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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적 행동과 생존을 위한 거래효율: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해석


모든 경제조직은 거래비용을 절약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2009년도 노벨경제학상 공동 수상자인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교 경영대학의 올리버 윌리엄슨(Oliver Williamson) 교수는 1975년『Market and Hierarchies: Analysis and Antitrust Implication』에서 ‘신제도주의 경제학’이란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10년 후 자본주의 사회에 존재하는 경제제도의 탄생 배경을 설명한 『The Economic Institution of Capitalism: Firms, Markets, and Relational Contracting』(1985)에서 “경제조직은 거래비용을 절약하는 방향으로 지배구조를 설계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에 따라 가격차별, 거래거절, 할인, 염매, 특약, 재판매가격 유지, 끼워 팔기 등의 현상을 기존의 주류경제학의 주장처럼 독점적 행위로 바라보지 않고, 대신 기업이 생존과 효율을 위해 거래비용을 절약하려고 태어난 소중한 관행(제도)이라고 주장하였다. 무지한 경제주체가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하는 상대방과 고유한 거래에 들어서게 되면 자신의 생존을 위해 각종 안전판(safeguards)을 마련하게 되므로 그렇게 하여 태어난 안전판 있는 지배구조에 대해 경쟁을 제한하는 행동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가 주장하는 골자이다.


합리성이 제한된 경제주체는 적응하는 행동을 따른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에 따르면 완전경쟁시장이건 독과점시장이건 기업들은 한계수입이 한계비용과 일치하는 수준에서 행동한다. 그에 따라 기업의 수입과 비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현실에서는 마치 주가가 매순간 변하듯 시장가격과 기업 및 산업의 생산량도 시시각각으로 변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실제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영향을 미치는 매개변수들이 변하였다는 정보를 수집하는 데에 한계가 있고 또 자신의 한계수입과 한계비용이 얼마가 되는지를 알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합리성이 제한되어 있는, 달리 말해 무지한 개인들은 자신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에 도달하려고 절차적 지식(procedural knowledge), 예컨대 휴리스틱스(heuristics), 만족화 원칙(satisfying rule), 룰 오브 썸(rule of thumb), 시행착오(trial and error), 루틴(routines), 편찬된 지식(codified knowledge), 상황/행동 패턴, 관습 등을 좇아간다.


기업의 행동은 이윤극대화가 아닌 절차적 지식을 좇아 환경에 서서히 적응하므로 가격은 그다지 변동하지 않는다. 가령 1890~1920년 사이의 30년 동안 산업별 가격변동이 일어난 평균 기간을 살펴보니 철 17.9개월, 비활성금속 7.5개월, 원유 8.3개월, 고무타이어 11.5개월, 종이 11.8개월, 화학제품 19.2개월, 시멘트 17.2개월, 유리 13.3개월, 트럭 8.3개월, 가계도구 5.9개월이었다고 한다.1) 즉 6개월 내지 2년 동안 가격이 변경되지 않았다. 또 2만5천 개의 기업을 대상으로 “1년에 몇 번 가격을 변화시켰는가?”를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0% 이상이 “가격을 1년에 한 번 정도밖에 변경시키지 않았다”고 한다.2) 이러한 연구에 의하면 실제 시장에서 기업은 신고전학파의 완전한 합리성에 따라 한계원리를 좇아 가격이나 생산량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적응된 합리성에 따라 경쟁기업들의 행동을 이모저모 살펴가며 가격과 생산량을 결정한다. 국내 신용카드사가 가맹점 수수료율이나 연체이자율을 담합하였다거나, 아파트 분양업자들이 아파트 분양지구(용인ㆍ동백ㆍ죽전 등) 내에서 분양가를 담합하였다거나, 국가나 지방정부가 발주하는 공사에 건설사업자들이 미리 수주 예정업체를 정해 놓고 입찰에 참여하였다거나, 철근 제조사업자들이나 자동차 제조사업자들이 철근과 자동차 가격을 담합하였다는 추정을 받아「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죄로 과징금을 물기도 하였다. 가격결정에 자신이 없는 무지한 사업자들이 절차적 지식을 좇아 경쟁사들과 불필요하게 가격을 협의한 증거가 포착되는 바람에 오히려 담합의 추정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혐의를 받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진다.


기회주의적인 성향의 거래자로부터 보호받으려고 안전판을 마련한다


또 사업자가 대리점 내지 전속계약을 체결하고 나서 계약조건을 위반한 대리점에 물품공급을 거절하거나 구속조건부 거래를 강요하거나 거래상의 지위를 남용하거나 재판매가격을 유지한다고 하여 불공정거래행위로 시정명령을 받거나 과징금을 부과받기도 한다. 독점을 구축하려는 사업자의 목적에 방해가 되는 대리점을 배제하려는 목적이 아닌 단순한 사업자끼리의 자유로운 계약에까지 공정거래법이 간섭하는 것은 계약자유의 원칙을 심히 침해하는 심결이라고 볼 수 있다.


시장은 약속을 지키는 선한 이기적인 사람들로만 붐비는 곳이 아니고 약속이라는 개념이 전혀 없는 기회주의자들이 설쳐대는 곳이다. 대리점계약이나 가맹사업계약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기회주의적인 거래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그래서 윌리엄슨은 고유성이 있는 거래로 인해 발생할지도 모르는 속수무책(hold-up)에 빠지지 않도록 거래자들은, 마치 하나의 기업이 행동하는 것처럼 영업활동을 수직으로 제한하기에 이른다고 한다. IMF 이후 국내에서 프랜차이즈(가맹사업)가 번성하고 있는데 미국 소매업의 절반 이상이 프랜차이즈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듯이 국내에서도 가맹사업은 앞으로 확대될 여지가 높다.「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의해 가맹본부와 가맹사업자 사이에 일어나는 거래관행의 상당부분이「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의 불공정거래행위에서 제외되었다는 사실은 과거 수직적 연결망 속에 놓였던 거래자들이 거래비용을 절약하려고 구축한 경제 관행을 불공정거래행위로 심결했었던 사실과는 아주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 영세 상인을 보호한다거나 소비자후생을 증진한다거나 효율성을 추구한다는 구실을 내세워 거래자들 사이에 구축된 안전판을 뭉개버리는 그동안의 심결은 포퓰리즘적인 시각에서 나온 편견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불공정거래행위를 색다르게 해석하는 200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이야기를 한 번 경청해 볼 필요가 있는 듯하다.


유동운 (부경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dwyu@p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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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ennis W. Carlton, “The Rigidity of Prices”, American Economic Review, 1989.

2) A. S. Blinder, “Why are prices sticky? Preliminary results from an interview study”, American Economic

Review,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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