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martin-martz-RhF4D_sw6gk-unsplash.jpg

l    소통       

소통

KERI 컬럼 / Global Focus / 보도자료 / 청년의 소리 / 알기 쉬운 경제상식 & 이슈

한국경제연구원_WHITE_edited.png

경쟁의 본질과 공정거래법의 역할


지난달 30일, 정호열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신임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취임하였다. 취임식에서 정 위원 장은 “경쟁정책은 시장의 자율기능을 최대한 창달해야 하며, 경쟁제한적인 정부 규제를 개선해 경쟁 촉진적 시장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평소에도 “기업과 기업 사이의 사적 거래에 공정거래위원회가 행정적으로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은 시 장이 지향하는 이념에 상치되며, 이를 사인 간의 사법적 분쟁해결절차에 맡기는 것이 정도(正道)이고 또 이것이 근본적인 효율성을 가진다”고 말해 왔다.1) 또 지난해 ‘공정거래의 날’ 행사에서는 홍조근정훈장을 받은 후 “공정거래법은 재벌규제법 이 아니라 시장경제를 성숙하게 만들어주는 법”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규제 완화와 시장경제 옹호를 명분으로 공정한 경쟁질서 확립보다는 대기업에 편향된 정책을 펼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즉, 시장 친화적(market-friendly) 정책과 기업 친화적(business-friendly) 정책이 서로 다 르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양자는 구별되는 것인가? 이에 대한 답변은 ‘시장’과 ‘기업의 본질’에 대한 관점 에 따라 달라질 것이고, 이러한 차이는 결국 ‘경쟁의 본질’을 바라보는 차이로 나타나며 경쟁정책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따라서 경쟁의 본질이라는 관점에서 공정거래법의 역할을 모색해 나가야만 한다.

공정거래법이 시장에서 기업 간 경쟁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고, 이것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정거래법이 추구해야 하는 ‘경쟁’이란 개념은 원래 법학이 아닌 경제학에서 주로 다루는 경제학상의 개념 이므로 경제학의 도움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경제학에서 기업의 본질을 ‘선택의 렌즈(lens of choice)’를 통해 바라 보는 경우와 "계약의 렌즈(lens of contract)"를 통해 바라보는 경우 경쟁개념이 달리 해석될 수 있고 공정거래정책의 방향도 달라 질 수 있다.2)

선택의 렌즈(lens of choice)를 통해 본 경쟁의 본질

전통적인 주류 경제학에서는 경제주체들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제한된 수단들 사이에서 어떻게 선택하는지를 연구한다. ‘소비자’는 효용 극대화를, ‘기업’은 이윤 극대화를 위해 선택을 한다. 그리고 기업을 소비자에 대응되는 하 나의 독자적인 실체로 보며, 기업이 거래비용이 존재하지 않는 완전시장에서 활동한다고 가정한다. 물리학자가 마찰이 없는 세상을 가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기업은 거래비용이 소요되지 않는 완전한 시장에서 생산요소를 구입하여 이를 최종 생산물로 전환 한 후 완전한 시장에 다시 판매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때 기업이 얼마의 비용을 들여 얼마나 생산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데, 이것을 결정하는 것은 생산요소의 비용과 산출물 사이의 관계를 수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생산함수(production function)’이다 .

따라서 기업 간 경쟁은 개별 기업이 독자적으로 자신의 생산함수 변화를 통해 생산의 기술적 효율성을 증대시키 고자 하는 기술적 경쟁(technological rivalry)에 기초하며 이루어진다. 그리고 기업 간 거래는 개별기업이 다른 기업에게서 생산 요소를 구입하고 산출물을 다른 기업에 판매하기 위한 표준계약(standard contracts)만이 인정된다. 그 이외의 기업 간 ‘비전형 계약(nonstandard contracts)’에 대해서는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일 수 있다는 의심을 가지고 접근한다.


계약의 렌즈(lens of contract)를 통해 본 경쟁의 본질

기업의 본질을 ‘선택의 렌즈’를 통해 보며 기술적 효율성 증진에 기초한 경쟁을 강조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기업의 본질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선택의 렌즈’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업을 소비자에 대응하는 하나의 주체라고 당연히 전제 하지 말고 만일 기업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생산이 이루어질까라는 원론적 질문에서 출발하여 기업의 본질과 경쟁 의 본질을 추론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추론을 위해서는 ‘계약의 렌즈’가 필요하다.

만일 기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제품에 대한 수요가 발생할 때마다 생산요소 소유자들이 서로 연락을 취하여 한 곳에 모이고 여기서 어느 정도의 생산요소를 어느 정도의 가격에 공급할 것인가에 관해 합의점을 도출하여 계약을 체결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제품을 생산한 후 추가적인 수요가 발생하면 또 다시 이들이 모여 새로운 계약조건에 대해 협상하고 합의해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방식이 바로 기업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가장 순수한 형태의 시장 메커니즘을 통한 생산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장 상황이 변화할 때마다 다양한 생산요소 소유자들이 매번 모여 단기계약을 여러 번 체결하는 것은 상당히 번거로 울 것이다. 또한 이러한 단기계약 때마다 당사자들 사이의 권리ㆍ의무관계와 관련된 구체적 사항을 모두 예상하여 계약에 포함시키 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이러한 번거로움과 어려움이 시장 메커니즘을 이용할 경우 지불하게 되는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이다 . 따라서 거래당사자들은 이러한 거래비용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자구책을 찾고자 할 것이다.

