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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규제 개혁에 시장을 활용해야


통상 금융위기를 겪고 난 후에는 금융규제가 강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위기 이후의 금융규제 강화는 진지한 성찰 및 분석에 기반을 둔 것일 수도 있고 여론 및 정치적 압력에 떠밀린 것일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가 바람직한 것임은 당연하지만 과거 경험을 보면 후자인 경우 금융규제는 억압적인 성향을 띠게 되는 경우가 많고 금융기관은 이러한 규제를 회피하기 위한 적극적 노력을 하게 되므로 규제의 효과는 크게 반감되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강한(strong)’ 금융규제보다는 금융안정성은 향상시키면서 시장 위축을 최소화하는 ‘똑똑한(smart)’ 금융규제 체계가 필요한 것이다.

이 같은 금융규제 구축의 일환으로 시장규율(market discipline) 또는 시장정보(market information)를 금융 감독 및 규제에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 동안 일부 학자들을 중심으로 제기되어 왔었다. 감독당국이 금융기관의 리스크를 정확히 측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현실적 판단이 그 배경이다. 감독당국은 통상적으로 금융기관이 생산하는 각종 정보를 바탕으로 금융기관의 리스크를 파악한다. 그러나 높은 리스크에 처한 금융기관일수록 그 리스크를 축소하여 보고하려는 인센티브가 있으며, 특히 부실이 이미 상당히 진행된 금융기관의 경우 주주 및 경영자는 보다 큰 리스크 추구행위를 통해 회생을 추구하는 ‘도박(gamble on resurrection)’의 인센티브를 가진다. 신용평가사(rating agency)의 견해도 금융기관 평가에 반영되지만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도 나타난 바와 같이 평가를 의뢰하는 주체인 금융기관과의 관계로 인해 신용평가사는 금융기관의 리스크를 실제보다 과소평가할 인센티브를 가진다. 또한 감독당국도 감독소홀에 따른 책임, 정치적 부담감 등으로 부실의 가능성이 있는 금융기관에 대한 빠르고 적절한 대처를 회피하는, 즉 규제용인(regulatory forebearence)의 인센티브를 가질 수 있다.

건전성 감독에 있어 이 같은 한계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시장의 힘과 판단을 이용하는 방안이다. 즉 정부가 규율하기 어려우면 시장규율을 통해 금융기관의 리스크 추구행위를 제어하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방안 중의 하나로 후순위채권(subordinated note)의 의무적 발행을 들 수 있다. 후순위채권은 말 그대로 기업 도산 시 변제순위가 다른 채권자들에 비해 가장 낮다. 따라서 후순위채권은 BIS 기준 자기자본 산정 시 보완자본으로 인정받는다. 후순위채권의 성격상 채권금리는 다른 금융채에 비해 높고 금융기관의 리스크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결국 금융기관으로서는 후순위채권 발행으로 인한 비용을 낮추기 위해서는 보유자산의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 또 감독당국으로서는 후순위채권의 금리를 지표로 삼아 적기에 시정조치를 내릴 수도 있다. 후순위채권의 시장평균금리를 기준으로 특정 금융기관의 금리가 이보다 높은 경우 감독당국은 의무적으로 건전성 검사를 실시하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구축할 수도 있다. 즉 시장정보를 ‘자동격발(automatic trigger)’의 신호로 삼아 감독당국의 의무적 개입을 강제하여 규제용인을 방지하는 방안이다.

