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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기획기능 회복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시기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칸나교수와 팔레푸교수는 신흥공업국 기업들이 어떻게 자국의 열악한 경제ㆍ사회 환경을 딛고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했는지를 연구한 학자들로 유명하다. 이들은 글로벌기업으로의 성장에는 전략적 기획수립과 위험 분산ㆍ회피가 가능했던 기업집단이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다고 지적한다. 이는 한국경제의 과거 성장과정에서도 확인된다. 수출경쟁을 통한 효율성 증대, 수직계열화에 따른 비용절감, 내부자본을 통해 마련된 자금을 경쟁력있는 분야로의 투자,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전환가능한 신성장 동력분야로 주력산업의 전환 등은 잘 알려진 사실들이다. 이러한 기능이 원활히 수행될 수 있는 데에는 기업집단의 전체 전략을 기획ㆍ추진ㆍ관리하는 컨트롤 타워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중요한 기능을 수행해왔던 기업집단 전략기획실의 현재 모습은 과거에 비해 크게 축소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그 역할이 계열사 재무구조개선 및 부실기업조정에 초점을 맞추도록 수정되었으며 명칭도 구조조정본부로 변경됐다. 성장과정의 핵심기능이었던 기업집단의 선단식 경영체제에 대한 비판이 전략기획부서의 위축을 불러왔다. 즉 계열사간 복잡한 출자구조를 통해 지배주주의 의도에 따라 소액주주의 이익을 탈취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부정적 인식을 주게 되었다. 계열사간 불미스러운 내부거래와 이로 인한 지배주주 유죄확정 등의 사건들은 기업집단의 통제방식에 대한 국민정서적 반감을 가져왔고 실질적으로 전략기획부서의 해체에 가까운 상황으로까지 이어졌다. 계열사 간 주주구성이 다르기 때문에 기업집단 전체차원의 전략수립에서 벗어나 계열사 간 이해관계 조정기구 정도에 머물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심지어 기업집단은 동일한 브랜드를 공유하는 회사들의 모임정도로 축소 해석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렇다면 계열사 간 주주구성이 달라 주주 간 이해상충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기업집단의 전략기획기능은 더 이상 필요가 없다고 봐야할 것인가? 이에 대해 고려해 봐야할 몇 가지 다른 관점들이 있다.


첫째로 주주간의 이해관계 상충만을 고려하여 별개의 기업으로 볼 경우 경쟁당국이 기업결합심사를 할 이유가 없다. 동일인과 특수관계인들의 지분소유관계를 통해 지배관계를 확인하고 단독효과(unilateral effect)를 검토해야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경쟁정책적 관점에서 수직적 혹은 수평적 기업결합 시 동태적 효율성을 고려하여 경쟁제한효과를 판단하는 것은 기업집단이 갖는 전략적 선택과 시너지 효과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법은 주주 간 구성은 달라도 기업들 간 결합을 통해 하나의 경제주체(one economic unity)로 행동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둘째로 주주 구성의 차이가 전략기획기능 불필요성의 이유가 되기 어렵다. 종종 계열사의 주주구성을 달리하여 기업내부의 비효율성을 감소시키는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단적인 예로서 상장된 공기업을 들 수 있다. 정부가 일정 비율의 지분을 보유하면서도 일부를 상장시킨 이유는 자본시장으로부터의 압력을 통해 공기업이 가질 수 있는 경영 비효율성을 제거하는데 있다. 상장공기업 간 주주구성이 다르기 때문에 정부가 더 이상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는 주장하기 어렵다. 주주의 이익도 고려하지만 정부의 일관된 경영방침을 전략적으로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셋째로 계열사 간 이해관계가 달라 기획조정실 기능이 축소되면 경영자와 주주 간 대리인 문제가 부상할 수 있다. 기업집단은 내부 경영자시장을 형성하여 경영자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통해 대리인 문제를 해소해왔으며, 그러한 역할 수행이 기획조정실의 기능 중 하나였다. 지배구조에 대해 논할 때 한국에서는 주로 지배주주와 소액주주 간 대리인문제를 지적해왔지만, 영미식 경제에서는 경영자-주주 간 대리인 문제를 지적해왔으며 이번 금융위기에서 크게 논란이 되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전술한 바와 같이 주주 구성이 다른 계열사라고 하더라도 장기적 이익의 관점에서 기업집단의 전략적 기능을 회복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다만 주주의 이해관계를 어떻게 고려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뒤따라야할 것이다. 전략기획실의 결정이 계열사 이사회와 주주총회에서 인정받도록 함으로써 주주이익 침해도 최소화시킬 수 있는 등의 방법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칸나교수와 팔레푸교수는 신흥공업국에 선진국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경우 문제해결이 될 수도 있지만 경로의존성 때문에 오히려 장점을 스스로 제거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지금 세계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시기이다. 경제여건의 재편에 맞춘 경영전략을 수립할 수 있도록 기업집단 내 전략기획부서의 역할과 구성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해진 시기라고 생각한다.


김현종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kim@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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