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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애호박 할머니를 위해 얼마를 내겠습니까?


늦은 밤 가로등 불빛 아래 한 할머니가 애호박을 팔고 있다. 옆 채소가게는 성업인데, 할머니가 애호박을 다 팔기는 어려워 보인다. 보통 사람에게는 약자를 애처로워하는 마음이 있다. 고생하시는 할머니가 애처로워 남은 애호박 다 사갔다는 이야기가 미담으로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규제를 만들면 고민거리가 생긴다. 가령, 가로등 반경 1Km 안에서 채소가게가 영업하지 못하게 한다고 하자. 경쟁 가게가 멀어져 할머니는 예전보다 애호박을 더 많이 팔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채소가게를 가야 하는 소비자는 멀어진 채소가게를 가기 위해 더 발품을 팔아야 한다.


할머니 좌판 주위에 채소가게를 제한하는 것은 지금의 유통규제에 해당된다. 대형마트 때문에 매출이 감소할 수 있는 영세상점을 위해 대형마트의 진입과 영업시간을 제한한다. 대형마트와 영세상점간의 관계를 채소가게와 할머니로 단순화하는 것이 무리가 있겠다. 그러나 경쟁의 강자와 약자는 상대적인 것이다. 채소가게 사장님은 대형마트에게는 약자가 되지만, 할머니 좌판에 대해서는 경쟁 우위가 있다. 복잡한 문제다. 다만 이 단순한 이야기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바는 소비자들이 부담하는 규제 비용이다.


규제로 영세 상점은 보호받겠지만 발품을 팔아야 할 소비자의 거래 비용은 증가한다. 그러나 규제에 따른 소비자 불편은 화폐가치로 계산되지 않으므로 간과되기 쉽다. 소비자 불편을 화폐가치로 계산해 볼 수 없을까?


규제 당국자가 가로등 주변 가구를 돌아다니면서 질문한다. “채소가게를 가로등 근처에서 운영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채소가게를 가기 위해 멀리 돌아가실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 할머니 생활이 어려워지실 수 있으니, 영세상인보호분담비로 매달 일정 금액을 납부해 주세요. 모아진 기금으로 매달 할머니 매출을 보전해 드리겠습니다. 멀리 돌아갈 불편을 덜었으니, 대신 얼마를 낼 수 있겠습니까?” 누구는 천원을, 또 어떤 이는 만원을 낸다고 한다. 규제 당국자는 사람들이 대답한 금액을 꼼꼼히 적어두었다가 매달 각 가구에서 약속한 금액을 걷어 할머니에게 전달한다. 채소가게 사장님은 소비자 근처에서 영업할 수 있고, 할머니는 감소한 매출을 보전 받는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멀리 발품을 팔 필요가 없다. 해피엔딩이다.


진입•영업 규제 대신 ‘지불용의 만큼의’ 정액 세금으로 영세상점을 보호하는 것이 가능한가? 해피엔딩은 동화 속 이야기다. 불편이 화폐가치로 인식되면 조세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현실에서는 영세상인보호분담비를 얼마 낼 수 있는지 물어보는 규제 당국자에게 “왜 내가 그 세금을 내야 하는가” 반문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뿐만 아니라 보호해야 할 영세상인의 수가 늘어날수록 조세에 저항하는 사람도 늘어나게 될 것이다.


유통규제를 이야기하는데 감성을 자극할만한 `가로등 불빛 아래 할머니’가 등장할 필요가 없다. 실제 정부 정책을 설계할 때는 감성을 배제하고 정책 효과에 대한 객관적 검토를 근본으로 한다. 당국자에게는 규제로 인한 사회적 편익과 비용에 대한 사실판단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대형마트 진입으로 증가하는 고용 효과를 계산하고, 퇴출하는 영세상점 효과를 따져 본다. 신상권 개발로 발생하는 매출 증가와 구상권 매출변화가 고려된다. 교통영향평가, 주차장 부지 확보, 쓰레기 처리, 증가하는 지방세수는 말할 것도 없고 소비자 편익도 계산에 넣어야 한다.


경쟁자의 등장에 소수의 상인들은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반면 소비자는 규제에 따른 불편을 화폐가치로 인지하지 못하거나, 여럿이 뜻을 모아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렵다. 그래서 유통정책을 설계할 때 침묵하는 소비자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애호박 파는 할머니가 애처로운 마음도 귀하고, 주말에 어린아이 손을 잡고 쇼핑센터를 가고 싶은 마음도 귀하다. 이제는 한번 물어볼 때이다.

“당신은 애호박 할머니를 위해 얼마를 내겠습니까?”

이기환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 부연구위원 / gihwan.yi@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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