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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성장 정책의 성패, 시장친화적 정책활용 여하에 달려


지구환경위험의 정도를 알리는 일본 아사히글라스재단의 환경시계1)가 9시 26분을 가리키고 있다. 2008년 9시 33분보다는 다소 환경위험이 완화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최근 빈발하는 가뭄ㆍ홍수ㆍ폭염 등 기상재해 피해, 생태계 파괴 현상 등은 지구온난화 문제가 환경위기 뿐 아니라 경제에 대한 위협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이제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등 환경보호의 필요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국가나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오히려 각국은 환경위기를 새로운 경제성장의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 적극적인 대응책과 선제적 정책방안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세계적 추세에 맞추어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률’의 입법을 추진하고 있으며, “녹색성장 국가전략 및 5개년계획“을 수립하는 한편, 8월초에는 “국가온실가스 중기(2020) 감축 목표 설정추진 계획”에 대한 각계 의견을 수렴 중에 있으며 연말이면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대내외에 천명될 예정이다. 특히 지난해부터 기초통계를 토대로 3가지 시나리오를 마련하여 2020년까지 중기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제시하고 이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산업계를 비롯한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모습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국가차원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하고 대내외에 공표하는 것은 지구환경보호에 기여함은 물론 국가의 위상제고와 녹색산업 성장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국가 감축목표 수준이나 발표 시기, 감축방법(주체, 우선순위 등)을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향후 기후변화 협상은 물론 우리나라 산업경쟁력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으며, 형평성 문제로 국가간ㆍ산업간ㆍ기업간ㆍ경제주체간의 갈등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물론 이런 점 때문에 정부가 각계의견을 충분히 지속적으로 수렴하려고 노력하고 있기는 하지만 태생적으로 온실가스 감축문제는 감축의무 부과에 따른 부담주체 간 형평성 문제로 공감대 형성 자체가 매우 어렵다는데 문제가 있다. 유럽의 총량배출권거래제도(Cap & Trade)가 아직까지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본질적으로 형평성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가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우선 산업 또는 기업마다 감축목표량이 설정되어야 한다. 배출권을 할당할 때 산업이나 기업간에 형평성과 효율성이라는 아주 미묘한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형평성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모든 기업에게 각자 배출량에 비례하여 온실가스를 줄이도록 해야 하겠지만, 각 산업이나 기업마다 톤당 온실가스 저감비용이 매우 상이하고 배출량 관련 통계DB도 극소수의 기업만 파악되고 있다. 예컨대 철강이나 석유화학 산업과 같이 온실가스 저감비용이 상대적으로 높은 산업이 있는 반면에 저감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산업이 있다. 각 산업의 저감비용이 상이한데 모든 산업이 동일한 수준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하도록 하는 것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효율적이지도 못하다. 각 산업 또는 기업에 어떻게 배출량을 할당하느냐에 대한 산업간ㆍ기업간에 합의를 도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고 많은 시일을 요한다. 이외에도 총량규제는 다양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일례로 원단위 효율이 좋은 A기업과 이에 비해 효율이 떨어지는 같은 업종의 B기업이 있다고 가정할 경우, 정부는 물론 원단위 등을 고려하여 각 기업에게 배출량을 할당하겠지만 만일 A기업이 높은 에너지 효율로 원가를 절감하여 생산한 제품이 소비자의 인기를 얻어 판매량이 증가하게 되면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하게 될 것이다. 반면에 에너지 효율이 낮은 제품을 생산하는 B기업의 경우는 시장에서 외면당해 생산량 감소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 경우 높은 에너지효율을 달성한 A기업은 오히려 배출권을 더 많이 구입해야 되고, B기업은 남아도는 배출권을 다른 기업에게 팔아 이익을 챙기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이와 같이 일반적으로 시장친화적인 제도로 알려져 있는 배출권 거래제도는 총량 규제를 전제로 하고 있어 형평성 문제 등을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녹색성장과 관련한 온실가스 감축이나 환경보호 문제는 획일적인 규제나 의무부과로 접근하기보다는 형평성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문제해결을 보다 용이하게 할 수 있는 시장의 힘과 원리에 맡겨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동안의 정책결정과정에 비추어 볼 때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어려운 온실가스 감축 주체 결정 등과 같은 정책 결정이나 제도 선택은 행정 편의적이고 피해자의 수가 가장 적다고 판단되는 극소수의 대기업이나 산업에만 부담을 떠안기는 방식으로 정책이 결정되기 십상이다. 이럴 경우 산업간 및 기업간 갈등 심화는 물론 제조업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의 산업경쟁력을 크게 떨어뜨리고 산업공동화를 심화시키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부는 어렵더라도 모든 경제주체가 동참할 수 있고, 가장 비용효과적인 부문과 주체부터 고통을 분담해 나아갈 수 있도록 공감대 형성에 힘써야 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CO2 배출량이 세계10위 국가이어서 정부차원에서는 향후 의무 감축대상국이 될 것에 대비해 유럽에서 실시하고 있는 “총량규제 및 탄소배출권거래제도(Cap&Trade)”의 도입근거를 녹색성장기본법안에 담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 비용을 줄이는 방법으로는 배출총량규제 이외에 탄소세, 연료세, 기술규제,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위한 투자지원 등 여러 가지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어떤 제도가 보다 비용효과적(cost-effective)인 온실가스 감축수단 인지에 대해서는 깊이 있는 분석이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적어도 배출권거래제가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기에는 아직 여러 가지 여건상 시기상조라 생각된다.