후순위채권을 이용한 규제체계의 검토에 대한 권고는 미국의 ‘금융현대화법(Financial Service Modernization Act, 1999) 제정 당시 동법에서 규정한 바 있다.1) 동법 108조(Sec. 108)에서는 FRB(연방준비은행)로 하여금 후순위채권을 이용한 규제체계에 대한 연구를 의무화하였으며 이에 기초하여 규제체계의 개선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FRB의 후순위채권의 활용에 대한 긍정적 보고서에도 불구하고 대형은행들의 반대 등으로 인해 규제체계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후순위채권이 부채측면에서의 시장규율 방안이라고 한다면 금융기관의 자산 측면에서의 시장정보를 활용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은행의 대출금리 수준을 신용리스크의 척도로 삼고 그 금리가 높을수록 자산부실화의 가능성이 커지므로 이에 상응하는 자본보강을 하도록 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방법은 아르헨티나에서 실제로 사용되었던 방식으로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에 대해서도 이 같은 방식이 적용되었더라면 고위험 대출에 상응하는 자본보강이 이루어져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한편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후순위채권의 활용 등을 포함한 시장규율을 금융규제 체계 내에 적극적으로 도입한 나라로 아르헨티나를 들 수 있다. 아르헨티나는 1990년대 초반부터 1999년까지 강도높은 금융규제 개혁조치를 단행하였는데 예금보호제도를 축소하였고 은행은 총예금의 2%에 해당하는 금액을 후순위채권으로 발행하도록 하였다. Calomiris와 Powell는 아르헨티나가 시장친화적인 금융규제 개혁조치로 인해 아시아 금융위기, 러시아의 디폴트 위기 등을 순조롭게 넘길 수 있었으며 신흥국가들 중 가장 성공적인 금융개혁을 이룬 나라 중의 하나로 평가하고 있다.2)

금융시장에서의 정부 개입은 금융 불안이 가져오는 외부성(externality)으로 인해 나름대로의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한 시장의 왜곡도 발생하는데, 예금보호제도ㆍ대마불사(too-big-to-fail) 등으로 인한 도덕적 해이가 대표적이다. 또 비대칭적 정보, 이해상충, 대리인 문제 등의 각종 마찰이 정부의 개입에 의해 완전히 해소되지는 못하므로 금융규제가 기대했던 만큼의 효과를 가져 오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러한 문제를 완화시키기 위해서 시장의 힘과 정보를 활용한 감독 및 규제체계의 구축이 필요하다. 금융건전성 감독에 있어 시장의 힘을 활용한다는 것은 정확하지 못한 정부의 자의적 판단 및 개입을 줄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시장은 금융기관의 리스크에 반응하는가? 여러 실증연구들은 시장이 금융기관의 리스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3) 그런데 왜 시장은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위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였는가? 시장은 리스크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리스크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이 이번 위기를 통해 나타났다. 금융위기의 역사를 보면 정부의 왜곡적인 정책(distortionary policy) - 이번 금융위기의 경우 미 연준의 비정상적인 저금리 정책 - 등으로 금융시장 전체가 왜곡될 경우에는 시장은 리스크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4) 이 때문에 거시건전성 감독(Macro Prudential Supervision)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거시변수에 대한 관찰을 통해 거품의 징후를 포착하고 선제적으로 건전성 감독 및 규제조치를 시행함으로써 미시적 감독의 한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현재 글로벌 차원에서 또는 개별국가 차원에서 금융규제 개혁 논의가 활발하다. 위기를 계기로 일부에서는 보다 강력한 금융규제의 도입을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강도 높고 억압적인 규제가 아니라 시장과 정부의 역할이 적절하게 조화된 효과적인 금융규제 체계의 구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와 같이 금융기관이 생산한 정보와 정부의 판단에 의존하는 규제체계에서 탈피하여 시장을 활용한, 즉 시장규율과 시장정보를 활용한 규제체계의 개혁이 필요하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tklee@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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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발의자의 이름을 빌어 일명 'Gramm-Leach-Bliley Act of 1999'이라고도 한다.

2) Calomiris, C.W., and Powell, A., "Can Emerging Market Bank Regulators Establish Credible Discipline?

The Case of Argentina, 1992-99", In F. S. Mishkin (ed). Prudential Supervision: What Works and What

Doesn't,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1.

3) - Flannery, M.J. and Sorin M. Sorescu, Evidence of Bank Market Discipline in Subordinated Debenture

Yields: 1983-1991, Journal of Finance Vol. LI, No.4, 1996.

- Flannery, M.J. and Stanislava Nikolova, "Market Discipline of U.S. Financial Firms: Recent Evidence

and Research Issues", In W. C. Hunter, George G. Kaufman, Caudio Borio, and Kostas Tsatsaronis

(eds), Market Discipline across Countries and Industries, MIT Press, 2004.

4) Calomiris, C.W., "Financial Innovation, Regulation, and Reform", Cato Journal Vol.29, No.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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