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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의 생명력과 시장경제학자들의 과제(Ⅱ)


개방적 사회를 유지하면서 마르크스주의를 극복하는 과제

이런 도전에 대응이 쉽지 않은 것은 개방적인 자유주의 체제 사회의 강점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개방적인 사회는 기본적으로 어떠한 주장도 사전적으로 검열하는 것에 부정적이다. 한국의 경우도 몇 십 년 전 금지되었던 사상서적을 이제 쉽게 서점에서 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아직도 사전적 검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시대적 흐름과 맞지 않는 것이다. 과거의 좌파 사상서적 금지는 오히려 마르크스주의의 허구성이 드러나는 것을 막고, 역설적으로 허점투성인 사상이 신비스러운 후광을 제공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오히려 더 철저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설득과 비판적 검증을 통해서 열린사회를 위협하는 사상이나 조류에 맞서야 한다.1) 물론 지금과 같이 감성적인 호소와 행동이 가장 효과적으로 많은 대중들을 설득시키는 것 같은 세태는 안타까운 현상이다.2) 아마도 논리적 토론을 강조하는 등 우리나라의 교육 시스템의 큰 변화와 같은 일들이 있어야 될 것이나 이 이슈는 본고의 논점과 거리가 있어 언급하지 않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한국의 지식인들 자신들이 지금보다는 더 부지런하게 깊이 있는 지적토론의 전통을 세우고 확산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자유주의 시장경제학자들의 딜레마

경제 부문에 초점을 맞추어 보자. 아마도 첫 번째 과제는 비판적 시각의 식자들이 제기하는 여러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시장경제 체제하에서 평균 시민의 생활수준이 크게 향상된 점을 알리는 것이다. 평균 생활수준의 개선을 당연시하여 이를 시장경제 체제의 중요한 성과라고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마도 좋은 성과를 알리는 첫 번째 과제에 비해 더 어려운 도전은 시장경제 체제의 근간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소득 격차의 심화, 균등한 기회의 축소, 사회적 및 소득계층간의 이동성 감소 등의 문제를 완화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이슈들이 실제로 악화되고 있는가를 객관적으로 검토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불균형이 악화되고 있다면 이것이 쉽지 않은 문제인 것은 시장경제중심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마르크스주의와 달리 총체적 시스템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계획경제인 마르크스주의 경제는 자원배분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세세한 계획을 만들고 시행하는 것에 매우 익숙하다. 물론 산출된 물건이 소비자들이 원하는 물건인지 여부는 별문제이지만. 그런데 확실한 것은 지금까지의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사후적인 결과는 사회구성원들이 계획적인 마르크스주의 보다 무계획한 시장경제 체제에서 훨씬 더 잘 산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전적으로 자세한 청사진을 요구하고, 특정한 사회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잘 짜인 행동계획(action plan)을 요구하는 정치인이나 집단의 입장에서 보면 계획경제가 시장경제보다 더 유능해 보일 것이다.

현대 거시경제학에서 상대적으로 좌파 쪽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케인즈학파마저도 경제 전체의 자원배분의 세부사항을 총괄하는 계획경제와는 거리가 멀다. 케인즈학파가 신고전학파와 다른 것은 특별한 거시경제적 문제에 대한 정부 역할의 적극성이다. 물론 시장경제주의 경제학자들도 전시나 심각한 경제위기 시기에는 전쟁수행을 위한 계획, 위기 확산 방지를 위한 정책조치 등 선도적 계획(pro-active planning) 등 예외적인 경우 전통적으로 시장을 우선하는 것과 거리가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학파 구분 없이 이런 역할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3)

