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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카르텔도 문제가 되는가?


얼마 전 한 신문에 본질이 거의 ‘동일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정반대로 대응하거나 결정한 두 가지 뉴스가 실렸다. 하나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디지털TV용 시스템 반도체를 공동으로 개발하기로 했다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7개 의료폐기물 중간처리업자가 거래처를 서로 침범하지 않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정부는 시스템 반도체 개발에 대해서는 일정한 액수의 지원을 하기로 했지만 의료폐기물 중간처리업자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담합’으로 간주하여 과징금을 부과하고 담합을 주도한 업자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카르텔과 관련하여 두 가지 논점이 있다. 하나는 카르텔이 ‘생산을 제한’(restriction of production)하는가 하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카르텔이 언제나 '불안정한가'(unstable)하는 점이다. 여기에서는 전자만을 분석하고자 한다.


주류경제학은 카르텔의 자발성 여부와 상관없이 생산자들이 카르텔을 결성하여 소득을 증가시키는 행위를 담합으로 비난한다. 요컨대 주류경제학에서는 모든 카르텔을 반사회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규제한다.


그러나 카르텔은 먼저 자발적인 것과 비자발적인 것으로 구분해야 한다. 비자발적 카르텔이란 민간 업자가 다른 민간 업자의 가입과 탈퇴를 억제하는 경우가 있고, 정부가 주도하여 카르텔을 결성하는 경우로 대별할 수 있다. 비자발적 카르텔은 독점의 한 종류로서 독점의 폐해를 야기한다.1) 그러므로 비자발적 카르텔을 억제 또는 방지하는 것이 ‘정확한’ 반(反)독점 정책이다.2),3) 그러나 자발적 카르텔은 생산자들이 협력한 결과이고 그런 카르텔은 생산구조(production structure)의 하나로서 ‘가치 창조적인’(value-productive) 것이다.4) 한 마디로 자발적 카르텔에 대한 주류경제학의 분석과 그에 기초한 정책은 전적으로 틀린 것이라는 점이다.


농부들이 녹차를 생산하는 가상적인 예를 생각해보자. 일단의 농부들이 카르텔을 결성하기 전에 모두 연간 10만 톤의 녹차를 생산해왔고 그만큼의 녹차를 생산하기 위하여 노동의 양은 X만큼, 토지의 양은 Y만큼 사용했다고 가정하자. 이제 농부들이 연간 6만 톤을 생산하면 자신들의 소득을 증가시킬 수 있음을 알았다고 하자. 당연히 10만 톤의 녹차를 계속 생산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카르텔을 결성하고 6만 톤의 녹차를 생산한다고 하자. 이전까지 10만 톤의 녹차를 생산하던 것을 6만 톤으로 생산량을 줄이게 되면 녹차를 생산하기 위하여 사용되던 노동과 토지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분석을 쉽게 하기 위해 녹차 생산량과 생산요소가 비례 관계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제 0.4X와 0.4Y의 노동과 토지가 녹차 생산에 불필요하기 때문에 다른 재화나 용역의 생산을 위하여 이동할 것이다. 예를 들어 노동은 참깨를 더 생산하는 데 쓰일 수 있고 토지는 콩을 더 생산하는 데 쓰일 수 있다고 가정하자.5) 0.4X의 노동은 1만 톤의 참깨를 더 생산하고, 0.4Y의 토지는 2만 톤의 콩을 더 생산할 수 있다고 가정하자.6) 물론 이 두 가지 농작물을 더 생산하기로 한 것은 그것이 그들에게 가장 유익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관점으로 보면, 그러한 생산은 카르텔에 가장 이윤이 남는(profitable) 생산요소의 배분이다. 이제 농부들은 카르텔을 결성하여 6만 톤의 녹차와 1만 톤의 참깨와 2만 톤의 콩을 생산할 수 있다. 카르텔이 결성되기 전에는 10만 톤의 녹차를 생산하고 있었다. 이제 누가 어느 쪽이 낫다고 말할 수 있는가? 녹차의 생산은 줄어들었지만 참깨와 콩의 생산은 늘어났다. 농부들의 전체 생산(over-all production)이 늘어났는지 또는 줄어들었는지는 생산량으로서는 결코 비교할 수 없다. 왜냐하면 물리적으로는(physically) 공통으로 비교할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녹차 6만 톤과 참깨 1만 톤과 콩 2만 톤의 합과 녹차 10만 톤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는가. 우리가 굳이 비교할 수 있는 방법은 가치(value)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다. 녹차만 생산하는 것에 비하여 녹차ㆍ참깨ㆍ콩 등을 함께 생산하는 것이 더 이윤이 남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더 가치 창조적일 것이고, 그 점에서 후자(녹차ㆍ참깨ㆍ콩을 모두 생산하는 것)가 전자(녹차만 생산하는 것)보다 더 정당(just)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가치라는 관점에서는 후자가 전자보다 전체 생산이 늘어난 것이지 축소된 것이 아니다.


