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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결정 요인으로서 ‘공’과 ‘사’의 개념


일상적으로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된다. 지극히 당연하게 들리는 이 말에는 정책 결정을 아주 그릇된 곳으로 몰고 갈 수 있는 크나큰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물론 ‘공(公)’과 ‘사(私)’는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친목회 총무가 회원들로부터 거두어들인 회비를 몰래 개인적인 목적으로 사용한다든지 공적 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공’과 ‘사’의 엄격한 구분이 우리들로 하여금 은연중에 공-사의 이분법이 선-악 또는 옳음[正]-그름[邪]의 이분법으로 잘못 전이시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이 글에서는 ‘공’과 ‘사’의 개념이 어떻게 성립되었는가를 보고 온당하게 파악하지 못하거나 과도한 공(公) 개념이 국가 정책에 가져다주는 폐해를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공공(公共)’이라고 할 때, ‘共’은 ‘나누어 갖는다’의 의미를 지닌다. 이 글자는 이 글자가 포함된 ‘공산주의’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글자일지 모르지만, 원천적으로 개인의 소유권이나 사유재산권과는 상반되는 개념이므로 상론할 필요가 없다. 반면에 목하 관심사인 ‘公’은 ‘공평하다’, ‘공정하다’라는 의미로 쓰인다. 여기서 ‘私’에서 나온 ‘사사(私事)롭다’는 말이 간혹 ‘공정하지 못하다’, ‘공평하지 못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상황이 이럴진대, 사유재산을 가장 중시하는 자유주의자와 시장주의자들조차도 이러한 이분법에 근거한 ‘공개념’을 들이대면 자신의 논리 전개에 위약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시장주의자들은 ‘토지공개념’과 같은 정책은 부당하다고 주장하면서도 대중을 향한 설득력이 약한 것은 ‘私’에 대한 ‘公’의 우월성을 명백하게 반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위하여 ‘公’과 ‘私’의 해자(解字)부터 보기로 한다.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우리가 흔히 ‘公私’ 또는 ‘公’과 ‘私’라고 하지만, 순서는 ‘私’가 앞선다. 우선 ‘禾’와 ‘厶’로 구성된 ‘私’는 ‘厶’에서 발전한 글자이다. 여기서 ‘厶’는 ‘마늘 모(厶)’ 자가 아니다. 발음 그대로 ‘사’이다. 자전(字典)을 찾아보면, 누구나 ‘厶’가 ‘私’의 고자(古字)라는 것을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厶’ 글자는 입 구(口)자의 변형으로서 ‘사사롭다’는 의미를 가지며, 결과적으로 사적인 재산을 상징하는 말이다. 여기에다가 재산을 함의하는 ‘벼 화(禾)’ 자가 첨가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한편 ‘公’은 ‘八’ 자와 ‘厶’ 자의 결합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여덟 ‘八’자는 ‘좌우로 가르는 모양을 가리키는’ 지사(指事) 글자이다. 그러니까 ‘公’ 자는 ‘厶’를 ‘가르고 나누는 일’을 의미하는 글자이다. 그러니까 ‘公’ 자는 사유재산을 나누는 일을 뜻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의미로 보면 분배를 가리킨다. 더 정확하게 ‘公’의 의미를 파헤쳐보면, 그 의미는 ‘배사(背厶)’라고 한다.1) 여기서 ‘背’는 ‘등지다’는 의미이므로 ‘背厶’라는 뜻을 가진 ‘公’은 ‘사적인 것을 등지다’는 의미이다. 사적인 것을 배척하고, ‘공평하게 갈라먹는다’는 의미를 가진 것이 ‘公’의 뜻이다. 사적 재산을 철저히 배척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렇게 놓고 보면, ‘私’의 의미는 나누기 이전의 상태, 이를테면 디폴트 스테이트(default state)를 지칭하며, ‘公’의 의미는 인위적으로 사적인 재산을 나누는 상태 또는 행위를 지칭한다. ‘公’의 의미가 ‘私’를 단순히 사사로운 것으로만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사악한 것으로 잘못 발전하게 된 데에는 국가나 권력 기관이 ‘분배’를 행할 때, 흔히 원용하는 ‘정의(正義)’ 때문이다. 그러나 하이에크가 정확하게 설파하고 있는 바와 같이 ‘사회정의(social justice)’라는 말 자체가 신기루(mirage)와 같이 허망한 말이기 때문에 사회정의를 앞세운 ‘公’ 개념은 늘 실체 없는 신기루이거나 치명적 사기(fatal pretence)일 뿐이다.

