행, 특히 선거 때 나오는 교육 관련 공약은 다분히 정치적인 색채를 띠지 않을 수 없다. 대표적인 것이 ‘무상급식’ 공약이다. 이 공약은 매우 정치적인 것이다. 일견 교육적인 배려를 담은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오히려 교육감이 내걸 공약이라기보다는 대통령 선거에서 내걸 공약이다. 왜냐하면 이 공약은 주요 경제수단을 국유화하는 문제로서 크게 보면 국가정체성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교육 관련 공약은 원천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교육정책이나 교육관련 공약 등은 정치적 편향성과 가치지향성을 원천적으로 금지시키거나 현실적으로 규제할 수 없으므로 특정정당 또는 당파의 지지와 반대처럼 극명하게 정치적인 행위를 제외한 가치 지향적 교육활동의 범위를 헌법적 가치 안에서 허용을 할 필요가 있다. 달리 말하자면 교육감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교육정책이나 정당추천을 헌법 제31조 4항의 교육의 정치적 중립 조항을 위배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정을 인정한다면, 현행법상으로 교육감과 교육의원을 지방선거와 동시에 직선에 의하여 선출하도록 하면서 정당 가입과 정당 공천을 배제한 조치가 헌법 제31조 4항의 교육의 정치적 중립 조항을 준수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후보들의 교육정책과 이에 포함된 정치적 가치 지향성을 유권자들이 합리적으로 판단ㆍ선택하는 행위를 방해하는 위헌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감과 교육의원 후보들의 정당 공천 또는 정당 추천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수용해야 한다. 이는 헌법 제37조의 ‘모든 자유와 권리’라는 헌법적 가치에 의하여 정당화되는 문제이다.

헌법 제31조 4항의 교육의 정치적 중립 조항의 준수를 위한 법제적 노력은 교원노조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헌법 제31조 4항의 준수는 교원노조법에 명기되어 있으나, 교원노조가 상급노조단체에 가입함으로써 실제로 교원의 정치활동을 암암리에 허용하는 현실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하여 교원노조법과 일반노조법과의 일관된 법제가 요망된다. 입법적 측면에서 교원노조법과 일반노조법의 입법에 관한 사항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관할이므로 국회 내에서 이에 관하여 교육과학기술위원회와의 긴밀한 상호 협조를 통한 법 개정이 뒤따라야 한다.

또 헌법 제31조 4항의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같은 맥락에서 존중되어야 하지만 이 해석과 적용도 역시 보다 면밀한 검토가 요구된다. 원래 교육의 자주성은 교육내용과 교육기관의 운영 등이 교육자에 의하여 자주적으로 결정되고 권력기관의 통제는 배제되어야 함을 뜻하는 것이고, 교육의 전문성은 교육정책의 수립이나 집행은 교육전문가가 담당하거나 교육전문가의 참여가 이루어져야 함을 가리킨다. 교육의 자주성의 논점은 개념적으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같은 맥락에서 정확히 일치하지만, 교육 전문성의 논점은 개념적인 것이 아니라 전문성 확보의 실행을 강조한 데 있다. 그렇지 않으면 교육의 자주성과 중립성은 이른바 교육의 공공성을 강조한 것으로 헌법 조항을 그릇되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과도한 공개념이 공교육은 물론 학교교육을 왜곡한다는 점을 필자가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다.1) 공교육의 개념이 사교육과 상호 배타적인 것은 아니므로 학교교육에서의 사적 영역을 폄하할 것이 아니라 중시할 필요가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교육의 전문성은 존중되어야 할 헌법적 가치이지만 배타적 전문성은 경계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교육의 전문성은 간혹 교육 나름대로의 독자적 영역이 존재하는 논거로 비약된다. 이를테면 “교육논리대 경제논리”, “교육적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치환하지 말라”라든가 “교육을 정치적 논리로 재단하지 말라”는 표현이 이에 해당한다. 이에 관하여 필자는 교육논리 대 ‘교육 아닌 논리’가 별도로 병립한다는 논거가 그릇된 것임을 지적한 바 있다.2) 만약 이들이 상호배타적이거나 상호 병립하는 것이라면 교육에서 추구하는 가치는 교육 이외의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적용될 수 없는 것이라는 의미를 갖게 된다. 이 논리는 학생들을 상황에 따라 배반된 가치를 추구하는 이중인격자로 만드는 오류를 범하게 될 위험성도 있다.

끝으로 헌법 제31조 4항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또 하나, 대학의 자율성은 존중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헌법에 명백히 규정되어 엄연히 준수되어야 할 대학의 자율성은 대학입학전형의 구체적인 방법까지 간섭하는 관주도정책, 등록금 책정과 교부금을 통한 사립대학의 국가통제, 기여입학제 금지를 포함하는 악명 높은 이른바 ‘3불(不)정책’ 등을 통하여 훼손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헌법적 가치의 준수되어야 할 부분에서는 훼손하고, 과도하게 적용하지 말아야 할 부분에서는 엄격하게 적용하는 세태, 그리고 헌법이 존중해야 한다고 규정한 대학의 자율을 원천적으로 묵살하는 세태는 우리가 헌법 제31조 4항을 심각하게 음미해야 하는 이유를 제공해 준다.

김정래 (부산교육대학교 교수/교육학, duke77@bnu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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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정래, 『정책 결정요인으로서 ‘공’과 ‘사’의 개념』, 한국경제연구원 KERI칼럼, 2009.9.14, www.keri.org/

김정래, 『과도한 공(公)개념이 사학(私學) 망친다』, 조선일보 시론, 2009.1.15, A27.

2) 김정래, 『경제논리, 교육논리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경제연구원 KERI칼럼, 2009.8.31, www.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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