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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의 생명력과 시장경제학자들의 과제(Ⅰ)


한반도 북단에 도발적인 공산주의 독재국가가 건재하고 있는 우리 상황과는 달리 유럽 대륙에서는 공산주의체제 국가들이 이미 20여 년 전에 혼란스러운 해체 및 구조조정 과정을 겪으며 변신했다.

대부분의 체제 전환국들은 시장경제 중심의 경제제도를 받아들여 서유럽 이웃 국가들에 비해 크게 낮은 생활수준을 높이기에 여념이 없다. 체코가 대표적이다. 수도 프라하 시내 중심지에 ‘공산주의박물관’이 있다. 관광명소는 아니지만 지난 20세기 역사에 호기심 많은 방문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각종 전시물을 보고 나면 체코 사람들이 얼마나 공산주의체제에서 시달렸던가를 알 수 있다. 민주적 체제를 열망했던 60년대의 체코슬로바키아를 반세기 넘게 공산주의 국가들의 맹주로 군림하며 탱크를 앞세워 짓밟았던 소련을 얼마나 싫어했는가를 느낄 수 있다. 시내의 유서 깊은 수백 년 된 건물들 사이 드문드문 보이는 공산정권 시절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입각하여 지어진 볼품없는 콘크리트 건물들을 보면서 아마도 공산주의 체제가 문화적으로도 이질적이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공산국가의 몰락이 마르크스주의의 종말인줄 알았는데…

감상적 민족주의로 덧칠되어 더더욱 혼란스럽고 기원이나 족보가 불분명한 좌우 이념논쟁이 난무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이와 달리 유럽에서는 좌파 원조인 마르크스주의(Marxism)가 발생하여 뿌리를 내려 번성하다가 이제는 생명력을 다했다. 이러한 유럽에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학문적 평가를 찾아 볼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를 ‘우리 세대의 가장 그럴듯한 환상’이라고 지적한 옥스퍼드대의 콜라코프스키(Kolakowski) 교수를 위시한 많은 지식인들이 엄정하게 좌파사상을 비판하면서 궁극적으로 그 이념을 핵으로 만들어진 정체들이 해체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1) 기원을 보면 19세기 유럽에서 역동적인 동시에 무질서한 신흥 산업사회가 확산이 되는 것을 배경으로 독일 사상가 마르크스(Karl Marx)가 원조가 되어 주창했고 많은 동시대 및 후대 지식인들이 참여하여 짧은 기간에 마르크스주의라는 매우 영향력이 큰 이론체계를 구축하였다. 마르크스주의가 제시하는 이상향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경제ㆍ정치ㆍ사회활동을 어떻게 조직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 제시된 이론체계로서 공산주의가 등장했다. 이런 이론체계와 제시하는 이상향이 얼마나 호소력이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증거는 많다.

탄생한 지 몇 십 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론적 가능성이 1910년대 후반 대규모 폭력적 변혁을 통해 러시아에서 현실화되었고, 그 이후 많은 나라들로 확산된 역사적 사실 자체가 충분히 보여준다 하겠다.2) 하지만 마르크스주의가 확실히 뿌리를 내린 것처럼 보인 지 백년이 지나지 않아 북한이나 쿠바와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한다면 이 이념을 추종하는 국가들은 거의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필자를 포함한 많은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근거로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하는 좌파는 1980년대 공산권의 몰락으로 끝났고,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세력이 절대적 승자로 등극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사가 그리 단순하지 않은 것 같다. 최근 필자는 왜 마르크스주의와 좌파사조가 생명을 다했다는 판단이 성급한 것이며, 향후 부활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설득력 있는 미국 뉴욕(New York)대의 토니 주트(Tony Judt) 교수의 논의를 접했기에 이를 소개하고, 이런 가능성이 주는 시사점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3)

