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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발달과 로봇의 진화


인류 문명은 기술의 발달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기술이 정체하면 문명도 정체할 것이다. 현대 문명처럼 거대하고 복잡한 문명에선 기술의 역할이 당연히 크고, 새로운 기술이 끊임없이 나와야 문명이 활력을 유지할 수 있다. 특히 기술이 불러온 문제들은 더 나은 새로운 기술에 의해서만 풀릴 수 있다. 환경 오염, 지구 온난화, 자원의 고갈과 같은 심각한 문제들은 모두 보다 나은 기술에 의해서만 누그러지거나 해결될 수 있다.


자연히 우리는 늘 새로운 기술을 열망한다. ‘연구개발(R&D)’이란 말보다 더 큰 권위와 매력을 지닌 말이 몇이나 되겠는가? 기업마다 수익의 많은 부분을 연구개발에 투자한다고 강조하고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가 적은 나라들은 앞날을 불안하게 생각한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기술이 우리 삶의 모습을 결정하는 상황을 불안한 눈길로 바라본다. 새로운 기술에 대해 두려움과 미움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해할 수 없는 기술들에 의해 자신의 삶이 결정되고 휘둘리는 상황이 마땅찮아 불쾌함을 느끼는 게 이해가 되므로 이상한 일은 아니다.


사람들이 가장 큰 두려움을 느끼는 기술은 아마도 인공지능을 갖춘 기계, 즉 로봇일 것이다. 여러 면에서 인간과 아주 비슷한 기계가 생겨남으로써 우리와 경쟁하거나 아예 대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보다 더 끔찍한 악몽이 또 있겠는가?


기계로 만들어진 인간인 로봇은 미래의 인류 사회를 그린 작품에서 흔히 등장한다. 로봇이란 단어는 체코작가 카렐 차펙(Karel Capek, 1890~1938)의 희곡 <R.U.R>(1920)에서 처음 쓰였다. 이 작품은 영문판 <로섬의 만능 로봇들: 환상적 멜로드라마[R.U.R.(Rossum’s Universal Robots): A Fantastic Melodrama]>(1923)를 통해서 널리 알려졌고, 그 뒤로 로봇이란 말은 일상어가 되었다. 지금 로봇은 기계로 만들어진 인간을 가리키지만, 차펙의 작품에 나온 로봇은 영혼이 없고 일밖에 모르는 인조인간을 뜻했다.


로봇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존재다. 이미 많은 공장에서 원시적 로봇들이 단순하지만 힘들고 위험한 작업들을 하고 있다. 주로 금속을 재료로 삼아 기계적으로 만들어졌으므로, 로봇은 사람과 쉽게 구별된다. 로봇은 때로는 사람과 비슷하게, 때로는 사람과 많이 다르게 생각하고 느끼는 존재로 그려진다. 물론 자식을 낳을 수는 없지만 때로는 자신과 똑같은 로봇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과학소설 작가들은 처음엔 로봇들이 사람들을 압도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드러냈고 로봇들이 사람들을 억압하거나 말살하는 상황을 주로 그렸다. 로봇들이 인류에 대해 호의적이라 할지라도 로봇들이 주도하는 세상은 인간들에겐 억압적인 세상이 될 수밖에 없으리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1940년대에 나온 잭 윌리엄슨(Jack Williamson)의 <휴머노이즈(Humanoids)>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이런 전망은 영화에서 더욱 더 절망적으로 그려졌다. 제임스 캐머런(James Cameron)의 <터미네이터(Terminator)> 시리즈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또 1930년대엔 그런 비관적 전망에서 벗어난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널리 알려졌고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아이작 애시모프(Isaac Asimov)가 그린 로봇들이다. 애시모프는 사람들에게 아주 호의적인 로봇들을 그렸다. 아울러 애시모프는 인류를 로봇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려 시도했다. 마침내 그는 <나, 로봇(I, Robot)> 연작에서 ‘로봇 공학의 세 법칙들(Three Laws of Robotics)’이라고 불리는 원칙을 다듬어냈다.


제1법칙(The First Law): 로봇은 사람을 해치거나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사람이 해를 입도록 해서는 안 된다.(A robot may not injure a human being, or, through inaction, allow a human being to come to harm.)


제2법칙(The Second Law): 로봇은 사람이 내린 명령들을 따라야 한다. 그것들이 제1법칙과 상충하지 않는 한.(A robot must obey the orders given it by human beings, except where such orders would conflict with the First Law.)