다른 측면에서 살펴보아도 ‘정의’ 또는 ‘사회정의’는 원래 사적인 영역의 문제였다가 공적 영역으로 치환된 문제임을 알 수 있다.2) 실제로 정의는 개인 차원에서 논의되는 덕(virtue)의 문제였다. 또 ‘정의(justice)’를 의미하는 희랍어 ‘dikaiosyne’는 ‘길(path)’을 의미하는 희랍어 dike에서 비롯되어 나온 말 dikaios의 명사형이다.3) 달리 말하자면 희랍어가 지칭하는 뜻은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일을 온당하게 추진하는 것이다. 여기에 개인과 개인과의 관계가 사적 요소에 추가되었을 뿐, 어디에도 인위적으로 분배하거나 개입한다는 의미를 찾아볼 수 없다.

사회정의를 비롯하여 각종 정책 수단에 ‘公’ 개념이 포함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다. 근대성의 발현과 함께 합리주의와 실증주의의 결합에 따른 ‘구성주의적 합리주의’, 효용 극대화 문제를 공적인 영역으로 치환해버린 19세기 공리주의, 근대국가 형성에 따른 관료주의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전개과정의 이면에 깔린 공통적인 특징은 바로 ‘公’ 개념이 인위적 개입과 조작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이 점은 사회정의 문제를 논의할 적에 자주 언급되는 ‘형평(衡平, equity)’의 개념을 분석해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衡’과 ‘平’의 해자(解字)를 보면, 바로 인위적으로 개입하여 조작한다는 의미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4) 형평을 위한다는 정의 문제는 인위적 개입을 요구한다는 이 글자의 생성 단계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公’ 개념이 어떻게 오늘날처럼 성립하여 사용되었는가를 확인하였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公’ 개념은 무엇을 가른다든지 빼앗는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에 반하여 ‘私’ 개념은 디폴트 스테이트를 지칭한다. 둘째, 公-私 개념 대비는 善-惡, 또는 正-邪의 대비에 상응하는 개념이 아니다. 선악과 옳고 그름을 굳이 따지자면 오히려 반대이다. 公 개념이 그릇된 것이며, 私 개념이 오히려 선한 상태를 지칭한다. 셋째, ‘公’ 개념 자체는 원래 ‘私’ 개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까 현재처럼 ‘公私’가 아니라 ‘私公’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말의 순서가 바뀐 것은 어떤 연유인가? 이는 전적으로 필자의 추측인데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음양(陰陽)의 경우처럼 논리적 선후 관계는 뒤집어 사용하는 경우처럼 ‘私公’을 ‘公私’로 뒤집은 경우를 들 수 있다. 음양이론에서도 논리적 선후 관계는 陽이 陰에 선행하지만 묘용(妙用)의 측면에서 뒤집어 사용한다. 다른 하나는 公私를 善惡, 正邪에 견주어 유추한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公’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를 합리화하면서 권력을 사용할 수 있다. 관심사를 ‘사회정의’니 ‘형평’이니 하면서 ‘公’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사람들은 대개 권력자이거나 권력을 잡고 싶어 하는 이들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한편, 公과 私의 문제를 이렇게 해석함에 있어서 혹자는 다음과 같이 반문할 수도 있다. ‘私’에 해당하는 영어 ‘private’의 어원이 ‘빼앗다’라는 뜻의 라틴어 privatio (=take away)에서 나왔다는 점을 들어 반박할 수도 있다.5) 그러나 영어의 어원이 되는 private-public의 관계는 한자와는 정반대의 순서이다. ‘public’의 어원은 고대 로마의 집단 농장과 관련된 공동 재산이라는 뜻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니까 라틴어의 ‘私(private)’는 공동 재산 중에서 개인의 것을 취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국가의 인위적인 개입이나 절도와 사기 같은 범죄행위처럼 남의 것을 빼앗는다는 의미와는 거리가 있다. 이를 토대로 하여 ‘私’가 그릇된 것[邪]이며, ‘公’이 옳은 것[正]이라고 할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公’ 개념이 잘못 과도하게 사용된 경우는 너무도 많다. 심지어 헌법에도 ‘공공복리’가 나오며, 정부의 대부분의 정책이 공공정책이다. 경제정책에서 부동산, 세제, 아파트, 독과점 등 모든 정책이 ‘公’을 표방하고 있다. 교육의 경우도 예외는 결코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사립학교법이다. 사립학교법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립학교를 ‘공공의 목적으로’ 규제하는 악법이다. 그 중 백미(白眉)는 사립학교법에 규정된 개방이사제와 사학조정위원회의 설치이다. 개인이 사적 재산을 출연한 학교를 가지고 ‘공적(公的)’ 기여 운운하며 규제하고 나아가 찬탈하고자 하는 사립학교법이 폐지되어야 할 당위성은 다른 여러 이유에 앞서 이제까지 지적한 ‘公’ 개념의 부당성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듯하다.

