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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쟁이 가져다 준 남북한의 차이


지난 몇 년간 필자는 KBS의 라디오채널인 ‘한민족방송’에서 ‘경제를 배웁시다’라는 프로그램에 고정출연해 왔다. 북한주민 대상의 프로그램인데, 북한주민 가운데 이 방송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지 정말 궁금하다. 어쩌면 북한 전체를 통틀어 채 열 명이 안 될지도 모른다. 일단 전파방해를 뚫고 남한방송을 들을 수 있는 수신기가 있어야 할 테니 말이다.


그런데도 내가 이 방송을 계속하는 이유는 내 스스로 배우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명색은 북한주민에게 경제를 가르친다는 것이지만 실제는 내가 오히려 북한에 대해서 배우는 것이 더 많다. 특히 몇 달 전부터 시작한 탈북 새터민과의 대화에서는 더욱 그렇다. 새터민과의 대화를 통해 북한과 사회주의 체제가 사람을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아니 그보다는 북한을 앎으로써 남한의 자본주의 체제가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꽤나 뜻밖이었던 것은 북한사람들이 돈에 대해 강한 집착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윤추구가 허용되지 않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살던 사람들인 만큼 돈에 대해 상당히 무관심할 것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하지만 그것은 고정관념일 뿐이었다. 새터민들의 돈에 대한 집착은 대단하여 남한에서 계속 살아온 사람들보다 훨씬 더 강해 보인다.


이기심이라는 면에서도 그렇다. 새터민들에게 “남에게 베푼다는 것”은 기대할 수조차 없어 보였다. 새터민만이 아니라 북한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다고 한다. 남한 사람들이 기부에 인색하다고들 말하지만 그래도 북한 사람보다는 훨씬 나은 편인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돈벌이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였다. 성실하고 정직해야 직장에서 성공하고 더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낯설게 받아들인다. 그들은 오히려 성실하게 일하면 손해라고 생각하며, 받는 월급보다 덜 일해야 이익이라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성공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는 태도가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새터민들이 다단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것도 그런 태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남한의 기업가들이 탈북 새터민을 고용하기 꺼리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방송을 하다가 새터민과의 인터뷰에 기초해서 쓴 논문을 보게 되었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남한의 노동강도에 대한 것이었다. 새터민들은 대부분 남한의 노동강도를 견디기 어려워한다. 북한에서 적당히 일하는 것이 습관화되었기 때문이란다. “북한에서 남한 노동자들처럼 일하면 노력영웅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하던 그 새터민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이런 사실은 역설적으로 우리 남한 사람들이 얼마나 집약적인 노동을 잘 견디는지를 말해준다. 물론 남한 사람들에게도 직장생활은 힘들다. 그러나 남한의 노동자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노동 그 자체보다는 대인관계라는 것이 여러 설문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새에 웬만한 강도의 노동은 견디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남한 사람들 역시 처음에는 상사의 눈치나 보면서 어슬렁거리는 사람이 부지기수였고, 점심시간을 두 시간씩이나 쓰는 사람들 역시 흔히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부지런했다면 ‘새마을운동’이라는 것도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강인하고 성실해지는 데는 기업들 간의 치열한 경쟁이 한몫했다. 직원들의 태도가 성실하고 고강도 노동을 잘 견디는 기업이라야 생산성이 높아져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시장에서 살아남은 기업의 직원들은 강인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정직과 친절 역시 마찬가지다. 북한에서는 물건을 파는 사람이 사는 사람보다 더 거들먹거린다고 한다. 또 가격은 고무줄처럼 제멋대로여서 소비자를 잘 속여 넘겨야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다고 한다. 이것 역시 남한과 매우 대조적이다. 남한에서는 누가 더 소비자에게 잘 봉사할지를 두고 경쟁한다. 또 소비자를 속인 기업은 조만간 문제가 터져서 곤욕을 치르기 마련이다. 남한에서는 공급자가 소비자보다 친절하고 정직하다.


하지만 남한의 사정도 과거에는 북한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70년대만 해도 “손님은 왕”이라는 구호는 아주 생소한 말이었다. 또 단골가게가 없이 동대문시장과 남대문시장에 가면 바가지 쓰기를 각오해야만 했다. 그러던 것이 지금처럼 친절과 정직이 자리를 잡게 된 것은 경쟁 때문이었다. 음식점 간에 그리고 기업들 사이에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졌고, 친절이 가장 중요한 경쟁수단으로 등장했다. 또 백화점 같은 곳이 정찰제로 손님을 모으는 데 성공하자 중소형 가게들, 이제는 남대문과 동대문시장의 가게들까지도 정직한 가격제로 승부를 보기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흔히 탐욕적이고 부패하고 약삭빠른 사람들을 “자본주의적 인간형”이라고 말하곤 한다. 당연히 그 반대인 사회주의적 인간은 순수하고 부지런하며 착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진다. 그러나 현실에 나타난 모습은 오히려 그 반대다. 60년간 자본주의식으로 살아온 남한 사람들이 오히려 더 성실하고 정직하며 친절하다. 남한 사람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경쟁의 압력이다. 성실해야 생산성이 높아져 좋은 제품을 싼 값에 공급할 수 있고, 정직하고 친절해야 고객들이 다시 찾아준다. 지난 60년간 남한에서 이루어져 왔던 경쟁은 결국 성실, 친절, 정직해지기 경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kch@c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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