제3법칙(The Third Law): 로봇은 자신의 존재를 보호해야 한다. 그런 보호가 제1법칙이나 제2법칙과 상충하지 않는 한.(A robot must protect its own existence as long as such protection does not conflict with the First and Second Law.)


위의 세 법칙들을 생각해 낸 뒤, 애시모프는 사람이란 말을 정의하지 않고서는 자신이 세운 법칙들을 현실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므로 로봇에게 그저 사람의 명령을 따르라고 요구하는 것은 충분한 지침이 되지 못한다. 사악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도 물론 본질적 문제를 제기한다. 그래서 애시모프는 개별적 사람들에 우선하는 인류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제0법칙(The Zeroth Law): 로봇은 인류를 해치거나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인류가 해를 입도록 해서는 안 된다.(A Robot may not injure mankind, or, through inaction, allow mankind to come to harm.)


애시모프가 이런 법칙들을 내놓자, 로봇 소설을 쓴 작가들은 거의 모두 그것들을 문학적 관행(convention)으로 받아들였다. 인공지능의 연구에 큰 업적을 남긴 마빈 민스키(Marvin Minsky)는 그 법칙들을 실제로 컴퓨터에 집어넣으려고 애썼다.


애시모프나 민스키의 낙관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과 로봇의 빠른 발전은 많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한다. 근자에 컴퓨터와 로봇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모임인 ‘인공지능발전협회(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Artificial Intelligence)’는 캘리포니아에서 모여서 인공지능과 로봇의 발전이 제기하는 문제들을 논의했다. 그들의 견해는 낙관적이기보다는 비관적이다.


로봇이 제기하는 문제들은 예측하기 어렵다. 그리고 우리는 비관적 전망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제기하는 문제들과 위협들은 분명하고 근본적이다.


그래도 앞으로 로봇은 인류에게 호의적이고 도움이 되는 존재로 진화할 가능성이 높다. 로봇을 만들고 발전시키는 것은 사람들이므로 인류에게 좋은 특질들은 선택되고 해로운 특질들은 제거될 것이다. 이런 과정은 사람들이 가축을 길들이고 개량해 온 과정과 본질적으로 같다. 앞으로 전개될 로봇의 진화과정은 사람이 맨 먼저 길들여서 가장 오래 공존해 온 개의 진화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다윈이 진화론을 정립할 때 가축 개량업자들의 관행들에서 많은 시사를 받았다는 사실은 그래서 흥미롭다.


반어적으로 이런 진화과정은 애시모프의 ‘로봇공학의 법칙들’이 부분적으로 파기되리라는 것을 가리킨다. 로봇은 주인인 사람의 천성을 닮을 수밖에 없는데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협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공격적이다. 그래서 개는 주인에게 충실하도록 진화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낯선 사람들에 대한 공격성을 지녔다. 경찰견이나 군용견처럼 아주 공격적인 행태를 지니도록 특수하게 진화한 개들도 있다. 아마도 로봇도 그렇게 진화할 것이다. 지금 똑똑한 기계들이 군사 분야에서 가장 활발하게 개발된다는 사정은 이런 추론을 떠받친다.


로봇은 모습도 점점 사람을 닮아갈 것이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로봇의 모습이 사람에 가까울수록 친근하게 느끼고 신뢰를 갖는다. 행태 면에서도 로봇은 사람을 점점 닮아갈 것이다. 따라서 애시모프의 ‘로봇공학의 법칙들’은 그저 문학적 관행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로봇의 진화를 인도하는 원리로 작용할 수 있다. 만일 로봇의 진화가 실제로 그런 과정을 따른다면 궁극적으로 인류에게 적대적이거나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 충실한 협력자인 로봇이 나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류와 로봇이 함께 살면서 공진화(coevolution)할 가능성이 높다. 로봇의 능력이 향상되면서 로봇이 점점 많은 일들을 맡게 될 것이다. 특히 외계의 탐험에선 로봇의 능력이 워낙 뛰어나서 인류의 역할은 부차적이 될 터이다. 현재 상상할 수 있는 기술로는 인류가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기 어렵다. 로봇들은 그런 이주가 가능하며, 다른 별들에서 유전적 정보를 바탕으로 인류를 재생할 수 있을 것이다. 외계의 탐험은 인류에게 열린 ‘마지막 변경(final frontier)’이므로 길게 보면 인류의 생존과 확산은 인류와 로봇의 성공적 공진화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복거일 (소설가/시사평론가, eunjo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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