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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션이론을 통해 본 회사정책의 방향


옵션(option)은 흔히 파생금융상품의 일종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옵션이론은 금융전문가에게나 필요한 것이지 일반인들과는 무관한 것처럼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옵션이론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적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집을 장만하기 위해 여러 집을 구경하다 아주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괜찮은 집을 발견한 경우 혹시 팔릴 것을 염려해 일정한 금액을 걸어두고 가계약을 체결한 후 계속 집을 보러 다닌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가계약(옵션계약)을 통해 ‘선택할 수 있는 권리(옵션)’를 사 둔 것이다. 이처럼 옵션이란 목적물을 특정 일자에 특정금액(행사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call option) 또는 반대로 팔 수 있는 권리(put option)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옵션논리가 적용될 수 있는 영역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회사의 본질이라는 조금은 거창한 문제에 옵션이론을 적용해 볼 경우 우리가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 왔던 문제들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주주가 회사를 소유한다고 보아왔고 여기에 특별히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이와 같이 소유라는 개념을 강조할 경우에는 항상 소유하는 자와 소유하지 않는 자 사이의 긴장관계에 주목하게 된다. 이러한 긴장관계는 회사지배구조 영역에서 소유자인 주주와 경영자, 대부분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수많은 소수주주들과 적은 주식만을 소유하고 있는 재벌 오너 사이의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로 표출된다. 따라서 회사지배구조 논쟁은 당연히 이러한 대리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인이 대리인을 어떻게 통제하고 감시하도록 할 것인가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회사지배구조정책 역시 그러했다. 당시 외환위기의 원인으로 대리인에 불과한 재벌 오너가 회사의 주인인 대다수의 소수 주주들의 이익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회사를 운영해 왔다는 사실이 지목되었다. 따라서 오너를 통제하고 감시하기 위해 주주가 회사의 소유자라는 이념이 가장 잘 구현되고 있다는 영미식 주주자본주의에 기초한 사외이사제도, 집중투표제도 등과 같은 소액주주 권한 강화 제도와 경영자 책임 강화제도를 대거 도입하고 적대적 M&A시장 활성화를 통해 경영진 감시를 강화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과연 주주가 회사의 소유자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옵션이론을 통해 보면 반드시 그렇지 않다. 우선 회사에 대한 상식적인 얘기에서 출발해 보자.

회사에 자금을 제공한 투자자들은 이들의 선호에 따라 일정한 투자수익을 미리 보장받는 채권자와 채권자의 몫을 제외한 잔여가치를 가져가는 주주로 구분된다. 그리고 주주들은 유한책임제도로 인해 채무액이 회사 자산을 초과하더라도 자신들이 투자한 자금 이외에는 별도의 금전적 부담을 질 필요가 없다. 따라서 주주들이 채권자에게 원리금을 지불하는 시점에 원리금이 회사 자산을 초과하게 되면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 초과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갚을 것이다. 회사에 대한 이러한 설명은 전혀 새로울 것도 없고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옵션이론이라는 안경을 끼고 회사를 보면 서로 상반된 설명이 가능하다. 주주가 회사를 소유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도 있고 반대로 채권자가 회사를 소유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우선 풋옵션이론을 적용해 흔히 알려져 있는 것처럼 주주가 회사를 소유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주주들이 일단 회사의 소유자이지만 장래의 채무 변제일에 원리금이 회사 자산을 초과할 경우 변제하지 않을 권리, 즉 원리금을 행사가격으로 회사를 채권자들에게 팔아버릴 권리(풋옵션)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변제일에 채무액이 회사 자산 가치를 초과하면 주주들은 풋옵션을 행사하여 채무액에 회사를 채권자들에게 팔아버리고 더 이상의 책임은 부담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초과하지 않는다면 풋옵션을 행사하지 않고 채무를 변제하여 계속 회사를 소유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콜옵션 이론을 적용해 채권자들이 회사를 소유한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 채권자들이 일단 회사를 소유하지만 주주들이 변제일에 채권자들에게 원리금을 갚고 회사를 살 수 있는 권리(콜옵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원리금이 회사 자산 가치를 초과할 경우에는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아 채권자들은 최종적으로 회사를 소유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주주가 풋옵션을 가지며 주주가 회사를 소유하고 있다고 설명할 수도 있고 주주가 콜옵션을 가지며 채권자가 회사를 소유하고 있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 이것은 주주가 회사를 소유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소유주식의 수 만큼에 해당하는 지배권을 행사해야만 소유개념에 가장 잘 부합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생각들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재벌 오너는 쥐꼬리만큼의 주식만 소유하고도 계열사 지분을 이용해 기업집단 전체를 지배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부당하며 대다수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소수주주들이 진정한 회사의 소유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너가 쥐꼬리만큼 주식을 소유하고 그 이상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 자체가 부당한 것이 아니라 그 권한을 사적 이익을 위해 행사했을 때 비로소 부당한 것이다. 물론 권한 남용의 위험은 있다. 그러나 이러한 회사가 오히려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판단해 이 회사의 주식을 선호하는 주주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주주의 법적 지위를 회사의 소유자라고 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 소유자로 인식하는 것이 주주의 법적 지위를 확고히 해 이들을 보호해 주는 것 같지만 이에 지나치게 얽매일 경우 주주들의 다양한 선호가 무시될 수 있고 또한 이러한 다양한 선호가 반영된 다양한 회사지배구조 형태의 출연을 막을 수도 있다. 따라서 주주의 법적지위를 회사의 ‘소유자’라는 개념을 통해 인식하는 것보다 다양한 ‘권리의 묶음(bundle of right)’을 가지고 있는 주체로 인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이러한 권리의 묶음을 어떻게 꾸릴 것인가는 주주들의 자발적 계약관계에 맡겨두고 법은 주주들의 자발적 선택이 제대로 행해질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조성해 주는데 주력해야 한다.

최근 회사법을 연구하는 미국 법경제학자들은 20세기 초부터 모든 사람들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온 ‘주주소유’개념에 대해 근본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주주들의 권리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모든 주주들의 권리를 더 잘 보호해 주기 위해서는 ‘소유’라는 개념보다 ‘계약’이라는 개념이 더욱 적합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처럼 주주는 소유한 주식의 수만큼 회사를 소유한다는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여기서 당연히 파생된 1주1의결권, 소유-지배 일치를 역시 당연한 것으로 보며 이것에서 벗어나는 차등의결권, 소유-지배 괴리 현상을 비정상적으로 보는 것이 과연 모든 주주들을 위한 올바른 회사정책의 방향인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sshun@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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