이상의 검토 내용을 토대로 우리가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논거를 하나 확보한 셈이다. 어느 정책이건 간에 선동적으로 동원되는 ‘公’ 개념에 기가 죽거나 주눅이 들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자유주의와 시장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향하는 자유시장(Free Market), 자유기업(Free Enterprise), 자유경쟁(Free Competition)의 원칙도 이 ‘公’ 개념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과도한 개입을 막을 경우에만 유효하다. 왜냐하면, ‘公’ 개념은 인위적이고 그 명분과는 달리 개인의 재산을 보호하지 못하는 정책을 내는 수단을 제공함은 물론, 경쟁의 진정한 미덕이 온전하게 발현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公’과 ‘共’은 실질적으로 동의어인 셈이다.

김정래 (부산교육대학교 교수/교육학, duke77@bnu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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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언종, 2001, 한자의 뿌리, 서울: 문학동네

2) 이를 하이에크는 ‘atavism’이라고 칭한 바 있다. 즉 사적 영역의 문제를 공적으로 그릇되게 치환해 버

렸으니 신기루일 수밖에 없는 셈이다. Hayek, F. A., 1976, The Atavism of Social Justice, in his, 1978,

New Studies in Philosophy, Politics, Economics and the History of Ideas, Chicago University Press.

3) Guthrie, W. K. C., 1960, The Greek Philosophers, 박종현 역, 1981, 희랍철학입문, 서울: 종로서적.

4) 이에 관한 내용은 조금 길지만, 그대로 인용하기로 한다.

‘형평(衡平)’과 ‘평형(平衡)’은 모두 ‘둘 이상의 사물이나 대상이 균형을 이루어 평등한 상태’를 뜻한다.

여기서 ‘형(衡)’과 ‘평(平)’ 두 글자는 똑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으므로 평화(平和), 통일(統一), 상호(相

互)의 예(例)처럼 앞뒤 순서를 바꾸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衡(형)의 원래 모양은, 소전(小篆)의 자형

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서 있는 사람’의 상형이었다. 지금 마치 魚(고기 어)에

서 꼬리[灬]를 제외한 몸체처럼 보이는 가운데 윗부분은 ‘아가리가 질끈 동여매어진 보따리’가 변한 상

태이고, 그 아래 大(대)는 그 ‘보따리를 이고 균형을 잡은 채 두 팔을 벌리고 선 사람’의 형상이다. 이 글

자의 좌우에 벌려진 行[항: 네 가리의 상형]은 뒷날 추가된 것으로, 이 사람이 서 있는 위치를 나타내면

서 발음부호 역할까지 하고 있다. 衡(형)은 머리에 커다란 보퉁이를 이고 손으로 붙잡지 않고도 길을

재빠르게 걸어가는 신기(?)를 가진 왕년의 우리나라 아낙네들을 연상케 하는 글자이다. 平(평)에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하나는 저울의 한 종류인 ‘천평칭(天平秤)’의 상형이라는 설이다. 다른 하나는 ‘저울

대’의 상형인 一[一(한 일)이 아님] 아래에 발음부호인 釆[변: ‘짐승 발자국’의 상형]을 더하여 본뜻을

‘저울’로 한 형성자의 변형이라는 설이다. 둘 다 저울과 관계가 있으므로 당연히 ‘평평하다’ ‘높낮이가

없다’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김언종, 2001, 한자의 뿌리, 서울: 문학동네, 1019-1020쪽)

5) Woodhouse, S. C., 1913, Latin Dictionary, London: Routledge & Kegan Pa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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