녹차 10만 톤을 생산하기 전에 4만 톤밖에 생산하지 않았다고 가정하자. 이제 10만 톤이 4만 톤보다 더 이윤이 날 것이라는 판단 하에 10만 톤의 녹차를 생산하기로 했다고 하자. 녹차 6만 톤을 더 생산하기 위하여 다른 부문에서 각종 생산요소가 이전되어야 하는 데 이 경우에 우리가 다른 부문에서 ‘생산의 제한’이 일어났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와 꼭 같이, 녹차 생산을 줄이고 참깨와 콩을 더 생산하는 것이 녹차의 생산을 제한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자유시장에서는 자원의 희소성과 재화의 한계효용이 체감하기 때문에 재화의 생산은 본질적으로 제한된다. 자유시장에서는 카르텔을 비난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생산의 제한’이라는 개념은 전적으로 틀린 것이다. 녹차의 생산을 줄이고 참깨와 콩의 생산을 늘리기 위하여 카르텔을 결성하는 행동은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생산요소의 힘(power)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토록 생산요소를 이전하는 행동이다.


카르텔을 결성하여 생산량을 줄인다는 것은 다른 부문에서 생산이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생산요소가 그 부문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카르텔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카르텔을 결성하기 전의 생산구조가 소비자에게 더 잘 봉사한다고 암묵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카르텔에 대한 비난은 카르텔로 인하여 다른 부문에서 예전보다 더 많이 생산하는 것을 비난하는 것이 된다. 문제는 카르텔 반대론자(anticartelist)가 어떤 기준으로 다른 부문의 사람이나 기업의 행위를 비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기준이 있다면 유일하게 자신들이 정한 ‘임의적인’ 기준밖에는 없는 것이다.


생산량이 줄어드는 것을 반대하는 카르텔 반대론자는 자신이 자원을 사용하여 자신들이 비난하는 산업에 들어가 해당 재화를 만들면 될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현재의 녹차 생산자들이 더 많이 생산하지 않는다는 점을 비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미제스(Mises)는 이러한 점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확실히 철강 생산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자기들처럼 이 분야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책임이 없다. (중략) 만약 어떤 사람이 민병대에 자원하는 사람이 많지 않음을 비난한다면 그 대상은 이미 민병대에 지원하고 있는 사람보다 민병대에 지원하지 않는 사람이다.”7) 미제스의 설명을 녹차의 경우에 적용하면 녹차를 적게 생산하는 것을 비난한다면 그 대상은 현재의 녹차 생산자가 아니라 녹차를 생산하지 않고 있는 다른 생산자 또는 일반인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시장에서는 모든 것이 선택으로 이루어진다. 대안들(alternatives) 중에서의 선택은 대안들 간의 이동을 의미한다. 만약 이동이 어떤 이유로든 억제되거나 방해받는다면 선택이 그렇다는 것이다. 카르텔 반대론자는 카르텔을 반대함으로써 생산자의 선택을 억제하거나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선택은 모든 이에게 주어진 것이고, 그것을 억제하거나 방해한다면 자유시장(free market)을 부정하는 것이다.


카르텔 반대론자는 암묵적이지만 생산자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8) 카르텔 반대론자에게는 소비자주권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장에는 생산자주권도 존재한다.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 생산량을 줄여 재화의 가격을 올리는 경우라도 그 점에서의 거래는 자유시장에서의 소비자의 자발적인 선택의 결과이기 때문에 소비자의 후생 손실은 없다.9) 그러므로 카르텔이 비도덕적이거나 소비자주권을 침해한다는 주장도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이제 우리의 사례로 돌아가자. 시스템 반도체 개발을 위해서 정부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기사의 내용만으로는 알 수 없다. 만약 정부가 반도체 개발을 주도하고 삼성과 LG가 ‘울며 겨자 먹기’로 따랐다면 공동 개발은 비자발적 카르텔에 가깝다. 만약 두 회사가 먼저 개발에 협력하기로 하고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다면 그런 행위는 분명 자발적 카르텔이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나 정부의 지원만은 특혜로서 독점이고 관련자는 독점이득을 얻는다.10) 의료폐기물 중간처리업자들의 공동행위는 앞에서 설명한 자발적 카르텔의 원시적 형태이다. 그러나 의료폐기물 중간처리업은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그 허가는 또한 독점이고 독점이득이 있을 것이다. 요컨대 정부는 ‘규제할 것’과 ‘자유롭게 두어야 할 것’을 잘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전용덕 (대구대학교 무역학과 교수, ydjeon@daeg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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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점을 ‘하나의’ 생산자 또는 판매자만이 존재하는 것으로 정의하는 것은 틀린 것이다. 독점과 그와 관련된

