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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 목표제의 문제점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화폐의 공급이 수요에 맞춰 이루어지지 않는 데 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근본적인 원인도 여기에 있다. 미국 연방준비위원회(Federal Reserve Board)가 인위적인 저금리 정책을 쓰면서 화폐 수요를 초과하는 과다한 화폐량을 공급하였다. 과잉 유동성이 주택시장에 흘러들어가 거품을 형성하였다가 거품이 꺼지면서 금융위기가 촉발된 것이었다. 여기에 한 가지 의문이 있다. 그렇게 많은 통화량이 시중에 풀렸을 때 미국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감지하여 제동을 걸 수 있었을 터인데, 그러지 못했던 이유이다.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이 추구하는 통화정책의 최우선 목표는 물가안정이다. 이를 위해 각국의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목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U)은 2% 이내, 영국은 2%, 캐나다와 뉴질랜드는 1~3%, 한국은 2.5~3.5%를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은 명시적으로 인플레이션 목표제를 채택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 연준은 인플레이션 목표제를 채택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소위 ‘암묵적’ 인플레이션 목표제를 채택하여 왔다. 그렇다면 실제 인플레이션이 암묵적으로 정한 인플레이션 목표를 넘어갔을 경우 통화량을 확대하는 정책을 자제했다면 과잉 유동성에 의한 금융위기가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미국 연준의 이러한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인플레이션 목표제가 갖고 있는 치명적인 문제점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목표제는 특정 물가지수, 즉 소비자물가지수를 사용한다. 소비자물가지수를 산정할 때 포함되는 재화의 범위는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통화량 변화에 따른 재화의 가격변동은 소비자물가지수에 포함되는 재화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만약 통화량 변동에 따라 소비자물가지수에 포함되지 않는 재화의 가격을 크게 변동시켜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면 소비자물가지수를 대상으로 한 인플레이션 목표제는 잘못일 수 있다. 소비자물가를 안정시키는 것이 결코 경제활동을 안정시키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소비자물가를 대상으로 한 물가안정 목표를 달성하였다고 할지라도 소비자물가지수에 포함되지 않는 부동산과 같은 자산가격이 폭등하였다면 그것은 ‘진정한’ 물가안정을 이뤘다고 볼 수 없다.

실제로 미국은 저금리 정책으로 통화량이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총통화(M2)의 증가율은 2001년 6.49%, 2002년 9.89%, 2003년 6.27%, 2004년 7.01%, 2005년 5.35%, 2006년 4.68%, 2007년 5.57%였다.1) 그러나 이러한 통화 증가는 소비자물가지수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소비자물가지수를 바탕으로 계산한 인플레이션율은 2001년 2.83%, 2002년 1.59%, 2003년 2.27%, 2004년 2.68%, 2005년 3.39%, 2006년 3.24%, 2007년 2.85%였다. 반면에 늘어난 통화량이 주택시장에 몰려 주택가격을 폭등하게 하였다. 태평양지역(Pacific Census Division)의 주택가격지수로 계산한 주택가격 상승률을 보면 2001년 11.4%, 2002년 7.8%, 2003년 10.8%, 2004년 13.2%, 2005년 21.8%, 2006년 17.4%, 2007년 3.3%였다.2) 이와 같은 사실은 인플레이션 목표제가 통화정책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아 중앙은행의 실수를 유발하는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사례는 비단 이번 금융위기 뿐만 아니다. 1929년에 터진 자산 가격 버블 역시 소비자물가의 안정성을 추구한 신용 확장에 그 원인이 있다. 뿐만 아니라 저금리 정책을 써서 통화를 많이 풀었던 우리나라에서도 소비자물가가 상당히 안정되었지만 2002~2003년과 2005~2006년 주택 가격이 폭등하였던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들에 비추어 볼 때 소비자물가지수와 같은 특정 물가지수에 국한되어 목표를 정하여 통화정책을 수행하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 외에도 인플레이션 목표제는 이론적으로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인플레이션 목표제는 경제 변화의 중요한 요소를 무시한다는 점이다. 경제 변화의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생산성 증가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생산성이 증가하면 생산이 증가하여 물가가 자연히 하락하게 된다. 그에 따라 소비자의 후생이 증가함은 물론이다. 컴퓨터와 같은 첨단기술부문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컴퓨터의 가격이 1980년-1999년 동안에 90%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컴퓨터 생산은 1980년 49만 대에서 1999년 4,300만 대로 급격히 증가하였고 그 과정에서 소비자가 많은 이익을 얻었다.3) 이러한 물가하락이 경제 전반에 걸쳐 일어난다면 소비자의 이득은 더욱 커지게 된다. 그런데 물가안정 목표제를 채택하면 이 경우에도 물가하락을 막기 위해 확대통화정책을 써야 한다. 이러한 확대통화정책은 결국 소비자의 후생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물가안정을 목표로 하는 인플레이션 목표제는 바람직한 통화정책이 아니다.

