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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즌 필 도입, 어떻게 해야 하나?


최근 법무부가 경영권 방어 수단의 일종인 ‘포이즌 필(poison pill; 독약증권)’ 도입을 위한 상법 개정시안을 마련하면서부터 이에 대한 논의가 보다 구체화되고 있다. 도입을 전제로 어떤 방식을 채택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질 것이다. 이하에서는 포이즌 필 도입의 필요성을 살펴보고 이러한 필요성에 걸맞는 구체적인 도입방안을 모색한다.


포이즌 필 도입의 필요성


회사법상 합병이나 주요 자산 취득을 통한 기업 인수는 인수대상 회사(피인수회사)의 이사회 의결을 거치도록 하고 있으나 이러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인수대상 회사의 개별 주주들로부터 직접 주식을 사들여 지배권을 취득하는 것을 ‘적대적 M&A’라고 한다. 최근 적대적 M&A 중 명목적으로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내세우지만 대상 회사의 주식을 대거 매입하여 인수한 후 고배당과 유상감자를 통해 투자자금을 회수해 가는 등 단기이익 극대화에만 관심을 두는 경우가 많다. 국내 기업들이 외국자본의 이러한 행태를 우려해 외국인 주주를 위한 배당에만 신경 쓰게 될 경우 장기 성장을 위한 자본 확충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또한 경영권 방어를 위해 기업들은 자기주식을 취득하거나 우호적인 제3자에게 신주를 발행하여 우호 지분을 늘리고자 한다.


그러나 자기주식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현금을 쌓아두어야 하고, 자본조달의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3자에게 신주를 미리 발행해야 하는 등 회사의 자본구조에 왜곡이 발생하는 문제점이 있다. 애초부터 경영권 방어를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제도를 경영권 방어를 위해 사용하다 보니 이러한 문제점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적대적 M&A가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발생 가능성과 무관하게 항상 이러한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물론 회사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주가를 높이면 외부세력들이 추가 이익을 얻을 수 없어 적대적 M&A 위협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데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그러한 노력은 하지도 않으면서 포이즌 필과 같은 경영권 방어 수단만 요구하고 있다고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기업들에게 항상 높은 주가를 보장하는 하나의 이상적인 회사지배구조는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주가에만 집착할 경우 단기 실적주의로 인해 장기투자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또한 개별 기업의 입장에서는 적대적 M&A 위협이 크고 작음을 떠나 단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이것에 대비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며 경영권 방어를 준비하기 마련이다. 개별 국가들이 전쟁 가능성이 거의 없는 데도 막대한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경영권 방어의 필요성이 인정된다면 이에 대한 효율적인 방어방법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면서 남용의 위험을 막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경영권 방어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효율적 제도인 포이즌 필을 도입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포이즌 필이란 적대적 매수자가 등장할 경우 그를 제외한 모든 주주들이 할인된 가격으로 신주를 취득할 수 있다는 내용의 권리를 표시한 증권이다. 실질적으로 적대적 매수자를 제외한 모든 주주들이 신주를 취득할 경우 적대적 매수자가 지배권 취득을 위해 가지고 있던 주식이 희석되어 결국 적대적 기업인수를 포기하게 된다. 포이즌 필이 효율적인 방어수단인 이유는 적대적 M&A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 회사가 특별히 준비할 것이 없어 회사의 자본구조에 아무 변화가 없고, 적대적 M&A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주주들이 실제 가격보다 상당히 할인된 가격으로 신주를 취득하게 되므로 회사의 자본구조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포이즌 필이 적대적 매수자에게만 신주를 취득할 수 없게 한다는 점에서 주주평등원칙에 위반된다는 비판이 있으나 모든 주주들은 잠재적으로 적대적 매수자가 될 수 있으므로 특정 주주만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회사 전체의 이익을 위해 합리적인 이유가 있으면 차별할 수 있다는 것이 미국과 일본 판례의 입장이다.


현행 상법 개정 시안과 포이즌필 도입 방향


현재 법무부 상법 개정 시안의 골자는 개별회사 정관에 포이즌 필 근거규정을 미리 마련한 경우에만 적대적 M&A 발생 시 이사회 결의를 통해 포이즌 필을 발행하여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사회에 의한 신속한 포이즌 필 발행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정관에 발행 근거를 미리 마련하도록 하여 이사회의 권한 남용을 사전에 막고자 한 것이다. 정관에 포이즌 필 근거 규정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정관 변경절차를 거쳐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상법상 주주총회 특별결의(출석 주주의결권의 3분의 2 이상,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 찬성)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외국인 보유지분이 높고 대주주 보유지분이 낮은 주요 대기업들이 과연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통해 정관에 포이즌 필을 도입하는 것이 얼마나 가능한지는 의문이다. 경영진(이사회)의 권한 남용을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포이즌 필의 실질적 이용을 지나치게 어렵게 할 경우 개별 기업들은 포이즌 필이 아닌 비효율적인 다른 방법으로라도 방어를 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정관에 근거 규정을 마련하지 않더라도 이사회에서 포이즌 필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해도 위임장 권유에 의한 적대적 M&A가 가능하므로 경영진의 권한 남용은 통제된다. 즉 대상회사의 현 경영진에 대해 대부분의 주주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고 경영진 교체를 원하고 있을 경우 적대적 M&A 시도자는 이러한 주주들로부터 의결권을 위임받아 주주총회를 장악하여 지배권을 취득할 수 있다. 위임장 권유를 이용한 적대적 M&A는 주식을 직접 취득하여 지배권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므로 포이즌 필이 존재하더라도 가능하다. 또한 경영진의 포이즌 필 사용에 대해서는 사법부의 적법성 통제를 받게 되므로 경영진이 함부로 포이즌 필을 남용할 수는 없게 된다. 그래도 경영진의 권한남용이 염려되거나 포이즌 필 사용가능성이 회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판단되는 회사가 있다면 개별적으로 정관에 자신들의 회사는 포이즌 필을 발행하지 않는다거나 엄격한 요건 하에서만 발행하도록 하고 있다는 규정을 포함시키면 된다. 미국과 일본도 이 같은 방안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향후 상법에 도입하고자 하는 포이즌 필 제도의 기본골격은 이사회 의결만으로도 포이즌 필 발행이 가능하도록 하고 필요하다면 개별 회사들이 정관을 통해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sshun@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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