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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교재중심의 수능 출제가 교육 정상화인가?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점이 심각하고 복잡하여 이의 시급한 해결을 위하여 정상상태보다는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다. 폴 헤인(Paul Heyne, 1931~2000)은 『경제학적 사고방식(The Economic Way of Thinking)』 첫머리에서 경제문제의 난점이 “경제체제가 잘 작동할 때가 어떤 상태인지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1) 경제문제가 심각할수록 경제가 잘 작동할 때(정상상태)가 어떤 상태인지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경제문제나 경제학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교육문제에서도 마찬가지이다.2) 언제부터인가 교육이 정치적 문제가 되면서 교육적 관심은 늘 ‘사교육대책’에 집중되어 왔다. 물론 명분은 ‘공교육 살리기’, ‘학교교육 정상화’이지만 학원수강 규제, 과외대책 등에만 정책이 쏠리고 정작 학교교육이 어떤 상태에서 잘 작동되는 것인지, 그리고 정상적인 상태로 작동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늘 논의의 본질을 벗어나 있다.


이처럼 교육의 정상상태 작동이라는 본질을 벗어난 또 다른 교육당국의 조치가 나왔다. 향후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수능시험)을 EBS 교재에서 출제토록 한다는 것이다. 명분은 비정상적인 사교육비도 줄이고 학교교육을 정상화하자는 것이다. 그 명분은 대통령의 이른바 ‘중도실용’ 노선에도 부합된다고 보기 때문에 당국에서 강력하게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중도실용’ 노선에는 서민대책이 중요한 부분으로 포함되어 있고, 다시 사교육비 경감은 서민대책의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수능시험을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지난 6월 4일 EBS 수능강의와 연계성을 높인 올 수능시험 출제방침을 발표했다.3) 그리고 6월 10일 치러진 전국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에서 EBS 수능방송 내용을 50% 이상 출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출제당국은 “9월에 실시되는 2차 수능 모의평가에서는 EBS 교재와의 연계율을 60% 수준으로 높이고, 11월 18일로 예정된 수능 본고사에서는 연계율을 70%까지 올리겠다”고 밝혔다.4) 당국의 이 같은 강력한 의지만을 보면 이제 EBS 수능방송교재만 공부하면 사교육 문제가 해결되고 학교교육이 정상화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당장 입시기관의 전문가들이 내놓은 반응만 보아도 이번 조치에 대한 평가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일례로 EBS 교재중심의 출제는 문항의 변별력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변별력ㆍ난이도 등 교육평가의 미시적이고 전문적인(technical) 문제가 이미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심각한 문제는 문항분석 차원에 있는 것이 아니다.


앞서 교육의 정상상태 작동의 조건이나 실행방향이 중요하다는 것을 지적한 바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EBS 교재에서 수능 출제를 한다는 이번 방침은 학교교육의 정상상태 작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조치이다. 그러므로 이 조치에서 다시 여러 가지 근원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 중에서 중요한 것 몇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당국의 이번 조치는 여전히 교육의 국가독점 발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구태를 답습하고 있다. 우선 현행 대학에서 학생선발을 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고 있는 수능시험을 국가가 독점하고 있는 상황은 전혀 개선된 바 없다.5) 더욱이 수험생 입장에서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수능시험의 출제에서 그 결과의 반영에 이르기까지 국가가 모든 것을 독점하는 상태는 이번 조치로 수능시험 국가독점을 오히려 보강하고 있다. 수능시험을 국가가 독점한 상태에서 이 시험문제를 EBS 방송 내용으로 출제한다고 하면 전국 모든 수험생은 EBS 교재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학교교육 정상화로 이해되어야 하는가?


둘째, EBS 교재가 새로운 사교육 시장을 창출해 낸다. EBS 방송 내용에서 수능시험을 출제한다고 하면 그것은 곧 EBS 교재에서 출제된다는 말이다. 수험생 중에서 EBS 방송을 시청하는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실제로 그 숫자는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험생들은 EBS 교재를 신주(神主) 모시듯 하는 입시전형으로 여길 것이다. EBS 교재가 기존의 강력한 입시 참고서를 대체한다. 예컨대 EBS 수학교재는 기존의 ‘수학의 정석’을 대체하는 상황이 연출된다. 여기서 다시 두 가지 문제가 파생한다. 하나는 EBS 교재를 중심으로 한 과외교습이 성행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EBS 교재를 기본으로 하는 또 다른 유형의 참고서들이 나올 것이다. 이 두 가지만 보아도 이번 조치가 학교교육 정상화와는 무관하며 되레 다른 형태의 사교육을 조장하는 조치이다.


