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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안보(Natural Security): 21세기형 신 국가안보론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는 정치, 경제, 국제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기관들이 즐비하다. 이들은 특정 이념을 가지고 사회현상 전반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정치가들에게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소위 싱크탱크 들이다. 미국의 자유주의와 보수적 가치를 상징하는 헤리티지재단(Heritage Foundation), 미국 기업연구소(American Enterprise Institute)가 있는가 하면 진보적 가치를 표방하는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 그리고 최근 형성된 미국 신 안보연구소(Center for New American Security, CNAS)도 있다. 물론 미국의 진보 연구소가 우리나라의 좌파들과 비슷한 생각을 가졌을 것이라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미국의 진보 연구소들은 대체로 민주당을 지지하고 보수 연구소들은 공화당을 지지한다. 그리고 미국 민주당의 정책적 입장은 우리나라 보수당이라는 한나라당보다 더 오른쪽이라고 보아도 별 무리 없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특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연구소가 CNAS인데 이 연구소를 설립한 사람 중 하나이며 동 연구소 소장을 역임한 커트 캠벨(Kurt Campbell) 박사는 지난 6월 30일 미국 국무성의 동아시아 태평양 지역 담당 차관보로 임명되어 한반도 문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CNAS가 간행한 수많은 보고서 중 지난 6월 간행된 보고서 중에 제목을 이해하기 어려운 보고서가 하나 있었다. 보고서의 제목이 Natural Security라 되어 있으니 우리말로 애써 옮겨 본다면 “자연안보”(自然安保)쯤 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그런데 도대체 자연안보가 무엇일까? 학자들은 새로운 개념을 만들기 좋아하지만 자연안보라는 이름은 아무래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내용을 읽어 보니 이것이야 말로 미국이 앞으로 가장 집중적으로 신경을 쓸 외교 정책 분야라는 느낌이 왔다.


산업화 시대가 시작된 이후는 물론이지만 그 이전부터도 전쟁이란 대체로 자연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싸움이었다. 인류 역사 초기의 전쟁들은 이웃 마을끼리 두 마을의 중간쯤에 위치한 우물(혹은 오아시스)을 놓고 벌인 다툼들이었다. 인류역사상 최악의 전쟁이었던 2차 대전 역시 석유, 식량 등 천연자원 쟁탈을 위한 전쟁이었고 최근의 전쟁들에도 자원문제는 늘 그 배후에 깔려 있다.


그런데 자연자원의 중요성은 21세기인 현재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중요하게 되어 가히 사활적 문제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자연자원의 확보는 미국·중국·일본·유럽연합 등 경제 대국들의 경우는 물론 한국·대만 등 모든 나라가 국가의 운명을 걸고 있는 관심사가 아닐 수 없게 되었다. CNAS의 학자들은 이 같은 국제정치 경제의 현실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Natural Resources(천연자원)와 National Security(국가안보)를 합쳐 부르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Natural Resources + National Security = Natural Security(자연안보)라는 개념이 만들어진 것이다.


자연안보라는 개념은 단순히 국가 간의 자원 쟁탈을 위한 경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원을 어떻게 배분하고 어떤 자원을 새로이 개발해야 할 것이냐의 복잡한 문제들이 포함된다. 석유의 부족을 석탄으로 메우는 방법이 있다. 미국은 석탄을 액체화시켜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자동차에 그대로 주입해서 마치 휘발유처럼 쓸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원유가 배럴당 50달러가 넘을 경우 경제성이 있는 방안이라고 한다. 그리고 미국은 거의 무한한 석탄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다. 액화 석탄의 문제는 극심한 공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옥수수로 에탄올을 만들어서 에탄올을 가지고 자동차를 운행하는 방법도 있는데 그 경우 전 세계 곡물 가격이 폭등할 것이라는 문제가 있다. 옥수수에서 에탄올을 추출하려는 노력은 지난 3년 동안 40여개 나라에서 곡물 가격의 폭등을 야기시켰다. 최근 많은 나라들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만드는 데 리티움이라는 광물이 필요하다. 볼리비아가 전 세계 리티움 매장량의 절반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 대 볼리비아 외교가 대단히 중요해질 것 같다. 태양전지 패널을 만드는데 필요한 갤리움 같은 광물은 미국의 경우 99% 수입에 의존해야 한다는데 갤리움이 어디에 얼마나 매장되어 있는지는 아직 모른다. 미국은 현재 필요한 갤리움의 40%를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상황이다.