환상적 종합선물 세트; 마르크스주의의 치명적 매력

대표적 좌파사상 비평가인 콜라코프스키 교수는 큰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주의를 가볍게 보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한다. 그의 평가에 따르면 마르크스주의 결정적 설득력의 원천은 계급투쟁 관점을 통한 역사 설명(물론 이는 인류 역사상 있었던 일임에도 불구하고)도 아니며, 자본주의 사회 몰락과 무산계급이 지배하는 사회주의 체제로의 귀결이 불가피하다는 예언(적어도 최근 역사 속에 허위로 드러난)도 아니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가 매우 독창적인 프로메테우스 신화에 걸맞은 낭만적 허상과 독선적인 역사적 결정주의의 섞은 결정체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4) 즉 자본주의와 사회계급투쟁에 대한 분석을 통해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하고, 나아가 더 나은 세상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처방을 제시한 후, 왜 역사적 필연성에 의해서 이런 세상이 올 수밖에 없는지 하는 정치적 예언은 그야말로 쉽게 거부하기 어려운 패키지 특선 종합선물세트라는 것이다.

주트 교수도 비슷한 맥락의 분석을 제시한다. 마르크스주의가 향후 부활할 가능성에 대한 평가는 왜 그 이념이 과거에 그렇게 많은 뛰어난 지식인들을 매료시켰을까 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첫째, 마르크스주의는 매우 방대한 분야를 포괄적으로 설명하고 거대한 역사적 지향점을 제시하는 큰 이론 체계이다. 따라서 여러 분야에 할 일이 많고 지식인들에 대한 수요가 절대적이다. 당연히 큰 그림 만들기에 참여하는 지식인들의 역할은 필수적이며 그만큼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다.

현대 한국의 예를 들어보자. 대선을 주기로 후보 주변에 대학교수 등 지식인 집단이 많이 모인다. 이런 행태는 부분적으로 새 정권과 인연을 맺어 이득을 보려는 동기가 설명할 것이다. 하지만 그 밖에도 ‘세상을 바꾸어 보자’라는 의지도 중요한 동기이다. 권력행사에 대한 법적 제약이 많은 민주주의체제에서 5년 임기의 지도자 한 명 바꾸는 것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회라고 지식인들을 흥분시킨다는 것인데, 이에 비해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해서 전혀 새로운 세상의 설계도면을 만드는 일은 지식인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구체화시키려면 전문가 집단에 대한 수요가 일회성 선거 공약집을 만드는 데 필요한 수요에 비교할 바가 아닐 것이다.

콜라코프스키 교수는 이러한 공산주의체제에서 새로운 세상의 설계도가 되는 아이디어들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어서 이를 인체의 ‘호흡기 체계’와 같다고 비유한다. 새로운 아이디어에 따라 공산주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은 예를 들어 기존 국가의 경제제도만 바꾸는 일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지식인의 역할은 권력자들에 조언자가 아니라 체제존속에 필수부가결한 아이디어 제공자가 되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에 깊이 관여하고 싶은 지식인들에게 이 이상 흥분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런 유혹은 시간이 지나도 또 새로운 세상을 설계해야 하기 때문에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회문제 개선, 약자에 대한 배려를 내세우는 마르크스주의

두 번째 이유는 오래 전부터 서구에서 막연하나마 낙관적이고 현실세계보다 더 밝고 이성적인 사회를 여망하는 진보 개혁적 사회주의 사조가 존재했는데, 마르크스주의는 이런 사회주의적 사조를 흡수했다.5) 특히 자본주의 이후에 등장할 이상적 사회가 무계급사회가 될 것이라는 예언은 진보개혁적 식자층의 주목을 받는다. 이런 연유로 마르크스주의의 이론ㆍ용어ㆍ사고방식 등은 그 이후 이와 특별히 관계가 없는 사회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의 공통된 틀로 자리잡게 된다. 그런데 공산권의 몰락으로 마르크스주의의 현실적 화신이 무너진 것과 상관없이 각종 사회문제는 계속 존재한다. 과거의 관행 때문에 소위 ‘좌파적’ 이슈로 분류되는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새롭고 비(非)마르크스주의적인 틀을 정립하는데 큰 혼란을 겪고 있다. 당연히 이런 진영에서는 공산진영의 몰락과 무관하게 과거 마르크스주의의 논리적 체계와 도구가 여전히 유용하고 매력적이어서 버릴 수 없는 이론체계로 남게 된다.

