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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자의 책임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경영자가 져야 할 책임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경영자는 자신이 내린 의사결정에 대해서 어느 수준까지 책임을 지는 것이 합당한가?”

7월 20일자 <동아일보>는 “우리은행의 파생상품 투자로 인한 대규모 손실 발생에 대해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현 KB금융지주 회장)에게 가장 큰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예금보험공사의 방침을 전하고 있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우리은행에 대해서 대주주인 예보의 이러한 조사결과가 당시의 경영자들에 대해 구체적인 징계의 형식으로 그 모습을 드러낼지는 아직 두고 봐야 한다. 하지만 이번 조사결과는 경영자의 의사결정에 대해 어느 정도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중요한 선례를 남기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황영기 전 회장이 재임하고 있었던 2005년과 2006년 동안 우리은행은 이번 금융위기로 인하여 막대한 손실이 발생한 부채담보부증권(CDC)과 신용디폴트스와프(CDS) 등에 대하여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였다. 그 결과 우리은행은 지금까지 총 1조6,200억 원의 손실을 보았다. <동아일보>는 “파생상품 투자의 상당부분이 황 전 회장이 취임한 2004년 3월 이후 이뤄져 왔으며 리스크관리의 최종 책임은 최고경영자에게 있다는 점을 들어서 황 전 회장에게 직무정지 수준의 중징계를 내릴 필요가 있다”는 예보의 입장을 전한다.

이러한 판단의 옳고 그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영자의 의사결정 과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영자의 의사결정은 자신의 고유한 경험과 지식 그리고 정보 등을 바탕으로 종합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런 의사결정에 특정 경영자의 독특한 선입견이나 편견 등이 개입될 소지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원래 인간의 판단력이나 선견력 자체는 아무리 풍부한 관련 정보가 주어지더라도 인지구조의 불완전함 때문에 틀릴 가능성을 내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04년과 2005년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문제가 되었던 부채담보부증권이나 신용디폴트스와프 등과 같은 대표적인 파생상품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던 경영자가 몇이나 됐을까? 그런 위험성을 정확히 알고 예방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면 글로벌 금융위기의 와중에서 쟁쟁하던 선진국 금융기관들이 커다란 타격을 입거나 무대의 전면에서 퇴장하는 비운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까?

리스크 관리 전문가들조차 파생상품의 위험성을 피부로 느끼기 시작하던 것은 리먼 브라더스 사태를 전후하였을 때이다. 조금 빨리 알아차린 전문가들이라고 해야 2007년 하반기경일 것이다. 우리은행의 파생상품 투자로 인한 손실이 본격화된 근본 원인은 2005년부터 2007년 3월 퇴임까지 황 전 회장이 내린 의사결정으로 말미암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황 전 회장이 처벌을 받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딱 두 가지의 조건에 들어맞을 때이다.

하나는 자신의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일부러 파생상품 투자를 늘린 경우라 할 수 있다. 이런 증거가 포착된다면 당연히 황 전 회장이 징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특정 투자결정을 내림으로써 배임이나 수뢰와 같은 사건에 연루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특정한 의사결정과 관련해서 사적인 이익을 거래 파트너로부터 수취한 경우에는 명백한 범법 행위에 속한다. 두 가지의 경우라면 당연히 어떤 경영자라도 법적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경영자가 재임하고 있는 동안 내린 의사결정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필자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서 경영자가 내린 의사결정에 대해 사후적으로 처벌하는 일은 올바른 조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경영자는 신의성실의 원칙하에 내린 의사결정이라면 그 어떤 책임으로부터도 면제되어야 한다.

사전적으로 내린 모든 의사결정이 다 이익을 남기는 것으로 연결된다면 누가 사업에서 실패할 수 있겠는가? 선의를 가진 대다수의 경영자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를 낳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미래란 늘 불확실함으로 가득 차 있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개개인의 인지구조가 늘 완전하다고 할 수도 없다.

상황은 자신이 예상한 바대로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전혀 예상치 못한 불운이 겹칠 수도 있다. 과거의 시점에서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로 가득 찬 미래를 대상으로 내린 의사결정에 대해서 현 시점에서의 결과를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별하고 이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은 과한 면이 없지 않다. 물론 과거사 정리 차원에서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분석과 진단, 그리고 처방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다. 리스크 관리에 문제가 있었다면 더 나은 대안을 만들어서 시스템을 정비하는 일은 미래의 더 큰 실수를 줄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구멍가게일지라도 자신의 돈을 걸고 사업을 해본 사람이라면, 미래에 대한 의사결정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gong@g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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