‘탄소배출권거래제도’는 온실가스 의무감축 국가 중에서도 EU 회원국과 노르웨이만 시행하고 있는 제도이며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들도 아직 시행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와 산업구조가 유사한 일본의 경우 온실가스 감축의무 대상국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및 중국 등 주변국이 실시하지 않아 자국산업의 경쟁력이 저하될 것을 우려하여 제도 도입을 꺼리고 있다.

또한 일본만 우선적으로 실시할 경우 국가 핵심 산업인 제조업이 온실가스 저감 기술이 없는 개도국으로의 이전이 촉진되어 지구 전체적으로 온실가스는 오히려 증가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온실가스 감축의무가 부과될 경우 온실가스 감축 비용이 높은 산업이나 기업들은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없는 개도국 등으로의 공장 이전을 서둘러 온실가스 이전 현상(Carbon Leakage)을 촉발할 수 있다.

더욱이 국내기업들은 공정개선이나 에너지 절약 등을 통해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많은 노력(early action)을 기울여 왔다. 국내 대기업의 에너지 원단위는 일본에 이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고 있다. 포스코로 대표되는 철강산업의 경우는 파이넥스 공법 채택 등 친환경혁신을 통해 세계 최고수준의 에너지 효율을 달성하였다. 이 같은 산업에 총량 규제를 부과하게 되면 치열한 국제 경쟁에서 국내 철강기업들은 높은 한계비용 부담으로 살아남기 힘들게 된다.

에너지 효율이 높거나 추가 감축해야할 온실가스배출량이 증가할수록 한계저감비용은 상승하게 된다. 또한 신기술 도입이나 청정연료로의 대체가 얼마나 용이한지에 따라서도 한계비용은 다르게 된다. 석유화학이나 철강산업은 산업 특성상 석유제품과 석탄을 필수적으로 많이 사용해야 하는 산업으로 다른 산업에 비해 연료간 대체가 매우 어려운 산업이다. 따라서 철강이나 석유화학 산업이 온실가스를 의무적으로 감축해야 한다면 대부분 생산을 줄일 수밖에 없어 다른 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담이 매우 커지게 된다.

세계적으로 “총량규제와 탄소배출권거래제”의 문제점과 그 해결을 위한 논의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 다만 배출권 거래제를 이미 시행하고 있는 유럽의 입장이나 기후변화협약의 근본취지를 흔들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배출권 총량규제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겠지만 다양한 측면에서 개선방안이 모색될 것이다.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 및 녹색성장정책은 기본적으로 시의적절하며, 바람직한 정책대안이다. 그러나 동 정책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해서는 시장친화적인 정책 수립, 집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총량규제와 탄소배출권거래제도만 하더라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으며 고려할 요소도 많다.

특히 타이밍측면에서 경쟁국가인 일본이나 중국의 배출권 총량규제제도 도입시기와 미국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며 시의적절한 대응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사전에 배출량을 할당하는 총량규제보다는 부문별로 원단위 효율을 사후적으로 평가하여 잘하는 기업에게는 인센티브를 주고, 못하는 기업에게 시장이 패널티(Penalty)를 부과하는 체제의 확립이 바람직하다. 결국 2020년이나 205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면서 경제성장을 지속적으로 이룩하기 위해서는 모든 경제주체들이 시장의 원리에 따라 행동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부정책은 개별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이나 규제보다는 인프라 구축과 공동 R&D에 대해 우선적으로 정책지원하고, 소비자 교육 강화, 친환경상품 공공구매 촉진과 최종소비자가 부담하는 오염자 부담원칙의 확립과 불필요한 중복규제의 정비 등 시장친화적인 환경조성에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이병욱 (한국경제연구원 경제교육본부장, lbw@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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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환경위기 시계의 시간별 위험 정도는 6시부터 9시까지가 「상당히 불안」한 것이며, 9시부터 12시까지는

「매우 불안」한 것으로 분류되고, 12시는 지구환경 파멸의 시각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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