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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관성 무시하는 조삼모사식 정책은 그만두어야


정부는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 내의 대형마트 내 주유소 개설을 의도적으로 막고 있다고 보고 관계부처 합동으로 실태조사를 벌이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일부 지자체들이 지역 주유업계의 민원을 받고 고시를 새로 제정하거나 행정절차를 일부러 지연시켜 대형마트 주유소를 규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대전 유성구는 ‘대규모 점포 부지 내(주차장 포함)에 주유소 설치를 제한한다’는 고시를 제정하여 한 대형마트의 점포 내 주유소 개설을 사실상 제한하고 있으며, 울산시와 전주시, 통영시 등도 대형마트와 주유소 간 이격거리(20~50m)를 규정한 고시를 만들어 주차장 부지를 활용하여 주유소를 개설하려는 대형마트의 사업을 원천봉쇄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대형마트들이 연말까지 설치하려던 12곳의 주유소 개설이 인허가 단계에서 사업추진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로 있다고 한다.

정부는 이번 실태조사를 통해 “지자체가 권한을 남용하고 있다고 판단되면 조속히 시정되도록 강력히 조치할 것”이며 당초 계획대로 대형마트 주유소가 개설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대형마트 주유소 개설은 정부가 지난해부터 적극 권장해 오던 사업이다. 유통단계에서 경쟁을 활성화하여 소비자들에게 유류를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정부 고위 관계자의 발언이다. “대형마트의 주유소 개설은 가격 경쟁으로 이어져 결국 몇몇 주유업자를 제외한 지역민들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시장경제에서의 경쟁과 소비자보호를 위해 정부가 해야 하는 역할을 이처럼 잘 표현하는 발언도 드물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역할을 이렇게도 잘 이해하고 있는 현 정부에서 얼마 전 진행된 일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바로 본사직영 슈퍼마켓(SSM, 기업형 슈퍼마켓)의 출점과 관계된 일이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등 본사직영 슈퍼마켓이 동네 골목에 진출하려고 하자 이로 인한 피해를 우려한 기존의 재래시장과 동네의 작은 슈퍼마켓, 구멍가게 주인들이 집단행동 움직임까지 보이며 반대하고 나섰다. 이들이 본사직영 슈퍼마켓의 출점을 반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과의 경쟁이 싫기 때문이다. 좋은 품질의 다양한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본사직영 슈퍼마켓의 출점은 이제까지 자신들이 편안하게 누리던 기득권에 대한 심대한 도전이 된다. 결국 본사직영 슈퍼마켓의 출점을 막아달라는 상인들의 요구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호해 달라는 요구와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희생자는 바로 소비자들이다. 본사직영 슈퍼마켓의 출점으로 말미암아 영세 상인들의 기득권이 무너지고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지면 다양하고 좋은 물건을 싸고 편리하게 살 수 있는 큰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이 다름 아닌 소비자들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영세 상인들이 본사직영 슈퍼마켓의 출점을 막아달라는 말은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소비자들에게 엄청난 희생을 강요하라는 말과 같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를 보호해야 할 책무가 있는 정부와 지자체는 여러 가지 규제를 통해 오히려 소비자들을 피해자로 만들고 있다. 대규모 사업장이 진출하지 못하도록 영업활동을 제한하는 ‘사업조정신청제도’와 어디로 진출할 것인지를 미리 알려 사전 봉쇄시키려는 ‘사전조사신청제도’ 등을 통해 본사직영 슈퍼마켓의 출점을 극도로 제한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형 마트 내 주유소 개설과 본사직영 슈퍼마켓의 동네 진출은 동일한 성격의 사안이다. 두 개 모두 유통시장에서 발생한 일이며 또 유통시장에서 이루어진 혁신의 결과 새로운 경쟁이 시작되면서 발생한 일이다.

그런데 그에 대한 정부의 자세는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경쟁의 강화가 소비자보호를 위해 매우 필요하다는 입장인 반면, 후자의 경우에는 기존 상인들의 기득권 보호를 위해 소비자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입장이다. 전자가 ‘경쟁을 보호’하는 역할이라면, 후자는 ‘경쟁자를 보호’하는 역할이다.

정부가 경쟁을 보호하는 역할을 포기하고 경쟁자를 보호하고자 할 때 해당 부문의 발전은 지체되고 퇴보할 수밖에 없다. 지난 수십 년 간 실시되고 있는 중소기업 보호정책과 오늘날 중소기업의 낮은 경쟁력의 관계를 살펴보면 쉽사리 알 수 있다. 진정으로 영세상인들과 중소기업을 보호하고자 한다면 그들이 자생적으로 생존하도록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 모든 보호정책은 항상 희생자를 필요로 한다.

어떤 때는 소비자 보호, 또 다른 때는 경쟁자 보호로 정부 정책이 일관성을 잃고 정치논리에 따라 우왕좌왕하게 되면 관련 이익단체들의 로비와 이권추구 행태가 기승을 부리고 이 과정에서 부정부패가 발생한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규제있는 곳에 부정부패가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되고 지속되면 경제가 발전할 수 없다.

경쟁자 보호가 아닌 경쟁의 보호, 소비자 보호라는 본연의 역할을 정치논리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일관성 있게 꿋꿋이 밀고 나가는 정부의 역할은 경제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대형마트 주유소 개설에 대해서는 경쟁을 통한 소비자 보호라는 역할을 잘 해낸 정부가 어떻게 본사직영 슈퍼마켓과 관련해서는 정반대의 결론을 내리는 것에 대해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잘못된 판단은 가능한 한 빨리 바꾸는 것이 좋다. 지금부터라도 본사직영 슈퍼마켓에 대한 규제를 철폐해야할 것이다.

권혁철 (자유기업원 법경제실장, kwonhc@c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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