따라서 근래에 제기되고 있는 세계화에 따른 문제가 광범위하게 실제로 진행되고 있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쉽지 않은 과제이다. 예를 들어보자. 토마스 프리드만(Thomas Friedman)의 The World is Flat(2005)에서 소개되었듯이 기술 발달과 세계화 진전으로 과거 안전한 비교역 분야로 여겨졌던 전문 의료서비스의 일부 분야에서 이제는 미국과 인도간에 교역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동안 높은 소득을 향유하던 미국의 의료전문 분야 종사자의 임금이 하향압력을 받을 것이고 아울러 고용불안도 나타날 것이다. 세계화에 따른 부정적 효과에 대한 여론이 점증하면서 미국 내에서도 자유무역에 대한 태도가 바뀌고 있다. 이런 상황이 남의 집 불구경이 아닌 것이 바로 현안인 한미 FTA 비준이 지연되는 것을 통해서 한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시장중심적 시각의 경제학자들이 상황을 개선하지 못한다면 향후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가 또 한 번 큰 폭의 ‘수정’ 과정을 겪어야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국가경제에 중요한 큰 결정은 정치시스템에서 이루어진다. 경제학자들의 의견에 상관없이 사안이 중요하고 정치 지도자들이 대다수 국민이 원하는 것이라 판단하면 경제활동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변화가 불가피하다.4) 작년에 본격적으로 세계경제를 덮쳤던 금융위기의 해일은 이미 진행 중이던 추세적 문제를 악화시킬지, 혹은 완화시킬지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만약 위기가 기존의 문제들을 악화시키는 식으로 영향을 미친다면 풀어야 할 숙제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 그야말로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안다고 목소리 높이는 경제학자들이 아는 만큼의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중요한 기로에 접근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동시에 고민해야 될 문제들이 상대적으로 기존 분석틀을 적용하기 쉬운 재정, 통화정책 이슈 같은 전통적 범주를 넘어서는 생소하고 덩치가 큰 아젠다들이 될 수 있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지난 세기에 철저하게 실패한 마르크스주의의 재등장도 떨쳐버릴 수 없는 괴담으로 남아 있다.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chan_huh@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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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것은 바로 칼 포퍼(Karl Popper)가 전술 저서에서 되풀이하여 강조하는 점이다. 왜 마르크스주의가 서구

식자층에게 인기가 있는가에 대한 냉소적 평가에서 콜라코프스키 교수는 단순한 형태의 마르크스주의는 역

사와 경제를 한꺼번에 다 설명하고 있어서 게으른 사람들이 두 가지를 공부하지 않고도 이를 이해한다고 느

낄 수 있기 때문이라 했다(Judt, p. 135). 물론 이런 경향은 서구의 식자층에 국한된 증세가 아닐 것이다.

2) 필자가 아는 한 좌파 논객은 매우 강한 어조의 사회비판적 글을 한 번씩 이메일로 보내는데, 글에 문학소녀

가 좋아함직한 배경음악을 첨부한다. 고전음악을 좋아하는 필자에게는 역효과인데, 요점은 좌파 지식인들이

감성에 호소하는 요령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더 일반적으로 ‘反자유세력들은, 기존 세력의 정서

를 바꾸려고 에너지를 낭비할 것이 아니라 최대한 이용하라는 Pareto의 권유를 잘 이행한다’하겠다(Popper,

ch. 13).

3) 최근 경제위기와 관련하여 경제학 전반 특히 거시경제학의 무능함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고 있는데 2009년 7

월 18일자 The Economist지가 ‘The other-worldly philosophers’라는 기사에서 이를 잘 요약했다. 이런 비

판에 대해 가장 대표적인 주류거시경제학자인 시카고대의 루카스(Lucas) 교수가 8월 6일 ‘In defense of the

dismal science’라는 반론의 글을 게재하였다. 인상적인 것은 루카스 교수의 답변이 협소한 신고전주의적

수리경제학자의 입장을 떠나 경제학 전반을 대변하는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4)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20여 년 전 클린턴 행정부에서 시도했다가 당시 관련 산업계와 정치권의 극심한 반대

로 초기에 무산 되었던 의료보험제도를 크게 바꾸는 일을 다시 추진하고 있는데 성공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결국 그 동안 미국의 높은 의료수가, 보험료 문제가 계속되면서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어 나타

난 결과이다. 그 동안 제조업을 포기하고 금융산업 경쟁력 강화에 성공하여 국제적 금융중심지로 확고히 자

리매김한 영국이 작년 금융위기 이후 전체 경제에서 금융산업의 비중이 지나치게 커졌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금융 산업 종사자 중에 특히 많은 고소득자에 대한 세율을 높이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상황이

변하면 한때 생각하기 어려운 큰 변화가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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