즉, 계약에 관한 포괄적 사항을 일방적으로 확정할 수 있는 권위(authority)를 계약의 일방 당사자에게 부여함과 동시에 이러한 권위의 남용을 통제하기 위한 구조와 절차적 메커니즘을 계약관계에서 발생하는 권리의무의 내용으로 하는 계약구조 를 설정할 것이다. 이러한 계약구조가 바로 ‘기업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기업의 본질은 전통적인 주류경제학에서처럼 단순히 소 비자에 대응되는 또 다른 하나의 독자적인 실체가 아니다. 시장에서의 거래비용을 극복하기 위해 생산요소 소유자들이 설계한 완전 한 수직적 통합형식의 계약의 결합체(nexus of contracts)이다. 이와 같이 수직적 통합형식의 계약구조인 기업이 시장에서의 거래 비용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라면 거래비용의 수준에 따라 이러한 비용을 극복하기 위해 완전한 수직적 통합에서의 권위보다 약화된 형태의 권위를 전제로 한 부분적 수직적 통합 형식의 계약구조유형도 필요할 것이다.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이 규제의 대상으로만 보 아온 기업집단과 대ㆍ중소기업 간 수직적 거래제한이 이러한 계약구조의 한 유형일 수 있다.

결국 계약의 렌즈를 통해 본 경쟁의 본질은 시장에서의 거래비용을 완화시켜 줄 수 있는 보다 효율적인 계약구조 를 발견하기 위한 ‘계약적 경쟁(contractual competition)’이라고 할 수 있다.

공정거래법의 역할

지금까지 우리나라 공정거래정책은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기 위해 대규모 기업집단의 소유지배구조를 직접 적으로 규제해 왔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불공정거래행위를 금지하는 데 주력해 왔다. 전자를 규제하는 이유는 재벌의 경우 기업집단을 형성하고 집단 내부에서 기업들 간 비시장적 거래를 하며 중소기업 사업영역을 잠식해 경쟁을 제한할 잠재적 위험이 있 기 때문이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 역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거래가 주로 수직적 거래제한 계약 형태를 취하므로 경쟁을 제한할 잠재적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선택의 렌즈’를 통해 시장-기업-경쟁의 본질을 바라보며 ‘개별 기업내부’에서의 기술적 효율성 증진과 개별기업 간 생산물 이전만을 위한 거래계약을 인정하는 경우 이러한 규제의 타당성이 긍정될 수도 있다. 그러나 ‘계약의 렌즈’를 통해 볼 경우에는 반드시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기업집단을 통한 거래와 수직적 거래제한을 통한 거래가 ‘완전한 시장 에서 개별기업 간 완전경쟁’이라는 이상적 모습과는 다소 차이가 나는 비전형적 형태의 거래이지만 이러한 거래유형들이 시장에서 의 거래비용을 극복하기 위한 개별 기업들 사이의 계약적ㆍ조직적 대응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거래형태에 대해서는 사전적이고 획일적인 규제방식을 취하는 공정거래법상의 공법적 논리보다는 사후적이고 유연한 규제방식을 취하는 회사법, 계약법, 불법행위법 등의 사법적 논리에 기초한 통제가 바람직하다.

특히 공정거래법은 경쟁을 촉진시키는 법이므로 행위의 위법성 판단에 경쟁제한성이 당연히 포함되어 있어야 함 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거래형태에 대해서는 그러한 우려만으로 규제를 하고 있어 더욱 문제이다. 이것은 공정거래법이 소비자 후생 증진으로 연결되는 ‘경쟁’촉진보다 약자인 ‘경쟁자’ 보호에 더욱 주력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경쟁의 본질을 잘못 설 정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쟁자 보호는 회사법, 계약법, 불법행위법 등의 사법과 사회정책 등에 맡기고 공정거래법은 경쟁촉 진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만 공정거래위원회가 보유한 한정된 인력과 예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신임 공정거래위원장은 취임사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루고자 하는 시장을 대기업과 중소기업, 부품공급자와 완 제품 생산자, 공급자와 수요자가 서로 상생하면서 동적으로 균형을 이루는 하나의 생태계에 비유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생태계에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은 생태계의 자율성을 망가뜨릴 수 있으므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서로 상생해 나가는 관대한 영업형 태를 개발하는 데 자율적으로 참여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필자는 취임사의 이러한 대목이 계약의 렌즈를 통해 본 시장-기업-경 쟁 개념에 기초한 것이라고 보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볼 경우 시장 친화적인 정책은 기업 친화적인 정책일 수밖에 없다. 새로 출 범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정책이 필자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sshun@keri.org)

---------------------------------------------------------------------------------------------------

1) 정호열,「불공정거래행위의 금지」,『공정거래법강의 Ⅱ』, 권오승 편, 2000, 법문사, p.400

2) 각각의 관점에서의 경제조 직 일반에 대한 설명은 Williamson Oliver E., “The Theory of the Firm as Gover-

nance Structure; From Choice to Contract",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 Volume 16, No. 3, 2002.

“Examining Economic Organization Through The Lens of Contract", Industrial and Corporate Change,

Volume 12, No. 4, 2003 참조. 각각의 관점이 구체적으로 미국 반트러스트법 정책에 미친 영 향에 대해서는

Alan J. Meese, “Price Theory, Competition, and The Rule of Reason", University of Illinois Law Review,

2003 참조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