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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무역 분쟁의 원인과 해법


한·일 무역 분쟁이 날로 격화되고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교하게 계획된 일본의 공격에 날카로운 반격대신 분노의 목소리만 높다. 불매운동으로 일본을 무릎 꿇릴 수 있다는 듯이 국민감정을 자극하는 정치적 발언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말이라도 시원이 해 보자는 심정, 이해는 간다. 그런데 맛보기 1차 공격에 이렇게 속수무책인데, 2차 3차의 일본의 공격을 어떻게 견뎌낼지 눈앞이 캄캄하다.


일본은 우리의 주력업종과 대표기업들의 급소를 파악하는 작업을 완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버려온 과거 무역 분쟁들과 성격과 방법이 판이하게 다르지만 한·일 모두에게 손해가 되고 3자에게 반사이익을 주는 분쟁으로 끝날 게 분명하다. 전 세계를 보호무역주의로 몰아넣었던 스무트-홀리 관세법(1930)은 대공황으로 위기에 처한 미국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제정되면서 2만 여개 품목에 평균 56%의 관세가 부과되었다. 유럽, 캐나다 등이 보복관세로 맞서면서 전 세계가 보호무역주의 전쟁으로 빠져들었다. 미국의 수출은 61%나 감소하였고 대공황의 골은 깊어져만 갔다. 결국 후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미국과 프랑스·독일 치킨 전쟁(1960)과 미·일간 무역전쟁(1987)도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크다. 대량생산에 성공한 미국산 치킨이 싼 가격으로 유럽으로 흘러들어 오면서 유럽의 농장들이 위기에 직면하였다. 이에 프랑스와 독일이 미국산 사육조류에 관세를 부과하면서 무역전쟁이 시작되었다. 미국은 보복으로 프랑스산 경트럭과 폭스바겐 버스 등에 25%의 관세를 부과하였다. 무역전쟁은 일본산 경트럭이 인기를 끌면서 도요타, 이슈즈 등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기회가 되었다. 레이건 행정부 시절 벌어졌던 미국과 일본 간의 무역전쟁은 우리나라의 전기전자와 반도체 산업이 세계적인 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이 되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3억 달러 상당의 일본산 반도체, 컴퓨터, 컬러 TV 등 가전제품의 가격이 2배가 되도록 관세를 부과하였다. 일본은 맞대응 대신 자유무역주의를 수호하겠다며 스스로 수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러한 일본의 대응으로 대미 수출은 약 3% 감소하는데 그쳤으나, 미국 소비자의 부담은 53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메르린치 보고서는 추정하고 있다.


과거의 무역 분쟁은 모두 무역적자국이 촉발하였다. 그런데 이번 한일 무역 분쟁은 무역흑자를 보고 있는 일본이 시작하였다. 물론 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 대한 경제적 보복이라는 정치적 이유가 숨어 있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과거와 다른 특이한 현상이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미·중 무역 분쟁과 한·일 무역 분쟁은 새로운 글로벌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을 떠나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글로벌화와 디지털 경제의 발달로 생산양식에 일대 변혁을 가져오고 있다. 아무리 복잡한 생산 공정과정도 쉽게 코드화 할 수 있고, 코드화된 정보를 세계 곳곳에 있는 다양한 기업들에게 전송하여 부품을 생산하고 조립하고 판매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새로운 제품을 쉴 새 없이 선보이고, 경쟁사의 제품을 보편화하여 경쟁을 강요하고, 새로운 분야에서 기회를 창출하지 못한다면 정상의 자리를 다른 경쟁기업에게 언제라도 내주어야 하는 상황이다. 빨라지는 제품주기에 맞게 생산의 유연성과 원가 절감 압력을 이겨낼 수 있는 세계 최고의 기업들로 가치사슬을 구성할 수밖에 없다. 선도 기업이 대부분의 부가가치를 가져가고 추격 기업들이 나머지 부가가치를 두고 생존게임을 벌이는 일이 보편화되었다. 4차 산업분야에서 노동자의 경험과 지식에 의존하면서 모든 부품을 단일 생산 시설 내에서 생산하는 분야는 찾아볼 수 없다. 자국 내 산업보호라는 의미가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최근 무역 분쟁이 자국 산업 보호보다는 경쟁기업의 가치사슬을 공격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이유이다. 기술 우위를 바탕으로 4차 산업을 선도하는 국가가 무역 분쟁을 촉발하고 주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중 무역 분쟁도 무역불균형을 해소하겠다면 시작되었지만 국가주도로 성장하는 중국 기업을 글로벌 밸류 체인에서 배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정부 주도의 기술탈취와 시장 왜곡을 서슴지 않는 중국 국가자본주의 체제를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배제하려는 시도로 읽히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시장경제 블록」과 「국가자본주의」와의 세 대결 양산으로 치닫고 있고, 우리도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상황이다. 한일 무역 분쟁도 차세대 반도체의 선두주자로 부상하는 우리나라 반도체 공급 망을 붕괴시키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일본은 리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에칭가스 등 필수 중간재화를 차단하여 우리의 반도체 생산중단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일 무역 분쟁이 더욱 악화된다면 우리의 경제적 피해는 가늠하기 조차 어려울 것이다. 다양한 공급망 들이 서로 경쟁과 협력을 통해 거대한 글로벌 가치사슬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반도체 공급망의 붕괴는 일본경제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특히 국가주도로 글로벌 가치사슬을 지배하려는 중국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자유시장경제체제 진영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강대강 대결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어떻게 대응하겠다는 구체적 계획은 없어 보인다. 과거 미일 무역전쟁에서 일본의 전략에서 지혜를 얻을 필요가 있다. 피해를 최소화하는 전략도 상황에 따라 최선의 대책이 될 수 있다. 재정을 투입하면 국산화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기라로 할 듯 추경 통과를 압박하는 것도 글로벌 밸류체인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나온 착각이다. 글로벌 가치사슬은 세계 최고의 기업들로 구성된다. 구성원 각자는 스스로 기술을 개발하고 원가를 절감하여 세계 최고의 상품을 만드는 것이 서로 윈윈하는 공생의 길로 여기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납품단가 인하, 납품품질 등에 대한 요구는 납품업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부당행위로 취급받는다. 각종 규제로 언제 공장을 멈춰야할지 모르는데 위험을 무릅쓰고 사업을 하려는 기업도 많지 않다. 우리나라 기업과 가치사슬을 맺기를 꺼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부품소재의 국산화가 가능하다고 믿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국산화는 국내 투자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규제를 혁파하고, 반기업·친노조 정책을 과감히 수정하고, 생산비용 급증을 초래하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중단해야 한다. 이순신 장군은 승리를 위해 부하 장병들의 소중한 목숨을 위해 대역 죄인으로 몰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전술로 싸워 12번의 전투를 모두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의 지혜와 용기 모두가 필요한 시점이다. 무모한 용기만으로 조선 200척 함대를 한 번의 전투로 모두 잃어버린 원균의 칠전량 전투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지금은 나아가 싸울 때가 아니라 와신상담하며 힘을 기를 때이다.


조경엽(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glcho@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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