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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황금빛 가위와 규제개혁


지난 12월 백악관에는 서류 더미들이 등장했다. 하나는 ‘1960년’, 다른 하나는 ‘오늘(today)’이라는 표지를 달았고, 그 둘을 연결하는 빨간색 테이프가 둘러져 있었다. 1960년대에 약 2만 쪽에 불과하였으나 오늘날은 18만 쪽으로 증가한 연방 규제 법규의 부피감과 무게감을 종이로 시각화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규제가 1960년대 수준으로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고 자신하며, 커다란 황금빛 가위를 들어 빨간색 테이프를 자르는 의식으로 규제개혁 의지를 천명하였다. 트럼프 행정부의 과감한 경제정책 중 보호무역주의를 강조한 통상정책과 법인세 인하로 대표되는 조세정책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주목받지 못하고 있지만, 규제개혁 역시도 연일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금융, 에너지를 비롯한 전 산업에 걸쳐 규제개혁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작년 1월, 규제 1건이 시행되면 기존 규제 2건을 삭제해야 한다는 ‘Two for One’의 행정명령에 서명한 데 이어 2017년 한 해 동안 635개의 규제를 폐지하고 244개를 효력 정지시켰으며 700개는 시행이 연기되었다.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이 1월 발표한 조사에서 미국 최고경영자들은 6년 래 처음으로 규제관련 비용을 ‘기업이 마주한 최대 걱정거리’로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선된 심리는 실제 투자로도 이어지고 있다. 잇따른 투자 확대, 공장 건설, 기록적인 주가 외에도 기업의 인수·합병(M&A)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당선 이후 첫해 M&A 거래 규모는 1조 2,000억 달러(1,337조 4,000억원), 건수 면으로도 약 1만 2700건에 달한다. 역대 미국 대통령의 취임 첫해 M&A에서 거래 금액과 건수 모두 가장 높은 수치다. 100억 달러가 넘는 초대형 M&A 역시 13건으로 최대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역대 정권에서도 규제개혁은 지속적으로 강조되어 왔으며, 구호 역시 규제완화에 이어 규제혁신, 규제혁파로 차례로 수위를 높여오고 있다. 새로운 용어도 지속적으로 도입되어 지난 정부에서는 단두대를 의미하는 규제기요틴, 이번 정부는 관련 담당자들의 마라톤회의를 본 딴 규제·제도혁신 해커톤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규제개혁의 중요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간의 성과가 지지부진하였음을 드러낸다. 이번 정부의 규제정책도 비슷한 수순을 밟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벌써부터 터져 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규제샌드박스는 작년 7월 '100대 국정운영 과제', 9월 '새 정부 규제개혁 추진방향'에 포함되었지만 올해 1월에서야 구체화되었고 언제 법제화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재의 규제개혁은 새로움에 중점을 두고 신산업·신기술과 벤처기업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기존의 틀에 맞출 수 없는 영역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 혁신은 당연하고 또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블록체인, 드론, 자율주행과 같은 눈부신 기술발전에 가려져 있는 구 산업들 또한 관심이 필요하다. 너무나 많이 지적되어 이제 식상하기까지 한 서비스업도 동일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혁신의 가능성은 기업의 분야나 업력만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정책자금과 같은 지원 정책에서 벤처기업이 우선될 수 있지만, 규제개혁은 기업 규모에 관계없이 사업 중심으로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역량을 갖춘 인력을 보유한 대기업의 사내 스타트업이 새로운 활력이 되어 왔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국경에 관계없이 규제개혁에 대한 끝없는 노력의 이유는 새로운 기술 변화에 적응하는 것만이 아니라 지속적인 성장과 이에 따른 일자리 창출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책이 우선되는 통화·재정·조세·규제의 4대 분야에서 가장 즉각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부문은 규제개혁이다. 특히 기업의 체감경기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시기이기에 더 시급하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기업경기전망은 외환위기 이후 최장기간인 21개월 연속 부정적 응답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3%, 최대 수출을 달성하였음에도 비관주의가 만연해 있음은 놀랍기만 하다. 기업 활동의 자신감을 불러일으키는 규제혁신의 새로운 바람이 필요하다.

김윤경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 / yunkim@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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