그 다음의 문제는 인플레이션 목표제가 재화의 상대가격의 왜곡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통화량이 추가로 경제 내에 유입되었을 때 모든 재화와 용역이 동시에 동일한 비율로 오른다면 재화와 용역의 상대가격 변화가 없고, 따라서 경제의 왜곡현상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통화량을 늘렸을 때 실제로는 모든 재화와 용역들의 가격이 동시에 동일한 비율로 오르는 것이 아니라 시차를 두고 각기 다른 비율로 오르면서 그 영향이 각기 다르다. 다시 말하면 새로 유입된 통화량이 지출된 재화가 가장 먼저 오른다. 그 다음 제일 먼저 새로운 통화를 사용한 사람에게 물건을 판 사람들이 새로운 통화를 보유하게 되고 그것을 다른 재화와 용역에 지출하면, 그 재화와 용역의 가격이 오르게 된다.4) 마치 호수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일듯이 이러한 과정이 진행되면서 재화와 용역들의 가격이 오르게 되고 그 과정이 끝나는 시점에서 상대가격의 집합은 새로운 통화가 유입되기 이전의 것과 전혀 다르게 된다. 이러한 상대가격의 변화는 가격의 정보전달 기능을 왜곡하여 기업의 생산 결정을 어렵게 만든다.

금융시장의 안정과 재화와 용역의 상대가격을 왜곡시키지 않으려면 화폐공급이 화폐의 수요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중앙은행제도 하에서는 정부에 의해 임의로 화폐공급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을 뿐만 아니라 지식의 문제로 말미암아 중앙은행이 화폐수요의 변화에 맞게 화폐를 공급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갖고 있다. 게다가 현재 각국의 중앙은행이 최우선적인 목표로 삼고 있는 물가안정을 위해 채택하고 있는 인플레이션 목표제는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현재의 중앙은행제도를 화폐공급이 화폐수요에 맞게 공급되는 시스템으로 개혁을 해야 한다.5) 그러나 그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면 지금 현재 각국의 중앙은행이 채택하고 있는 인플레이션 목표제를 신중하게 재검토해야 한다. 굳이 물가안정 목표를 실행해야 한다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소비자물가지수가 아닌 보다 나은 목표대상을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시 말하면 자산 가격들을 포함하는 보다 폭넓은 물가목표제를 채택하는 것이다. 그러면 완전하지는 않지만 중앙은행은 단지 소비자물가지수를 대상으로 물가안정을 취하는 것보다는 실수를 훨씬 덜하게 될 것이다.


안재욱 (경희대학교 대학원장/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 jwan@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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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것과 다음에 언급되는 데이터들은 St. Louis Federal Reserve Bank의 자료를 이용하여 계산한 것임.

2) 태평양지역(Pacific Census Division) 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에 걸쳐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주택가격

증가율을 보이고 있음.

3) Thomas E. Woods Jr. (2009), Meltdown, Washington D.C.: Regnery Publishing, Inc., p.136.

(『케인즈가 죽어야 경제가 산다』로 번역되어 있음).

4)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Ludwig von Mises[1996(1949)] Human Action, San Francisco: Fox& Wiles,

제18장과 20장을 참조하기 바람.

5) 중앙은행의 개혁 방안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안재욱(2008) 『시장경제와 화폐금융제도』를 참고하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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