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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 떼(Wolf-pack)’의 공격과 상법개정


늑대가 무리를 지어 사람을 공격하는 장면은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처음에는 한 마리인줄 알고 한 번 싸워볼만 하다고 생각했다가 어둠속에서 번쩍이는 수십 또는 수백 마리의 늑대들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자포자기해 버린다. 최후의 순간을 그저 담담하게 맞이할 뿐이다. 최근 정치권에서 논쟁이 되고 있는 상법개정이 우리나라 기업들을 이런 상황에 처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진짜 늑대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헤지펀드들이 무리를 지어 기업을 공격하는‘울프팩(wolf pack)’전술을 얘기하려는 것이다.


헤지펀드의 새로운 공격전술


헤지펀드들은 최소지분만을 확보하고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기업경영에 관여하며 회사의 주요 자산이나 사업을 매각하도록 해 주가를 상승시켜 단기차익을 취득하는 전략을 주로 사용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언론매체나 반기업정서 등을 적절히 활용하며 여론전을 펼치기도 한다. 여럿이 함께 행동하며 서로 자신들의 정보와 금융자원을 공유함으로써 회사 지배권 확보비용을 상당히 낮추기도 한다. 온갖 화려한 최첨단 금융기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 법적 규제의 외곽에서 기업을 공격하는 것이 이들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다. 대표적으로 공시의무를 회피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많은 나라들에서는 특정 회사의 일정지분을 취득하면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영국이나 독일은 3%, 미국과 우리나라는 5% 이상이다. 그 이유는 기존 대주주들이 외부의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에 대응할 시간적 여유와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만일 이러한 공시의무가 없다면 누군가가 음성적으로 다양한 방법을 통해 상당수의 주식을 매입해도 기존 대주주는 이러한 사실을 알 길이 없다. 대량의 주식변동 상황을 대주주나 일반 투자자들이 전혀 모르고 있다가 불측의 공격을 받거나 투자에 심각한 손해를 입을 수 있다. 따라서 일정 지분 이상을 누군가가 소유했을 때 공시를 하도록 해 대주주에게 대응의 기회를 주고 자본시장 투명성을 높여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이다. 자본시장에서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만들어 주기 위함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여러 헤지펀드들이 5%이하 지분을 보유하며 공시의무를 회피하고 있다가 별안간 함께 타깃 회사를 공격하는 ‘울프팩(wolf pack)’전술로 인해 이러한 게임의 규칙이 손쉽게 무너지고 있다. 물론 여러 헤지펀드들이 서로 협력해 하나의 그룹(group)으로 행동할 경우 그룹 전체가 5%이상 지분을 보유하게 되면 공시를 해야 한다고 법에는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법적 규제는 ‘늑대 떼’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룹(group)에 해당하기 직전의 느슨한 연계를 형성해 법적 규제를 쉽게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공격에 가담한 헤지펀드들의 전체 보유지분이 5%를 훨씬 넘었음에도 공시를 하지 않고 있다가 별안간 지분을 규합해 공격해 오면 기업들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


예를 들어 미국의 가장 큰 대형서점 체인인 ‘반스앤노블(Barnes and Noble)’을 처음 공격한 헤지펀드는 반스앤노블 주식을 18.7%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공시하지 않고 숨어있는 다른 동조 헤지펀드들이 보유한 지분을 합하면 36.14%를 공격 측에서 보유하고 있었다. 13.87%만 더 확보하면 기존 경영진들을 완전히 몰아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울프팩 전략은 최근 몇 년 사이 미국에서 급증하고 있다.


특히 최근 옵션, 선물, 스왑 등 다양한 금융계약과 금융기법이 발달함에 따라 헤지펀드들은 이를 이용해 더욱 강력한 공격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최첨단 금융기법을 활용해 주식에 비례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경제적 권리’과 ‘의결권’을 자유자재로 분리하며 의결권 보유기준에 따라 부과된 공시의무를 회피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5% 이상의 주식에 대한 경제적 권리를 실제 보유하고 있으면서 주식스왑계약을 통해 의결권이 없는 상태로 만들어 공시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스왑계약을 해지하고 주식을 실제로 취득한 후 공시의무를 이행하는 경우가 많다.


