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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비용과 공공기관 민영화: 새로운 패러다임


2009년 노벨경제학상은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과 올리버 윌리엄슨(Oliver E. Williamson) 두 명의 제도경제학자에게 돌아갔다. 제도경제학은 1991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시카고대학의 로널드 코즈(Ronald Coase) 교수에서 비롯되었는데, 전통적 신고전파 경제학이 무시하였던 거래비용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마찰력을 0으로 가정하여 전개된 물리이론이 현실을 설명하지 못하는 것처럼 거래비용을 무시하고 전개된 신고전파 이론은 사회현상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거래비용은 재화와 서비스의 거래에 부수적으로 수반되는 비용이다. 전통시장에서 콩나물을 구입하기 위해 가격을 흥정하고 콩나물의 유효기간을 짐작하는 과정은 거래비용이다. 또한 계약금을 납부하고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 주변 개발계획과 건설회사의 신뢰성 그리고 주택경기를 전망하는 과정도 거래비용이다.


거래비용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발생한다. 첫째, 거래상대방이 의도적으로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취하기 때문이다. 콩나물을 판매하는 아주머니와 아파트 건설사를 과연 신뢰할 수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둘째, 거래와 관련되는 미래의 발생 가능한 상황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콩나물이 상한 것은 아닌지, 금융위기로 아파트 건설사가 부도나는 것은 아닌지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에 소요되는 비용은 모두 거래비용이 된다.


1970년대 초 윌리엄슨은 거래비용 개념을 활용하여 기업이 부품을 내부에서 생산(make)할 것인지 아니면 외부에서 구입(buy)할 것인지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는 두 가지 유형의 기술을 구분하였다. 하나는 범용기술(general purpose technology)을 사용하는 생산이고, 또 다른 하나는 특정기술(special purpose technology)을 사용하는 생산이다. 예컨대 모든 모델의 자동차에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부품을 생산하는 기술은 범용기술이고, 특정 모델에만 사용되는 부품을 생산하는 기술은 특정기술이라 한다. 특정기술은 특수한 거래에만 적용되고 또 특수한 내구자산에 - 물적 자본이건 인적자본이건 관계없이 - 더 많은 투자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특정기술을 사용하는 생산자는 관련 거래가 예기치 않게 소멸하는 위험을 항상 걱정한다. 만약 이러한 위험에 대한 안전장치가 없다면 특정기술을 사용하는 생산자의 산출물은 시장에서 거래되기 힘들다. 반면 특수한 부품의 생산자가 안전장치를 확보할 수 있다면 자신의 부품을 구입하는 기업과 분리되어 시장거래를 형성할 수 있다.


시장거래를 장기간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안전장치로는 장기관계 또는 장기계약이 존재한다. 만약 어떤 기업이 부품 생산자와 장기적으로 끈끈한 관계를 - 친인척, 동창 또는 친분 등 - 유지할 수 있거나, 또는 계약의 불안정성을 충분히 제거한 장기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면 기업은 부품을 외부의 시장에서 조달할 수 있다. 그런데 기업이 부품을 내부에서 생산할 때에는 내부관리 비용이 나타날 것이고, 외부에서 구입할 때에는 장기관계 또는 장기계약에 따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결국 내부생산과 외부조달의 선택은 기업의 내부관리, 장기관계, 장기계약 등 각각의 거래비용 규모에 좌우될 것이다.


윌리엄슨의 이러한 분석은 공공부문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정부부문에서 필요로 하는 서비스는 대개 범용기술보다 특정기술에 의해 생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전기ㆍ가스ㆍ수도ㆍ교도소ㆍ군사시설 등에서 사용되는 자본시설은 다른 용도로 전환되기 어려운 특정한 자본이다. 경마ㆍ화폐주조ㆍ공단조성ㆍ관광진흥ㆍ취업교육ㆍ건강보험 등의 사업도 특정기술로 볼 수 있다. 물론 관점에 따라서는 이들을 범용기술로 볼 수도 있지만 여기서 분명한 점은 과거에 시장이 충분히 성숙되지 못했을 때 이들은 특정기술이었다는 것이다.


정부가 다양한 유형의 공공서비스를 내부에서 생산할 것인가 아니면 민간에서 조달할 것인가의 문제도 민간 기업처럼 거래비용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 정부의 내부관리, 장기관계, 장기계약 등 세 가지 유형에 따라 거래비용이 어느 정도로 나타나는지 그 규모를 가늠해야 한다. 공공부문 구조조정의 핵심은 내부관리, 장기관계, 장기계약의 세 가지 유형에 대해 거래비용을 분석한 후 이들 중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안을 채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건국 이후 60여 년간 많은 공기업들을 민영화하였다. 그 과정과 절차에서 공정성과 특혜시비의 문제는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민간부문의 효율성을 신뢰하였다는 측면에서 민영화 정책은 올바른 선택이었다. 2008년 8월 확정된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정책도 이러한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민영화 정책은 범용기술을 사용하는 공기업에 한정되었다. 예컨대 한국통신ㆍ포항제철ㆍ국정교과서 등과 같이 생산원가를 모두 시장에서 보전 가능한, 다시 말해 정부지원 없이 생존 가능한 기업들만 민영화되었다. 이들은 장기관계, 장기계약 등 안전장치가 없더라도 내수와 수출입을 통해 시장 내에서 충분히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기업들이다. 이들에 대해서는 적절한 시장규제와 산업규제만으로도 충분히 민영화가 가능했던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가 공공기관 민영화와 함께 그 관리의 선진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윌리엄슨의 거래비용 이론을 차용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껏 추진하지 않았던 공공기관 민영화와 관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입하는 것이다. 또 그것은 선진국들이 1990년대에 도입 추진하였던 신공공관리론(New Public Management, NPM)과 2000년대에 성행하였던 공공거버넌스(Public Governance) 이론의 조화라 할 수 있다.


공공기관 관리와 민영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세 가지 단계로 설명될 수 있다. 첫째, 공공기관과 장기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성과협약을 체결해야 한다. 둘째, 느슨한 내용의 성과협약을 엄격한 시장계약으로 전환하는 노력을 꾸준히 경주해야 한다. 셋째, 시장계약으로 전환 가능한 사업에 대해서는 경쟁 입찰을 통해 민영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과제는 우리 사회가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새로운 도전으로 볼 수 있다.


옥동석 (인천대학교 무역학과 교수, dsock@inche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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