세 번째로는 원래의 마르크스주의가 처음 등장하는 단초를 제공한 사회적 문제(마르크스 동시대 지식인들이 ‘Social Questions’라고 칭했던 문제들), 극심한 빈곤층 등 사회적 약자의 문제에 대한 윤리적 메시지이다. 마르크스의 전기 작가 시겔(Seigel)에 따르면 “인류 모두의 운명이 우리들 중 가장 가난하고 기득권이 없는 사람들의 운명과 불가분하다”라는 심각한 도덕적 메시지가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큰 호소력이다.6) 이러한 이념체계가 그 동안 설득력을 잃은 것은 결국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체제와 자유주의적 전통(liberal tradition)이 마르크스주의 탄생 초기의 비참한 빈곤층 문제와 같은 초기 자본주의 경제의 취약점을 시정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1930년대 미국에서 발생한 대공황인데 초기의 엄청난 경제 위축 및 실업 발생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노력과 시장경제의 복원력에 힘입어 회복하면서 마르크스주의가 예언했던 만성적 대량실업자 양산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러한 기록이 근래에 세계화의 진전으로 국가 간의 빈곤층 부각, 선진국에서의 새로운 고용불안 확산, 빈부 격차의 확대추세 등의 문제 때문에 다시 도전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즉 그동안 많이 치유되었다고 여겨졌던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가 다시 부상하고 있어서 마치 마르크스와 그 동조자들의 이론이 처음 태동하였을 때와 비슷한 여건이 조성되면 자연히 마르크스주의가 부활하는 초석이 될 수 있다.

공산주의 국가의 몰락은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된다

마지막으로 소련의 붕괴가 오히려 마르크스주의가 재출발하는 좋은 전기가 된다. 즉 많은 20세기 초 서구의 지식인들이 앞서 설명한 마르크스주의의 매력에 끌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지지하였는데 결정적으로 이들의 망상을 깨뜨린 것이 공산주의 국가 소련의 현실이었다. 스탈린은 1930년대 말에 행했던 대학살(당시 300만 명 가까운 지식인, 전문가, 군 간부 등이 처단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 실제 소련의 피폐된 생활상 및 독재정권의 무자비한 탄압이 계속되었는데 소련 작가 솔제니친에 의해 이런 실상이 서구에도 널리 알려졌다. 소련은 자국 내에서의 독재탄압에 그치지 않고 1956년 헝가리,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등 동맹국들의 민주화 움직임을 유혈 무력침공으로 분쇄하는 만행을 벌였다. 이러한 공산주의 체제의 실상이 초기에 막연히 이상적 대상으로써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였던 많은 지식인들이 신랄한 비평가로 돌아서게 만드는 역할을 하였다. 공산주의 국가의 학살 취향은 과거 소련에 그치지 않는다. 인구가 700만 명에도 못 미치는 농경사회 캄보디아에서 크메르 루지 정권은 1975~1979년 사이에 최소 20만 명 이상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7)

그런데 구소련과 공산권 국가의 붕괴가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실패한 혁명의 사고현장을 정리하고 페인트 덧칠을 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동유럽 공산체제하에서 청소년기 정도를 보내서 당시 상황을 기억할 만한 사람들이 이제 30대 중반을 넘어섰다. 갈수록 체화된 공산주의 경험이 없는 인구의 비중이 점점 늘어날 것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 경험적 실험에서 철저하게 실패했던 마르크스주의라는 위험한 몽상의 치명적인 매력이 다시 끼를 발휘하여 새로운 추종자들을 규합하고, 경제ㆍ사회ㆍ정치제도가 어떻게 운영되는 것이 좋은가 하는 그럴듯한 대안으로 부활하게 만들 수 있다.8)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chan_huh@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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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국 Oxford대 교수였고 다양한 분야에 공헌이 컸던 Kolakowski는 올해 7월에 사망했다. 그는 1968년에 공