독점이득(monopoly gain)에 대한 자세한 설명으로는, Murray N. Rothbard, Man, Economy, and State,

Ludwig von Mises Institute, 1963{1993}, 번역판으로는 전용덕ㆍ김이석 공역, 『인간, 경제, 국가』, 자유

기업원, 2006, 제10장 참조

2) 정부가 주도하여 만든, 비자발적 카르텔 경우가 현실에서 얼마나 많은지 모르지만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 이 경우는 반독점 당국이 독점을 오히려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3) 여기에서 OPEC이 자발적 카르텔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OPEC은 정부들이 주도하여 만든 비

자발적 카르텔의 국제적 사례이다. 그리고 정부는 그 자체가 독점이고, 석유회사도 대부분 국영으로 독점이

다. 추가적으로, OPEC은 생산량 제한과 같은 통제를 실시하기 때문에 그것도 독점이다. 여러 겹의 독점이

라는 것이다. 국가의 경계를 넘으면서 자발적 카르텔인 것은 민간 항공 협력 기구 등이 예가 될 것이다.

4) 자발적 카르텔은 협력적 카르텔(cooperative cartel)과 조정적 카르텔(coordinative cartel)로 구분할 수 있

다. 전자를 명시적 카르텔, 후자를 묵시적 카르텔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라스바드가 협력적 카르텔에 초점

을 맞추었다면 사린은 라스바드의 독점에 대한 개념 위에 조정적 카르텔도 존재할 뿐 아니라 생산구조로서

기능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두 카르텔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Rothbard의 전게서, 제10장과 Pascal Salin,

"Cartel as Efficient Productive Structures", The Review of Austrian Economics, 9, no. 2 (1996), pp.29-

42를 참조. 특히 전용덕은 일단의 기업가들에 의한 동시적인 가격 인상(인하)이나 가격표 상의 동일한 가격

이 조정적 카르텔의 결과임을 주장했다. Yoong-Deok Jeon, "A Note on Cartels", Quarterly Journal of

Austrian Economics, 12, No. 1 (2009), pp.65-72 참조. 여기에서 다루는 것은 협력적 카르텔에 관한 것

이다.

5) 물론 생산의 전환을 위하여 비용이 들 수도 있지만 편의상 무시하기로 한다. 생산 전환을 위한 비용을 고려하

더라도 결론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6) 이 가상적인 예에서 참깨와 콩의 생산은 마치 우리가 직접 목격할 수 있는 것처럼 설명했다. 그러나 현실에

서 우리는 그런 현상을 직접 목격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처음부터 녹차 카르텔을 결성하여 생산요소

를 거기에 맞게 고용한다면 참깨와 콩의 생산에 투입되는 생산요소는 카르텔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없다. 참깨와 콩의 생산 또는 그런 생산에 투입되는 생산요소를, 프랑스의 웅변적 경제학자이자 정치가였던

프레데락 바스티아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현상’이라고 지칭한 것이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현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끌로드 프레데릭 바스티아, 『법』, 김정호역, 자유기업원, 1997 참조

7) Ludwig von Mises, Planning for Freedom, pp.115-16에서 인용

8) 생산자주권과 소비자주권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Rothbard의 전게서, 제10장 참조

9) 이 점에 대한 설명은 쉽지 않다. 수요와 공급이 교차하는 모든 점에서의 교환은, 그것이 자발적인 것인 한에

서는 누구의 후생 손실도 없다는 것이다. 물론 생산자가 독점자가 아니라는 전제 아래에서만 말이다. 자세한

설명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10) 자발적 카르텔이라도 정부의 특혜나 허가 등이 관련되어 있다면 그 부분만은 분명히 독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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