셋째, EBS 교재중심 수능시험 출제는 EBS 자체를 국가가 운영하므로 EBS 교재의 국가독점이라는 또 다른 폐단을 낳는다. 학교에서 사용하는 교과서보다는 EBS 교재 내용이 수험생들의 주된 관심이 되는 상황에서, 혹 학교수업 자체가 EBS 교재중심으로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는다. 이러한 상황을 학교교육 정상화라고 볼 것인가?


넷째, 이번 EBS 교재중심의 수능시험 출제 조치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자괴감을 안겨주는 조치이다. 말로는 학교 선생님을 존중한다고 하고 선생님들이 주도하는 학교수업내용을 충실히 하라고 해놓고 EBS 교재중심으로 출제를 한다고 하면 교사들 입장에서 이 조치는 어떻게 인식되는가? 늘 교원의 지위와 권익을 위한다고 외치는 교원단체와 전교조가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하거나 별반 반응이 없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이번 EBS 교재중심의 수능문항 출제 조치는 학교교육 정상화를 기대할 수 없는 조치이다. 오히려 말(馬)을 잘 달리게 한다고 명분을 내세우면서, 말이 끄는 마차에 짐을 더 얹어놓은 격이다. 따라서 해결책은 학교교육의 정상화, 즉 교육의 정상상태로 작동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론적인 문제부터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첫째, 가능한 국가독점을 풀어야 한다. 국가독점의 대명사인 대입 수능시험을 폐지하는 것부터 고려해야 한다. 만약 수능을 폐지하기 어렵다면 존치하되 수능 결과의 반영 여부를 전적으로 대학에 맡겨두어야 한다. 즉 수능을 100% 반영하건, 수능을 무시하고 본고사를 보건 그것은 대학에 전적으로 일임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수능시험문제를 EBS 교재에서 출제한다는 또 다른 국가독점 발상은 사라진다.


둘째, 대학이 입학전형에서 명실공히 자율적인 선발권을 갖도록 해야 하고 다양한 전형방식을 존중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대학자율의 전형인 입학사정관제를 관주도로 시행하고 있으니, ‘자율’이 왜곡되어도 한참 왜곡된 것이 현실이다. 왜곡된 자율의 원상회복을 포함하여 자율이 정상상태로 작동하도록 대학의 자율권을 보장해야 한다.


셋째, 대학이 다양한 방식으로 전형을 하도록 하기 위하여 다양한 형태의 고등학교 교육이 전제되어야 한다. 다양한 형태의 고등학교 교육은 당연히 평준화의 폐지에서 찾아야 한다. 필자는 여러 차례 평준화 정책이 교육 만악(萬惡)의 근원임을 개진한 바 있다.6) 다만 교육의 정상상태 복원을 위하여 우리가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가치는 선택권과 선발권의 문제라는 점이다. 이를테면 평준화 정책이 수월성의 측면에서 재고되어야 한다는 논점은 문제의 본질을 비켜가고 있다. 평준화 정책이 수월성 제고에 결정적인 장애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근원적인 해악은 헌법적 가치인 선택권과 학교의 선발권을 원천적으로 박탈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가치가 회복되어야 교육이 정상상태로 복원될 수 있고, EBS 교재중심의 수능 출제라는 본질을 한참 일탈한 해괴한 처방이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다.


김정래 (부산교육대학교 교수/교육학, duke77@bnu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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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aul Heyne, The Economic Way of Thinking, 1994, 주만수·한홍렬 역, 『경제학적 사고방식』, 자유기업원,

1997, p.17.

2) 이 점에서 일부 학자들과 특정 교원단체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교육논리가 경제논리, 정치논리와 별도로 존재

하는 것이 아니다. 필자의 졸고, 『경제논리, 교육논리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경제연구원 KERI칼럼,

2009. 8. 31. www.keri.org 참조

3) 동아일보, 『수능수리, EBS 교재서 숫자만 바꿔 출제』, 2010년 6월 5일자 참조

4) 조선일보, 『모의수능, EBS 교재서 50%이상 나와』, 2010년 6월 11일자 참조

5) 필자의 졸고, 『대학 수능시험도 없애야 할 규제다』, 한국경제연구원 KERI칼럼, 2009. 11. 18. www.keri.org

참조

6) 평준화 정책의 폐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졸저, 『고혹 평준화 해부』, 한국경제연구원, 200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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