‘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한 엘리엇은 삼성물산 주식을 매집하는 과정에서 5% 공시의무를 회피해 볼 요량으로 총수익스왑(TRS)이라는 파생금융상품을 활용한 바 있다. 실제로는 5%이상의 주식을 취득했기 때문에 공시를 했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 금융당국에 의해 검찰에 고발된 상태다.


이렇게 다양한 금융기법을 통해 주식에 포함된 경제적 권리와 의결권을 분리해 공시의무를 피해갈 뿐 아니라 의결권이 회사의 경제적 이익과 음(-)의 관계가 되도록 설정하기도 한다. 이 경우 주식 소유자는 회사 주가가 떨어져야 경제적 이득을 얻게 되므로 의결권은 회사 이익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행사된다.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다른 일반주주나 회사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것이다.


헤지펀드 공격의 효과


울프팩 전략과 최첨단 금융기법의 발달로 기존 경영진과 헤지펀드간 힘의 균형은 헤지펀드 쪽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헤지펀드 행동주의가 급증하면서 미국에서는 이것이 근로자들과 경제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헤지펀드의 공격을 받은 기업들의 고용률이 급감하자 헤지펀드의 공격으로 인한 단기주가 상승은 진정한 기업가치의 상승이 아니라 근로자들의 희생에 기초한 부의 이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란은 특히 미국경제에서 오랫동안 혁신을 주도해 온 듀폰(Dupont)이 최근 울프팩 공격을 받은 후 표면화 되고 있다. 듀폰은 공격을 받은 후 비용절감을 통해 단기주가를 상승시켜 주주이익을 증대시킨다는 이유로 R&D 투자를 급격히 줄이고 기술연구소를 폐쇄하여 수 천명의 일자리를 없애버렸다. 최근 미국의 연구개발 분야에 대한 투자가 계속 줄고 있는 데 그 원인을 지나치게 단기주가 상승에만 몰두하는 헤지펀드의 행동주의에서 찾는 견해도 있다.


이렇게 예전에는 없었던 헤지펀드라는 새로운 형태의 기관투자자의 등장과 이들의 울프팩 전략의 확산, 최첨단 금융기법의 발달 등 자본시장의 상황은 예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따라서 많은 나라들에서 이러한 자본시장의 변화 이전 상황을 전제로 만들어진 소수주주 보호 중심의 기존 회사지배구조 법제를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자본시장 변화 고려한 상법개정 재검토 필요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지배주주 권한을 제한하고 소수주주 권한을 강화하는 상법개정논의가 한창이다. 우리나라에만 존재하거나 다른 나라들에서는 개별 회사의 자율적 선택에 맡긴 것을 강제하는 내용들이다.


개정안의 목적에 반대할 생각은 전혀 없다. 문제는 방법이다. 아마도 1970년대 자본시장 상황이었다면 상법개정안의 제도들이 어느 정도 기능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자본시장 상황은 그때와 완전히 바뀌었다. 그리고 그 변화 속도도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된 자본시장 환경 하에서 소수주주 권한을 강화해 기업가치를 제고한다는 상법개정안의 좋은 취지는 달성되기 쉽지 않다. 오히려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제도가 단기이익만을 쫓아 자유롭게 이동하고 있는 투기적 헤지펀드들에게 국내기업 경영권 개입의 물꼬만 터줄 위험이 있다. 헤지펀드의 공격이 항상 우리경제에 부정적 영향만 끼친다고 말하려는게 아니다. 경영권방어제도도 함께 마련해 공격과 방어의 균형을 맞춰주고 있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외국 투기자본에 의해 악용될 수 있는 ‘창’만 날카롭게 하고 있지 이들로부터 국내기업의 장기적 성장동력을 지켜낼 ‘방패’마련에는 무관심한 현재의 기업정책 방향이 바람직한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는 것뿐이다.


4차 산업혁명의 주도권을 선점해 새로운 미래 먹거리 산업과 청년 일자리 산업을 만들어내야만 하는 우리의 경제현실에서 기업들의 장기적 투자는 절실하다. 급변하는 자본시장 변화를 고려한 상법개정안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신석훈(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 / sshun@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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