돈만 있으면 언제라도 원하는 천연자원을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천연자원을 구입, 확보하는 일은 이미 정치·외교·안보의 영역으로 변화 되었다. 석유를 대체할 청정자원, 하나뿐인 지구를 맑게 해 줄 녹색산업 발전을 위한 방안들 모두가 자원 쟁탈전쟁, 즉 심각한 국가안보의 이슈가 되고 있다. 21세기 국가안보는 천연자원의 안보와 직결된다. 세계경제는 에너지·광물·물·경작지가 없으면 가동할 수 없게 되었다.


특히 단기적으로 심각한 문제는 사활적인 에너지인 석유가 점차 고갈 상태에 이르고 있다는 점이며, 아직 석유를 대체할 좋은 방안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과 인도가 산업국가로 등장했다는 사실은 이제 곧 석유 문명시대에 종지부를 찍을 날이 다가 오고 있음을 의미한다. 만약 중국과 인도 사람들이 한국사람 수준(약 3명당 1대)으로 자동차를 소유하게 된다면 2008년 기준으로, 중국과 인도에만 8억 3,000만대의 자동차가 있어야 한다. 이 같은 상황이 현실화된다면 그때 우리나라 주유소에서 판매될 휘발유 1리터의 값은 얼마가 될까? 세계의 자동차 수는 현재 대략 8억대 정도로 추산되는데 중국과 인도가 8억대를 더 보유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은 두려운 일이다. 그래서 천연자원의 안보가 국가안보 문제가 되어버린 것이며, 우리도 심각하게 자연안보 문제를 연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국가들의 국제 자원쟁탈을 위한 노력을 분석한 책들을 보면 미국·중국·일본 및 유럽 국가들의 이야기들이며 수백페이지가 넘는 분석에서 한국·대만 등 신흥 공업 국가들의 이야기는 불과 몇 줄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자연안보는 구시대의 국가안보와 달리 동맹국을 얻을 수 없다. 혼자 해야 하는 것이라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금 자연안보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고 있는 것일까?


필자는 우리의 자연안보는 한국인의 인적자원을 동원해야 한다고 본다. 고갈되어 가는 자원을 확보하는 노력은 물론 필수적인 일이다. 또한 발상을 전환해서 석유없이 달릴 수 있는 자동차를 우리나라가 제일 먼저 개발해 보자.


이미 6년 전 이라크 전쟁을 시작할 당시 부시 대통령은 미국의 과학자들을 향해 ‘오늘 태어난 미국 어린이들이 운전 면허증을 받게 되는 날 그들은 석유로 가지 않는 자동차를 탈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싱크 탱크로 부상하는 CNAS는 21세기 국가안보를 자연안보라고 말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적자에 허덕이는 미국 자동차 회사들을 시장의 논리에만 맡겨두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 아닐까? 기름으로 달리는 자동차에서는 일본·독일에 뒤쳐진 미국이었지만, 만약 미국이 석유를 한 방울도 쓰지 않아도 가는 자동차를 세계에서 제일 먼저 만드는 나라가 된다면 미국은 또 다시 21세기 100년간 세계 자동차 산업을 제패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안보는 군인과 정치가들만이 아니라 학자, 기업인들이 모두 전사(戰士 Warrior)가 될 수 있는 분야다. 우리나라도 지혜와 인력을 총동원해서 자연안보를 확보하도록 적극 노력하자.


이춘근 (이화여대 겸임교수/한국해양전략연구소 연구위원, choonkunl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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