산주의 국가 폴란드에서 추방될 때까지 Warsaw 대학교수로 재직하며 각종 역사연구 등 다양한 활동을 벌였

다. 젊은 시절 폴란드 최고의 공산주의 이론가로 여겨졌으나, 1950년대 소련을 방문한 공산주의 맹주국가의

현실에 대한 환멸로 그 이후 공산당체제 비판적인 글을 쓰면서 결국 교수직을 박탈당하고 추방되기에 이른

다. 미국의 Chicago대, UC Berkeley 등에서 여러 해 강의했던 그는 1970년 대 후반에 발간한 Main Currents

of Marxism: Its rise, Growth, and Dissolution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의 일생과 학문적 기여를 잘 요약한 주

요 세계 언론의 추모기사는 다음과 같다.

2) 마르크스의 영향력에 대한 평가의 예는 국내 저명한 우파 경제학자인 좌승희의 글 ‘칼 마르크스의 세계관보

다 더 복잡한 세상’(GRI웹뉴스 2009. 7. 28)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3) 논의의 직접적 출처는 미국 학술원회원이며 뉴욕대의 토니 주트 유럽사 교수가 콜라코프스키의 저서 재발간

을 기념하기 위한 에세이이다. ‘Goobye to All That? Leszek Kolakowski and the Marxist Legacy` in

REAPPRAISALS by Tony Judt (Vintage Books, London, 2009).

4) “but because Marxism delivered a unique-and truly original-blend of Promethean Romantic illusion and

uncompromising historical determinism.”(p. 133, Judt). 마르크스의 역사적 결정주의, 혹은 역사적 숙명주

의(historicism, 혹은 historic determinism)에 대한 신랄한 비판은 Karl Popper의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5th ed.,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66)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역사적 사명’, ‘역사적 평가’, 혹은 ‘역사는 발전한다’ 등과 같은 개념도 역사적 결정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이는 초자연적인 역사적 인격이 존재하여 역사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상정하는 종교적 관점과 유사하

다. ‘역사적 평가’가 아니라 ‘후대의 평가’가 더 정확한 중립적 표현일 것이다.

5) 16세기 영국에서 Henry 8세와의 종교관련 문제로 참수형을 당한 토마스 모어(Thomas More)가 그린 이상

향, Utopia(이 이상향에서는 다른 종류의 종교가 용인됨)을 저술한 것을 상기해 보면 이런 조류가 유럽의 지

식인들 사이에서 마르크스주의보다 훨씬 먼저 도도히 흐르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정확하게는 고대 그

리스, 초기 기독교에서 ‘더 나은 사회’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6) Judt p.139-140. 이런 마르크스주의의 유인에 대항하는 한 방법은 전술한 좌승희 박사의 ‘잘 사는 이웃이 나

에게도 좋은 것이다’라는 인식을 확산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론적ㆍ경험적 측면에서 비추어보아 개인적으로

이 주장이 옳다고 본다. 그러나 이 명제가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아마 가장 중요한 것이 소득 계층 간의 원활한 이동성일 것이다. 즉 실제로 처지가 어려운 사람이 자기

의 노력에 의지하여 훨씬 높은 소득 계층으로 이동하는 ‘성공’의 예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할 정도로 빈번해야

만 대다수 사람들에게 이 명제가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7) 이 숫자는 보수적인 추정이며 당시 병사자, 아사자 수를 포함하면 피해규모가 140만~22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Wikipedia, Killing field). 콜라코프스키는 스탈린 시대의 만행이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공산주의 이상국

가를 건설하려는 시도의 필연적인 결과라고 했는데 이런 지적이 캄보디아의 학살에도 매우 적절하게 적용된

다 하겠다.

8) 이명박 정부 초기의 실정이 기여했다고는 하나, 몇 개월 전에 공정히 치러진 선거에서 패배했던 노무현 좌편

향 정부의 지지자들이 촛불정국 등을 통해 2008년 한국 사회의 어젠다를 결정했던 것을 보면 좌파성향 사람

들의 복원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런 일이 한국에 국한되리라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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